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전 세계가 통화긴축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이 올들어 두 번째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데 이어 유로존도 금년말까지 양적완화를 종료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양적환화 유지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조차도 국채 매입 축소를 통해 속도조절에 나설 뜻을 내비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4일(한국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정책금리를 연 1.75∼2.00%로 0.25%p 인상했다. 올들어 두 번째 인상이자, ‘제로(0) 금리’ 이후 7번째 인상이다. 이에따라 한국과 미국간의 기준금리 역전 폭이 0.5%p(상단 기준)로 확대됐다. 특히 연준은 연말까지 두 차례 더 올려 올해 모두 네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시사, 통화긴축을 가속화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15일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양적완화 중단을 사전 예고했다. 앞으로 자산 매입 규모를 점차 줄여나가 연말에 이를 완전히 종료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일본도 3~5년 만기 국채 매입 규모를 3300억엔에서 3000억엔으로 줄이기로 하는 등 점차 통화긴축에 나설 움직임을 보였다. 바야흐로 전세계에 통화긴축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로인해 세계 금융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2013년 미 연준의 테이퍼링 시사로 신흥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던 '긴축발작'이 재연되지 않을 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서 대규모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등 문제를 안고 있는 브라질 등 일부 신훙국에서는 이미 수개월전부터 자본 유출이 일어나기 시작, 이젠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르헨티나는 자본유출과 페소화 가치 급락을 견디지 못하고 17년만에 또다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 3년간 500억 달러를 지원받기로 했다.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등도 환율 방어를 위해 최근 정책금리를 전격 인상했다. 앞으로 일부 신흥국의 통화 위기가 이탈리아발 유럽 경제 불안 및 미국 보호주의에 따른 무역전쟁 위험 등과 화학반응을 일으킬 경우,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 것이라는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의 파장도 만만치 않다. 한은은 미국의 잇단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국내경기 부양과 가계부채 부담을 고려, 올들어 한번도 기준 금리를 인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는 꾸준히 인상돼 왔고 미국의 이번 인상으로 국내 은행들의 대출 금리 상승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을 까 우려된다. 이에따라 미국의 금리인상에 편승해 예금금리보다 대출금리를 과도하게 올리거나 취약 차주들에게 높은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행태를 단속하겠다는 금융감독원의 경고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이번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자본유출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외환보유고가 4000억 달러에 육박하고, 경상수지 흑자도 74개월이나 지속되고 있는데다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지정학적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 역전 폭이 커지거나 역전 기간이 길어지고 ECB 마저 긴축을 시사하면 자본 유출 위험성이 높아지는 등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젠 내달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지의 여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부터 한.미간 금리가 역전됐는데도 지난달에도 기준금리를 동결시켰다. 금리역전 폭을 줄이거나 없애야 하나 경기침체를 비롯해 가계부채와 소득, 고용 등 제반 여건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500조 원에 육박한 가계부채가 여전히 소득 증가율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문제다. 대출금리가 0.5%p만 올라도 고위험가구의 금융부채는 4조7000억 원이나 늘어난다. 저축은행과 보험,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의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심상치 않은 부실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는 것도 불길하다. 은행권 연체율은 개선되고 있으나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2금융권의 연체율이 오르고 있고, 기업대출 연체율은 양호하나 가계대출, 특히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생활이 어려운 계층이 저금리때 돈을 빌려 썼다가 금리가 오르고 가계소득이 감소하자 연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들이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급격한 자본 이동과 국제금융시장 불안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 한.미금리가 1%p나 역전됐는데도 자본이 빠져나가지 않은 선례가 있다면서 낙관론을 펴기도 하지만 투자자들이 신흥국에서 무차별적으로 돈을 빼가게 되면 오히려 유동성과 펀더멘털이 좋은 한국이 현금 자동지급기 노릇을 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이 9월에 또다시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한국도 테이퍼 텐트럼에 맞닥뜨릴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혹시 경제규모 세계 8위와 9위인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위기설이 현실화하기라도 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될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우리도 3분기에는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게 대두되고 있다. 금리 정상화를 미리 해둬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저성장 환경 하에서 통화정책이 경기 회복만을 추구하다 보면 금융불균형이 누적돼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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