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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채 칼럼]생존을 건 을과 을의 싸움

    기사입력 2018.07.1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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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kaoTalk_20170922_110359879.png▲ 박현채 주필
     

    전국 350만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불이행 투쟁을 공식화하고 생존을 위한 집단 실력행사에 나섰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어 영세업자들을 보호하자는 사용자측 안이 10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부결되자 최저임금 모라토리엄(불이행)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도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 재논의와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 등을 촉구하며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전국 7만여 개 편의점의 동시 휴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심한 것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처럼 대폭 오를 경우, 더 이상 버틸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소상공인은 5인 미만 서비스업, 10인 미만 제조업을 영위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겉으로는 자본가로 보이나 실제로는 몸으로 때우는 노동자와 다름없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계층과 이들을 주로 고용하는 소상공인 간의 ‘을과 을’, ‘약자와 약자’간의 생존을 위한 대리전으로, 생존을 건 진흙탕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주변 여건의 악화로 소상공인들의 처지가 알바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올해보다 43.4%나 오른 시급 1만 790원을 제시했다. 반면에 경영계는 올해와 같은 7,530원 동결을 요구했다. 격차가 무려 3,260원으로 역대 최대다. 협상용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올해 인상 효과가 반감된 것을 상쇄하려면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경영계는 올해 최저임금이 16.4%나 대폭 올라 영세업자의 추가 도산을 막으려면 내년에는 반드시 동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삶의 질 향상과 소득주도 성장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이 문제다. 우리 경제는 올해 최저임금을 16.5%나 대폭 올린 후폭풍으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임금 지급 능력이 부족한 영세사업자들이 폐업 위기에 몰리면서 일자리를 줄이자 많은 한계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었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등 대부분 고용지표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나빠졌다. 물론 이같은 고용쇼크를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만 보긴 어려우나, 임시ㆍ일용직 취업자 수가 많이 줄어든 건 분명한 사실이다. 

    국내 기업의 85.6%는 소상공인 사업장이며 이들이 전체 고용의 36.2%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소득은 임금을 받는 직장인보다도 못하다. 임금근로자 한 명이 월평균 329만원을 받을 때 동종업계 소상공인은 209만원을 번다는 통계(2015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있다. 또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자영업자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2.3%나 감소했다. 게다가 영세 소상공인들은 국회가 지난 5월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를 최저임금에 산입하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거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할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가 없기 때문이다. 

    이젠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주는 물론 근로자에게도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지만 물가 인상 등 부작용으로 가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데다 일자리마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영세업자들은 영업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근로자들은 초과 근무가 줄어 실제 임금이 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구직자들은 임시·일용직 취업 기회가 크게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최저임금 지급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관련 법을 위반하는 영세업체들도 급증, 범법자가 양산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 경제는 최근들어 투자·소비 감소와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경기하강 조짐이 뚜렸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이 내년에도 크게 오를 경우 영세업자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물론 영세 사업자의 어려움이 최저임금 때문만은 아니다. 높은 임대료와 재료비 상승, 가맹점과 신용카드 수수료, 각종 사회보험료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에따라 노동계는 최저임금은 올리되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책을 동시에 이행하자면서 최저임금 인상 폭을 낮춰야 한다는 경영계의 주장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당장 실현시킬 가능성이 낮은 만큼 현 경제상황에 맞게 최저임금 인상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은 7.2%로 물가상승률의 세 배, 전체 임금인상률의 두 배가 넘는다. 그 결과 올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주휴수당을 제외한 명목상 금액으로 OECD 회원국 중 프랑스, 뉴질랜드, 호주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국가가 됐다. 이젠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소상공인 간의 소득 균형을 맞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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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직 칼럼] “일개 사무관이 ... ”라는 인식
  • 권순직 논설주간|2019-02-15
  • 국채 발행 문제를 놓고 정부부처 내에서 빚어진 논란을 사회에 공개해 관심을 끓었던 ‘신재민사무관 사건’이 세간의 관심에서 사리지는 듯하다. 이 사건은 그러나 우리 사회가 좀 더 심도 있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그 이유는 첫째, 공직사회의 내부고발을 정권의 비위를 거슬렸다 해서 범죄시함으로써 내부고발을 억제하고 건전한 비판과 토론의 공론화에 재갈을 물렸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이유는 공무원 사기를 여지없이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신사무관의 행위에 대해 정치권과 청와대가 나서 “일개 사무관이 ...”라는 식으로 폄하 내지는 비판을 하는 등 이지매를 가함으로서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 최근 만난 원로 경제관료는 “사무관을 이렇게 대해서는 부처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고 말했다. 부처의 실무 작업은 실제로 사무관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들이 주사와 그 밑의 직원들과 밤 새워가며 머리 맞대고 작업한 결과가 법안이고 시행령이다. 곧 정책이다. 그런데 그런 사무관을 “일개 사무관이 ...” 뭘 안다고 떠드느냐는 식으로 비하한 것이다. 장관과 사무관이 정책을 놓고 의견이 갈릴 때는 사무관 편을 듣는 것이 옳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논란이 된 국채발행 건도 실무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산된 건 이를 반영한다. 천만다행이다. 김동연 당시 부총리가 그렇게 결정한 건 잘했다고 본다. 그의 용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사무관의 고발 이후 김부총리의 발언은 실망이다.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장관과 사무관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며 사무관의 의견을 경시하는 듯한 발언을 함으로서 공무원들을 화나게 했다. 신임 홍남기 부총리 역시 마찬가지 태도였다.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사람들이 중하위직 공무원을 우습게 보는 태도도 문제지만, 경제부처 수장인 부총리의 인식이 그렇다면 앞으로 소신 있는 사무관들의 공직관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경제논리와 정치논리(정무적 판단)가 충돌할 때 당연히 사무관들은 경제논리를 들고 나올 것이다. 이때 장차관이 자신들의 입지나 정치논리에 함몰돼 정무적 판단을 남용한다면 건전한 정책결정 과정이라 하기 어렵다. 경제부총리가 총대를 메고 지켜주어야 할 선이다. 신사무관이 제기한 국채발행 논란의 개요를 다시 살펴보면 이렇다. 2017년 엄청난 세수 초과가 발생한 상황에서 적자국채 발행한도 28조7천억원중 남은 한도인 8조7천억원의 처리 문제를 놓고 ‘4조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하여 세계잉여금으로 남기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실무자들은 그 상황에서 적자국채 발행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김부총리와 청와대측은 발행하자는 쪽이었다는 것이다. 세수초과가 엄청나 굳이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발행하려 했을까. 여러 추측이 있을 수 있겠다. 신사무관 등의 주장은 첫째, 각종 선심정책이나 포퓰리즘적 정책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미리 확보해 두려는 의도. 두 번째는 2017년 부채비율이 너무 낮으면 나중에 문재인정부 들어 국가부채 비율이 몇% 높아졌다는 비판을 우려해 부채 늘려놓기를 기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건전재정 유지 원칙’과 ‘잉여금 처리 우선순위’를 명백히 위반하려 했다는 것이 재정전문가들의 견해다. 여기서 왜 ‘사무관’이라는 직책을 들고 나와 이 칼럼을 쓰는지를 밝혀야 하겠다. 앞서 지적했듯이 사무관은 정부 부처 일선 행정의 핵심역할을 한다. 필자가 보아온 사무관 직군은 젊다, 패기와 열정이 넘친다, 자기 직책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애국심도 어느 계층보다 높다, 그리고 야망도 있다. 사무관들은 후에 국장 차관 장관도 하고 싶은 원대한 꿈을 안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이루며 나라 경제를 이끌어왔다. 그래서 젊은 사무관들은 밤새워 일해도 보람 하나만으로 견딘다. 그런데 이사람 저사람이 나서서 “일개 사무관이 ...”라는 저급한 표현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것은 잘못이다. 현장 민심 소홀히 한 정책 부작용 이 정부 들어 유난히 정책의 부작용, 휴유증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가 뭔가를 생각해본다. 명분이야 누가 토를 달랴만은, 최저임금이나 주52시간 근무 정책만 해도 긍정효과보다 부정효과에 관한 볼맨 소리가 온 나라를 뒤엎는 상황 아닌가. 사무관 직급 언저리의 공무원 사기 저하에 큰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책 입안 전에 현장의 목소리와 파급효과 영향 등을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할 터인데 사기가 떨어진 이들이 현장 파악을 소홀히 했거나, 아니면 이른바 정무적 판단(정치논리)에 눌려 무시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장 차관이 구멍가게나 치킨집에 가서 여론을 수렴하기는 어렵다. 사무관의 몫이다. 사무관 사기 땅에 떨어뜨리고 이런 기대 하기 어렵다. 소신 없는 장차관이 청와대나 바라보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사무관 주사들에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여론 민심 살펴 정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하기 쉽지 않다. 필자약력 (전) 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위위원
  • [김성기 칼럼] 세수 초과에 재산세까지 중과한다는데
  • 김성기 부회장|2019-02-15
  • 작년 국세 수입이 예측을 훨씬 넘어 25조원을 더 걷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국세 수입은 293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6% 늘었고 예산편성 당시 전망보다 9.5% 25조4000억원 초과했다. 역대 어느 해보다 세금을 가장 많이 걷었을 뿐 아니라 전년 대비 세수 증가액도 최대치다.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이 기대 이상으로 증가해 법인세가 7조9000억원, 부동산 거래에 따른 양도소득세가 7조7000억원 더 들어온 것이 주요인으로 꼽혔다. 세수초과를 놓고 정부가 나라 살림을 잘해 곳간이 든든히 채워졌다고 자랑만 할 일은 못된다. 일자리 대책과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세 징수를 통해 민간 자금을 빨아들이는 엇갈린 행보를 보이는 셈이다. 세 부담이 빨리 증가하면 기업의 투자여력이 감소하고 소비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가져오게 된다. 매년 국세 수입을 보수적으로 잡아 세수 초과를 만들고 경기 부양을 위해 추경예산을 편성해 재정을 지출을 늘리는 변칙이 이어지고 있다. 재정 지출이 비생산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고 징세와 집행 등에 따르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감세 등을 통해 민간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국세에 지방세를 더한 조세부담률은 김영삼, 김대중 정부까지 비교적 완만하게 상승해 16~17%대를 유지해왔으나 노무현 정부 당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를 강화하면서 2007년 19.6%로 높아졌다가 지난해 2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세금에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국민부담률은 지난해 26%를 넘어섰고 내년 28%에 이를 전망이다. 정통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조세징수 확대에 비판적인 경고를 한다. 과도한 조세가 소득의 흐름을 부(富)를 낳는 투자 등 생산적 부분에서 재분배를 지향하는 비생산적 지출로 오도한다는 견해다. 경영학의 대부로 통하는 피터 드러커 교수는 조세 징수가 국민소득의 일정 한계를 넘으면 강력한 조세저항을 초래해 지하경제가 커진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게다가 올해 주택공시가격과 공시지가를 대폭 올려 재산세를 중과한다는 방침인다. 지난 1월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을 서울의 경우 17.75%, 전국 평균 9.13% 인상했다. 또 최근 서울의 표준지 공시지가를 13.87%, 전국 평균으로는 9.42% 올렸다. 공시지가는 국토교통부가 감정평가사에 의뢰해 산정하는데 실거래가 반영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크게 올렸다. 주택공시가격과 공시지가는 재산세와 종부세, 양도세 등 부과에 기준이 된다. 국토교통부는 실거래가 반영률을 높인다면서 객관적인 기준도 없이 땅값이나 주택가격이 비싼 곳에 대해 현실화율을 차등 적용해 고무줄 인상이라는 사실상의 편법을 동원했다. 중저가 주택과 땅에는 현실화율을 낮추고 고가 주택, 비싼 땅에는 높게 적용해 서민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인데 현실화율은 가격대와는 무관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게 조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신 비싼 땅과 주택에 대해서는 세율을 차등 조정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국토교통부는 그러나 세율 조정에 따른 증세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고무줄 인상의 편법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법인세와 양도세를 더 걷어 세수가 크게 초과된데 이어 올해 종부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까지 대폭 오르면 납세자들의 부담은 소위 ‘징벌적 수준’으로 폭증할 우려가 높다. 정부 구상대로 복지지출을 더 늘리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투자와 대북지원 등 경협사업에 쓰려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 그러나 납세자 부담을 신중하게 배려하지 않고 돈 쓸 궁리에 몰두하게 되면 민간 투자와 소비 침체는 물론 조세저항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동향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2.5%, 경상수지 흑자는 589억 달러에 그쳐 내우외환이 다가올 것이라고 한다. 올 1월 실업자수는 122만명에 달해 19년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lt;투데이코리아 부회장&gt;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 [박현채 칼럼]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미래와 과제
  • 박현채 주필|2019-02-08
  • 노사 협력을 바탕으로 임금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는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말 타결됐다. 노사 양보로 위기를 극복한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AUTO) 5000’을 벤치마킹한 사업 모델이 제시된 지 4년7개월 만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진통 끝에 출범하게 된 것은 협의를 통해 유예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들어있기는 하나 신설법인 설립 후 사실상 5년간 임금 및 단체협상을 유예하는 조항을 노동계와 현대자동차가 수용함에 따라 가능했다. 이로써 1998년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이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에 완성차 공장이 들어서는 길이 열렸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광주광역시와 현대차가 민관 합작법인을 만들어 연산 10만대 규모의 배기량 1천cc 미만 경형 SUV 생산공장을 세우는 프로젝트로, 일자리 1만2000개 정도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구상이다. 근로자 연봉을 국내 완성차 업계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 생산성을 높이는 대가로 정부와 광주시가 주거·육아시설 등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모델이다. 특히 광주시와 현대차, 지역 노동계는 최근까지 최대 쟁점이었던 누적생산 35만대 달성 시까지 임단협을 유예한다는 조항에 합의, 법인 설립후 사실상 5년간은 초기 임금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유예조항이 노동자들의 쟁의권과 단체교섭권 등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 부속합의서에 포함됨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생긴다면 유예기간의 단축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자기자본 2800억 원, 차입금 4200억 원 등 모두 7000억 원이 투입돼 광주 빛그린산단에 들어설 이 공장은 올해 말 착공, 2021년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상생과 지역 일자리 창출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시범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합의는 자동차 산업 환경 악화로 해외로 빠져나가기만 하던 일자리를 국내로 돌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 나아가 해외로 빠져나간 다른 업종·기업들이 국내로 유턴하는 획기적인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평균 연봉이 9000만원을 넘는 국내 완성차업계의 고질적인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강성노조가 주도해 온 자동차 업계에 노사 상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어렵사리 첫 단추는 끼웠으나 아직 넘어야할 산이 높다. 원칙과 명분은 좋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운동 현실과 관행을 볼 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우선 공장이 들어서기까지 현대차 노조와 민주노총의 반발을 넘어서야 한다. 이들은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권을 무시한 저질 일자리”라고 펌하하고 “자동차산업에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경유착 노동적폐 1호’라며 강력 투쟁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장이 들어선 후에도 강성노조가 설립돼 임단협 유예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임금을 올려달라면서 파업이라도 하게 되면 마땅히 대응할 방안이 없는 것도 문제다. 자본금 유치와 독립경영 보장, 생산물량 확보 등도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공장 건립에 7000억 원 정도가 필요한데 광주시와 현대차가 내는 자금은 각각 590억원, 530억원뿐이다. 나머지 자기자본금 1680억원과 운영자금 4200억원은 외부에서 수혈해야하는데 주로 국책은행의 자금이 동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벌써부터 광주형 일자리가 세금형 일자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광주 공장은 지자체인 광주시가 주인이다. 광주시가 21% 지분을 지닌 최대주주로 경영 책임을 맡고, 자본금 530억 원을 투자하는 현대자동차는 2대주주로 자동차를 위탁생산만 할 뿐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법인은 공기업과 성격이 비슷해 정치권 등 외부 입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의사결정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장애물과 시행착오에 부딪힐 우려가 크다. 그래서 이런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해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국내외 자동차 산업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공급능력이 이미 포화 상태인데다 자동차 자체도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중심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이에따라 일각에서는 “지금은 공장 신설이 아닌 미래 자동차 연구개발에 투자할 때”라며 광주형 일자리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낡은 사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연봉을 줄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한다지만 세계 시장이 포화 상태인데다 국내 경차 수요도 2012년 이후 급감하고 있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은 무척 크다. 인건비 절감으로 제조업 생산시설의 국내 유지와 일자리 창출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험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제 이 사업은 노사민정 대타협의 성과라는 상징성을 넘어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로 안착시키는 과정이 무척 중요하다. 우려되는 갖가지 문제점을 노사 양측이 양보와 타협으로 슬기롭게 극복해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는 국내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재앙에 가까운 고용부진을 타개하는 새로운 모형으로 자리 잡는 선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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