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전국 350만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불이행 투쟁을 공식화하고 생존을 위한 집단 실력행사에 나섰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어 영세업자들을 보호하자는 사용자측 안이 10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부결되자 최저임금 모라토리엄(불이행)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도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 재논의와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 등을 촉구하며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전국 7만여 개 편의점의 동시 휴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심한 것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처럼 대폭 오를 경우, 더 이상 버틸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소상공인은 5인 미만 서비스업, 10인 미만 제조업을 영위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겉으로는 자본가로 보이나 실제로는 몸으로 때우는 노동자와 다름없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계층과 이들을 주로 고용하는 소상공인 간의 ‘을과 을’, ‘약자와 약자’간의 생존을 위한 대리전으로, 생존을 건 진흙탕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주변 여건의 악화로 소상공인들의 처지가 알바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올해보다 43.4%나 오른 시급 1만 790원을 제시했다. 반면에 경영계는 올해와 같은 7,530원 동결을 요구했다. 격차가 무려 3,260원으로 역대 최대다. 협상용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올해 인상 효과가 반감된 것을 상쇄하려면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경영계는 올해 최저임금이 16.4%나 대폭 올라 영세업자의 추가 도산을 막으려면 내년에는 반드시 동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삶의 질 향상과 소득주도 성장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이 문제다. 우리 경제는 올해 최저임금을 16.5%나 대폭 올린 후폭풍으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임금 지급 능력이 부족한 영세사업자들이 폐업 위기에 몰리면서 일자리를 줄이자 많은 한계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었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등 대부분 고용지표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나빠졌다. 물론 이같은 고용쇼크를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만 보긴 어려우나, 임시ㆍ일용직 취업자 수가 많이 줄어든 건 분명한 사실이다.


국내 기업의 85.6%는 소상공인 사업장이며 이들이 전체 고용의 36.2%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소득은 임금을 받는 직장인보다도 못하다. 임금근로자 한 명이 월평균 329만원을 받을 때 동종업계 소상공인은 209만원을 번다는 통계(2015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있다. 또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자영업자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2.3%나 감소했다. 게다가 영세 소상공인들은 국회가 지난 5월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를 최저임금에 산입하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거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할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가 없기 때문이다.


이젠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주는 물론 근로자에게도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지만 물가 인상 등 부작용으로 가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데다 일자리마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영세업자들은 영업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근로자들은 초과 근무가 줄어 실제 임금이 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구직자들은 임시·일용직 취업 기회가 크게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최저임금 지급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관련 법을 위반하는 영세업체들도 급증, 범법자가 양산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 경제는 최근들어 투자·소비 감소와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경기하강 조짐이 뚜렸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이 내년에도 크게 오를 경우 영세업자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물론 영세 사업자의 어려움이 최저임금 때문만은 아니다. 높은 임대료와 재료비 상승, 가맹점과 신용카드 수수료, 각종 사회보험료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에따라 노동계는 최저임금은 올리되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책을 동시에 이행하자면서 최저임금 인상 폭을 낮춰야 한다는 경영계의 주장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당장 실현시킬 가능성이 낮은 만큼 현 경제상황에 맞게 최저임금 인상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은 7.2%로 물가상승률의 세 배, 전체 임금인상률의 두 배가 넘는다. 그 결과 올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주휴수당을 제외한 명목상 금액으로 OECD 회원국 중 프랑스, 뉴질랜드, 호주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국가가 됐다. 이젠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소상공인 간의 소득 균형을 맞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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