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지난주까지는 포도 솎아주기, 복숭아 2차 솎아주기 등으로 몹시 바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포도밭, 복숭아밭을 가진 농부거나 놉을 하러가는 일꾼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그건 아니다. 다만 온 동네가 바쁘니 나도 덩달아 바쁜 느낌이 든다. 100개쯤 달린 작은 포도 알 중에서 50개쯤 솎아낸다고 생각해 보시라. 포도송이의 모습은 갖췄지만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다. 크면서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갖추게끔 적당한 간격을 두는 게 필수 요령이다. 전체적인 모습도 위는 두툼하게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갸름하게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포도송이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나처럼 창녕 조가 성을 가진 분과 친해졌다. 그 분의 아내는 나를 형님으로 부른다. 덕분에 그 집 포도밭에서 포도 알 솎아주는 요령을 배웠다. 많이 하다보면 눈이 짓무를 정도로 아프단다. 그 분은 작년에 복숭아 500상자, 포도 300상자를 출하했다 한다. 그럼 모두 모두 얼마야? 농비 빼면? 세금도 빼고? 하지만 내가 어설피 계산해 봐도 세금을 낼 만큼 큰돈은 안 되는 것 같다. 참, 포도 알 솎아주는 것은 거봉 종류에서만 한다는데 캠벨 농사하시는 분 농장에도 가 봐야겠다. 솔직히 나는 포도라면 캠벨을 더 좋아한다.
낮에 뜨거웠던 해가 저녁이 되자 한풀 꺾였다.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는 분들은 이런 날 고생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해가림막이 머리 위로 펼쳐져 있는 포도밭 일은 놉 하는 분들에게 인기가 있는 일터란다. 가까운 영천 아파트에서 한 차 가득 놉 하는 분들을 태워 가지고 온단다. 이 솎아주는 작업은 시기를 놓치면 안 되므로 며칠간 놉을 써야 한다. 사람을 쓴다고는 하지만 주인이 제일 힘들다. 농촌의 주부는 아침을 안 먹고 오는 일꾼들을 위해 아침에는 국수를 말아주고 10시경에는 빵과 우유, 12시에는 밥을 해 주고 다시 3시경에는 과일을 깎아낸다. 나도 잡초 뽑기라도 한 날이면 밥을 두 그릇 먹게 되니 그 ‘참’을 차려주는 일이 안주인에게는 힘들더라도 필수적이기는 한 것 같다. 조씨 부인은 바빠서 집 앞 잡초를 손보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한다. 원! 잡초까지! 내가 농사를 안 하고 슬금슬금 다니면서 지내니 겨우 잡초를 손보지,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어찌 정원까지 예쁘게 손질하고 살리오. 그건 나 같은 귀촌주부 몫인데. 사실 내게는 그것도 쉽지 않다. 꽃밭을 가꾸어 보려고 좋은 흙을 사서 손질하고 돌을 골라내고 꽃씨를 뿌렸는데 정말 싹이 틀지 영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맨 날 모종만 사서 옮겨 심을 수는 없어.
내가 꽃밭 정리를 하고 있으려니 옆집 아저씨가 밭에서 수확하시는지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무얼 하세요?” 그 집 텃밭은 꽤 크다. 물론 진짜 농부의 집이므로 옥수수의 키도 우리 집 것 보다 훨씬 크다. 고추나 상추도 비할 바 못 된다.
“양파랑 마늘 수확하려고요. 요새 들일이 바빠서 텃밭은 한참 보질 않았더니........양파 두어 개 뽑아 가서 반찬 하이소.”
앞에 있는 싱싱한 파처럼 생긴 놈을 뽑아보니 쑥 빠진다. 뿌리 부분에 양파가 달린 줄 알았는데 없다. 아저씨가 깜짝 놀란 듯 이쪽으로 뛰어온다.
“어째? 이거 속은 기요. 이걸 뽑아 보시오.” 그것 대신에 윗부분은 다 시들어 보이지만 잡아당기니 튼실한 양파가 딸려 나오는 옆 고랑 양파를 뽑아 주신다. 아니?
“시장에서 산 건데 완전히 속은 거요. 대신 이쪽 성한 놈은 어떤 농부가 자기 밭에 심고 남은 거라고 해서 샀고.” 아저씨는 몹시 속이 상한 것 같다.
아니 전문 농사꾼도 속기도 하는구나. 두 가지 다 모종으로 심은 거란다.


아저씨, 나도 속상해요. 아저씨를 위해서요.농부 여러분들, 이런 일도 있네요. 그래도....기운 내세요! 홧팅!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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