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주간

꿈쩍도 안할 것 같던 정부가 편의점 점주 등 소상공인들의 최저임금 불복종 움직임에 두 손 든 형국이 펼쳐졌다. 정부 당국의 상황 판단은 옳았다. 사태를 제대로 본 것이라고 생각된다. 별 힘이 없어 보이는 소상공인들이지만 그들이 보인 처절한 몸부림에는 절실함을 넘어 생존이 걸린 호소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외침이 있었지만 외면해오다가 집단행동 조짐이 보이자 화들짝 놀란 정부가 즉각적이고도 성의가 보이는 대응을 한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신속한 대응이 최저임금정책등의 시행착오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라기 보다 미봉조치라면 문제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감춰진 수준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 또다시 문제가 불거질지 모를 일이다.

불복종은 저항이나 투쟁보다는 덜 공격적이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파괴력은 저항 못지 않은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불복종 운동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독립운동이다. 미국 독립운동도 영국의 인지세 부과에 대한 세금 불복종 투쟁으로부터 시작됐다. 미국 흑백운동사에서 버스 좌석 흑백차별에 항거한 불복종 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1979년 10월 박정희유신독재에 항거하는 부마(부산 마산)민주항쟁 당시 학생들의 항거에 시민, 특히 상인들의 가세가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시가지 시위 도중 중소 상인들은 시위적극 참여는 물론이고 쫓기는 학생들을 피신시키며 시위를 도왔다. 물론 민주화를 열망하는 의지였지만 여기에는 부가가치세 도입에 항거하는 상인들의 조세저항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일반 시민이나 소상공인들의 불복종 운동은 어쩌면 촛불시위보다 더 폭발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정부가 보인 정책결정 집행 과정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미덥지 못한 대목이 자주 발견된다. 지난달 27일 문재인대통령은 규제혁신위원회를 불과 3시간 전에 취소했다. 담당 부서의 준비 부족, 이낙연국무총리의 건의 등이라지만 대통령 주재 회의가 3시간 전에 취소되는 건 국민들 보기에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이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최저임금과 관련, 최저임금위원회의 파행적 운용도 한심한 일이다. 사용자측 위원 불참도 문제지만 친노조 정권하에서 노동자위원의 불참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타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 중심으로 그 중요한 최저임금 인상수준을 결정했으니 후폭풍은 당연했다.

여기저기서 반발이 거세자 공정위원장이 나서 대기업 목죄기에 나서고, 수조원 재정투입으로 최저임금인상 부작용을 막아보려 한다. 정교하지 못한 정책을 펴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어마어마한 재정으로 막아보려는 것이 이 정부 경제정책 설계자들의 수단이다. 심지어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는 ‘현재의 고용부진이 이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전 전정권에서 잘못했기 때문’이라며 네탓 타령을 한다.

이러다 보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간판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조절을 선언하고, 공약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사과까지 하게됐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정책브레인들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드디어 김동연경제부총리는 18일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성장률 목표를 하향조정하는 한편, 일자리 정부가 일자리 창출 목표를 대폭 낮추는 사태를 빚는다. 대통령으로서는 차마 하기 싫은 일들일 것이다. 이처럼 경제정책의 수립 운용이 미숙하고 엉망인데도 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한 것 같다.

청와대의 경제팀과 내각의 경제팀 간 시각차가 상당한 데도 누가 나서서 조정하는 사람이 없다. 이 정도면 인적 쇄신을 통한 정책의 전면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책 실패로 대통령이 사과해야 하고, 통계를 입맛에 맞춰 활용했다가 정부 망신 시킨 당국자들을 언제까지 껴안고 갈지 걱정이다.

아무리 다른 분야의 국정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린다 해도 먹고 사는 문제에 실패하면 그 정부는 성공하기 어렵다. 일자리를 빼앗기고, 소득이 줄고, 생업 유지가 어렵게 된다면 민심은 금새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지금 그런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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