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기 교수


우리네 먹거리 기반인 농지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농지의 타목적 전용 실태를 보면 2007년 2만 4,666ha를 정점으로 최근에 다소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년 2만ha 가까운 농지가 없어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제주도만한 농지가 사라졌다. 농지보전을 위해 농지법에서 특별히 지정하고 있는 농업진흥지역 농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들 농업진흥지역 농지가 더 빠르게 없어지고 있다. 2006년에서 2016년 이르는 기간 중에 전체 농지면적은 8.7% 감소하였는데, 농업진흥지역 지정 농지는 같은 기간에 32.3%나 줄어들었다. 그 여파로 2006년에 전체농지의 64%를 차지하던 농업진흥지역 비중이 2016년에는 47.4%로 뚝 떨어지고 있다. 농지전용이 농업진흥지역 여부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와 농업여건이 비슷한 일본만 하더라도 농지 감소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 2014년 일본의 농지면적 감소율은 0.2%정도에서 그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농지보전 문제에 적신호가 켜져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농지가 과도하게 사리지는 이러한 현상은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농업의 저성장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단적으로 쌀이 남아돌면서 농지에서 기대되는 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다른 용도로의 농지 전용 압력이 늘 크게 팽배해져 있다. 농지 보전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의 하나로 제기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농지보전 필요성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농지는 보전해야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합의를 이루고 있다. 농지 보전 필요성을 물어본 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9.5%가 농지보전이 필요하다고 응답하고 있다. 농지보전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 훼손된 농지는 농지로 다시 되돌리기가 어렵다. 다른 용도로의 농지 전용 문제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적정 농지를 확보해야 하는 문제에 사전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또한 말해주고 있다. 신중하고 사전 대응적인 농지 정책이 요구되는 자리가 바로 여기이다. 그렇지만 우리 농지정책은 그리 미덥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농지보전에 관한 정책의 기본 입장을 가늠해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얼마의 농지를 보전하고, 그러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어떻게 접근하고 정책수단을 어떻게 구사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농지법은 농지정책이 지향하는 안목과 구체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제도적 실체이다. 따라서 농지의 합리적 보전 문제는 그 제도적 기반을 이루는 농지법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느냐 하는 문제에 1차적으로 달려있다. 그러나 우리 농지법은 소신 없는 농지정책으로 말미암아 다소 모호한 입장을 보이면서 농지보전 기대에 효과적으로 잘 부응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농지법이 국토이용 시스템의 근간인 국토계획법 체계에 일방적으로 흡수됨으로써 농지법의 농지보전 기능이 상당하게 위축되고 왜곡되고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2002년 도시지역 개발을 주관하던 ‘도시계획법’과 국토의 이용에 관한 골격을 규정하던 ‘국토이용관리법’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로 통합되면서 이제 농촌지역에 있어서도 다양한 도시계획 수단들이 적용되게 되었다. 그 동안 개별 법률에 맡겨두었던 농촌지역 개발 문제가 국토계획법 체제로 전격적으로 포섭되었다는 의미이다. 도시지역은 도시계획법에 의해서, 농촌지역은 ‘국토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농지법’, ‘산지법’ 등 개별 법률에 의해 계획되고 관리되어 오던 기존의 국토계획 및 토지이용 시스템이 전격적으로 하나의 “국토계획법”으로 일원화되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농촌지역 토지의 대종을 이루는 농지관리 문제에도 국토계획법이 적용되면서 농지제도가 농지법과 국토계획법으로 이원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국토계획법’의 일원화 기조와 맞물려 ‘농지의 보전’ 문제가 현실적으로 크게 불거지고 있다. 문제는 농지제도의 한 축을 이루는 국토계획법의 안목이 기본적으로 도시중심적이고, 개발중심적이어서 농지보전을 주목적으로 하는 농지법과 모순을 보이는가 하면 여기저기에서 괴리현상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농지 위에다 농지훼손이 전제되는 개발목적의 용도지역·지구를 일방적으로 지정한다든가, 적극적인 개발을 위한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또한 일방적으로 지정하며, 또 개발행위 허가를 비롯한 다양한 개발행위들이 국토계획법에 근거하여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농지법의 농지보전 기능이 무력화되고 있다. 농지에 대해 도시계획적 수단들을 일방적으로 도입하고, 적용함으로써 농지법의 농지보전 기능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끔 제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농지법의 농지보전 기능이 위축되고, 그 위상이 흔들리면서 급기야는 그 존재 의의마저 위협받고 있기도 하다. 농지보전 문제가 그만큼 소홀하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쉽게 짐작케 해준다. 실제로 농지법에 의해 농지전용이 거부되거나 제약 받는 경우를 현실적으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농지전용 요건을 엄격히 심사하여 그 가부를 결정하는 허가행위라기보다는 다분히 농지전용부담금만 내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농지의 타 용도 전용이 무분별하게 일어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면서 농지보전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물론 농지보전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어디까지나 농지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농지법에 있다. 우선은 농지법 자체가 지나치게 방만해서 농지보전을 위한 제도로서 기능하는데 현실적으로 많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단지 농지보전 원칙을 선언하는데 그치고 있다거나, 농지전용을 제한하는 경우 그 기준을 모호하게 해 둠으로써 현실적인 농지전용 제한규정으로 작동할 수 없게 하는 등 허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예컨대, 농지법 34조에 농지전용허가 등의 제한 규정을 두면서 ‘우량농지의 경우 전용을 제한할 수 있다’라고 하고 있다. 제한 할 수도 있고, 제한 안 할 수도 있다는 임의규정으로는 적극적으로 농지전용을 억제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법제화된 우량농지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실제 농지전용 제한규정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농지의 위치, 형상, 농업조건 등 농업관련 요소들을 고려한 다양한 농지 조건을 구체화하고, 이를 토대로 전용 가능성 및 제한 내용들을 사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전제된 연후라야 농지법의 농지보전 기능이 국토계획법과의 관계 속에서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작용하기를 제한적이나마 기대해볼 수 있겠다.
농지전용 허가 권한을 과도하게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위임하고 있는 농지법의 규정 또한 농지법의 실질적인 농지보전 기능에 한계를 가져오는 또 한 요인이 되고 있다. 1990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농지전용 허가 권한 위임이 확대되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농업진흥지역은 3만㎡ 까지, 농업진흥지역 바깥은 20만㎡까지 시·도지사 혹은 시장·군수에게 위임되어 있다. 농업진흥지역 바깥의 자연녹지지역 및 계획관리지역의 경우는 20만㎡이상 농지전용 권한까지 모두 시·도지사에게 위임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한 손으로는 농지 위에다 개발의 밑그림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농지전용 허가 권한을 행사하게 함으로써 농지가 속절없이 사라질 수 있는 장치를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은 격이다.
적정수준의 농지를 보전해가는 차원에서 합리적인 제도정비가 시급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농지가 더 이상 방만하게 방치되면서 무분별하게 잠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요체다. 나아가 농지제도가 이왕에 이원화된 터라 이제 제도 정비 또한 2트랙으로 접근해가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농지법 일방으로서는 농지보전 실효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농지법의 실효적 농지보전 기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나치게 선언적이고 개방적인 농지법의 농지전용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보완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그 하나의 방향이다. 다른 하나는 국토계획법 체계를 면밀히 진단하여 농지잠식 우려가 높은 도시(군)계획 수단들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동시에 조화롭게 강구해가는 문제를 가리킨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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