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주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간판인 최저임금인상 문제는 정부 출범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논란에 휩싸여있다. 경제부총리가 숨넘어가는 목소리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속도 조절을 얘기하고, 정부 기관인 통계청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통계와 분석 자료로 최저임금 정책의 부작용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핵심인 청와대 경제팀은 이런 주장과 현장의 볼멘소리를 일축한다.


각계의 지적과 비판을 겸허히 듣고 정책에 반영하기보다는 대통령과 경제수석까지 나서서 반박하고 해명하니 여간해서는 정책비판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시대에 자기 자리 걸고 바른 소리 할 사람이 어디 찾기 쉽겠는가. 더구나 정권 초기이고, 잘하면 정권이 5년 더 연장돼 10년 집권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니 한자리하고 싶은 사람들 꿀 먹은 벙어리다.


더 가관인 것은 정부 경제정책 핵심 당국자들 간의 내분 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경제정책을 집행하고 경제부처를 통할하라고 만들어진 경제부총리는 존재감이 없다. 오죽하면 김동연패싱이란 말이 공공연하겠는가.


정책 핵심들의 한심한 논란


최저임금 및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한 최근의 논란은 정말 한심하다. 도대체 정책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일부 학자의 이론 실험장인지 모를 때가 있다. 지난달 말부터 터진 논란의 전말을 간략히 살펴보자.


불을 지핀 것은 통계청. 통계청은 1.4분기(1~3월) 가계소득동향을 내놓으면서 ‘하위 20% 소득이 8% 넘게 떨어져 통계 작성 이래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 정부 핵심 과제인 소득주도 성장이 의도와는 반대 방향으로 부작용을 빚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문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열린 가계소득동향점검회의에서 “아픈 지적”이라며 보완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러나 직후 열린 청와대 관계자 회의에서 대충돌이 있었다고 전해졌다. 목소리는 작지만 일관되게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조절을 주장해온 김동연경제부총리와 소득주도성장 주창자인 장하성정책실장 홍장표경제수석간의 논쟁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후자 쪽 손을 들어줬다. 경제부총리 패싱 얘기가 또 불거졌다.


곧이어 ‘자의적인 통계 짜맞추기’ 논란이 빚어진다. 문대통령은 31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최하위 계층의 소득이 감소한 것은 아픈 대목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면서도 “최저임금의 긍정적인 효과가 90%”라고 말해 소득주도, 최저임금인상 정책의 실패라는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앞선 통계청 자료에서 비롯된 비난을 공박하기 위해 통계청 원자료를 편의적으로 가공, 90%긍정론을 주장한다는 비판이 뒤를 이었다. 통계청 자료를 노동연구원에 맡겨 입맛에 맞도록 통계를 가공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설명을 놓고 통계놀음 논란이 빚어지자 부랴부랴 청와대 경제수석과 대변인이 나서서 해명해야 했다. 경제정책 주요관계자들의 내분 양상에 이어 대통령까지 구설에 오르고 만 것.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KDI는 지난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논쟁에 재점화 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감소폭은 최소 3만6천명 최대 8만4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최저임금의 큰 폭 인상이 지속된다면 일자리 감소폭이 내년 9만6천명, 2020년엔 14만4천명으로 총 24만명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사실 통계청이나 KDI 같은 정부 또는 국책연구소가 이같은 보고서를 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다. 신중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제시한 우려를 눈여겨 봐야한다. 국제노동기구(ILO)간부나 이목희일자리위원회부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이 톤을 높여 방어하지만 과연 이들이 경제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경청하는지 모르겠다.


시행 1년 넘기 정책의 대대적인 점검 필요


자신들의 작품에 결정적인 흠결이 있다고 쉽게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정책은 수시로 점검, 보완해 나가는 것이 긴요하다. 고집부릴 일이 아니다. 시민운동 현장이나 대학 강단에서는 자신의 이론과 주장이 틀렸다 한들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다르다.


그리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은 명심할 것이 있다. 대통령 모시기와 백성 섬기기 가운데 어느 것에 무게를 더 둘 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비판적인 발언 잠깐 한 뒤 야단맞고 금새 뒤로 빠지는 식의 처신은 훗날 자신에게는 물론 모시는 분에게도 큰 누가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책시행 1년이 지났으면 진지하게 점검하고 시행책오도 찾아내 수정 보완작업을 펴야 한다. 그것이 자신들의 명예에 흠이 된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용기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이 시대에 장관 수석 자리 내놓을 각오로 옳은 소리 할 사람을 찾기란 어려울까.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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