▲ 이상무 회장


“우물물 흘러서 개울물, 개울물 흘러서 시냇물, 시냇물 흘러서 한강물, 한강물 흘러서 바닷물”,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 중의 하나이지요. 물줄기의 흐름을 아주 간결하게 표현한 노래라고 생각됩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 8장에 “높은 경지의 착함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자리하는지라, 도(道)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라는 글이 나온답니다. 물에 관한 가장 오래된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하지요.


물은 일곱 가지 덕(德)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水有七德). 첫째는 ‘겸손(謙遜)’, 물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둘째는 ‘지혜(智慧)’, 물은 다투지 않고, 막히면 돌아갑니다. 셋째는 ‘포용(包容)’, 물은 더러운 것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받아줍니다. 넷째는 ‘융통(融通)’, 물은 어떤 그릇에도 담기며,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늘 통해 있습니다. 다섯째는 ‘인내(忍耐)’, 물은 지칠 줄 모르고, 바위도 뚫는 끈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섯째는 ‘용기(勇氣)’, 물은 부서지는 아픔을 참고 용감하게 폭포에서 떨어집니다. 일곱째는 ‘대의(大義)’, 물은 긴 여정을 견디며 유유히 흘러서 큰 강을 이루고 바다에 모입니다. 어떻습니까?


한편으로 물만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성난 파도나 해일(海溢), 집중호우, 홍수와 범람, 반대로 가뭄과 기근, 물이 없는 사막을 생각해보십시오. 태풍, 지진, 화산폭발 등과 함께 최대의 자연재해가 물로 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로부터 물을 다스리고 잘 활용하기 위한 ‘치수(治水)’와 ‘이수(利水)’가 통치의 근본이었지요. 홍수통제와 가뭄에 대비한 인류의 지혜의 산물이 바로 산골짜기를 막아 만든 크고 작은 못, ‘저수지(貯水池)’입니다. 인류가 수렵·채취의 시대를 지나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정착하게 된 농경문화의 대표적 유산이 저수지인 것입니다.


물이 솟아나거나 모여 있는 샘이나 강, 호수와 오아시스가 자연히 인류문명의 발상지가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안정된 물의 공급이나 넘쳐나는 물의 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저수지가 등장한 것이지요. 오늘날까지 저수지의 둑과 수문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김제 벽골제와 상주 공검지, 지금도 농업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밀양 수산제와 제천 의림지 등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들이 그러한 기능을 훌륭히 수행했던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입니다.


저수지를 가득 채운 물은 봄부터 들녘을 적시며 한해농사의 젖줄이 됩니다. 농사를 제대로 잘 지으려면 저수지의 물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수위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저수지와 가까이 접하다보면 저수지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아지지요. 저수지에 철학적 의미를 담은 ‘비움과 채움의 미학’이 그중 하나입니다.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합니다. 비우되 채우지 않으면 물이 말라 없어지고, 채우되 비우지 않으면 넘쳐나서 홍수를 대비할 수 없게 됩니다. 비울 때와 채울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의 핵심이며, 비움과 채움이 반복되는 것이 자연의 순환입니다. 저수지의 물이 고여 있으면서도 쉬 오염되지 않는 것은 비울 때 비우고 채울 때 채우는 순환 때문이지요. 고여 있으되 순환을 통해 물을 나누고 베풀어 젖줄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저수지인 것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을 비우고 사랑으로 채우면 모두가 넉넉해지고, 사랑이 말라 없어진 자리에 욕심만 가득 차면 모두가 부족해지게 되지요.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저수지로 모여 들에 공급되듯이, 순환이라는 자연의 섭리처럼 지혜롭게 비우고 채우는 삶을 사는 여유를 가져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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