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이번 주부터는 사정없는 폭염이다. 낮에는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다. 집안에서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면 평상 밑 그늘에서 낮잠 자는 고양이가 보인다. 내가 귀여워하는 짱똥이다. 우리 동네의 강아지와 고양이 숫자는 어느 쪽이 더 많다 할 것 없이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강아지는 나한테 덤빌 가능성이 많은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고, 고양이는 대신에 건드리지만 않으면 절대로 사람한테 먼저 덤비는 족속이 아닌지라 난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물론 좋아한다고 해서 그 놈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들은 터치에 무척 민감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날카로운 송곳니에 살이 할퀼 수도 있다. 다만 나 혼자 말을 건네고 (고양이들은 말을 못 하니까), 먹을 것을 주고 (일정한 장소, 일정한 시간에) 눈을 맞추는 정도다. 내 주위에 얼씬거리는 고양이가 대략 대여섯 마리쯤 되는데 거의 비슷한 색깔의 누렁이 들이라 모녀 지간 또는 형제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은 놈들 중 한 놈의 꼬리가 짱똥하다. 누군가 그 고양이한테 해코지를 한 것이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날 때부터 꼬리가 짱똥할 리가 있겠는가? 불쌍하기도 해서 놈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 그러다보니 그 놈만 편애를 하게 되어버렸다. 내가 준비한 먹이를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서 매일 아침 팔각정 (동림정) 밑에 두는데 짱똥이 보다 딴 놈이 먼저 달려들면 쫓아내 버린다. 그래도 내가 자리를 피하면 도망갔던 놈들도 돌아와서 같이 먹곤 한다. 짱똥이는 정말 착한가 보다. 아니면 덩치가 작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형제라서 당연히 같이 먹거나, 그 속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난 밥을 짱똥이 한테만 준다. 눈도 짱똥이 하고만 맞춘다. 마당에 나가면 머리를 이리 저리 돌려서 짱똥이만 찾아본다. 만약 내가 현직 교사이거나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였다면 편애를 받는 본인 이외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원성을 들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과거에 교사이면서 어린 아이들의 어머니였다. 이제 아이들은 다 커서 어머니의 편애 따위에는 상처 받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그동안 참았던(?) 나의 편애를 맘껏 펼친다. 세상 넓은 곳에다가 말이다. 내가 뿌린 꽃씨가 자라는 것에만 신경 쓰고 잡초는 가차 없이 없애버린다. 마당 가득히 피어난 민들레꽃도 잡초의 운명을 면하지 못했다. 막대기모양으로 심겨진 몇 꽃나무들 중 잎이 잘 나오지 못한 놈들은 뿌리 채 뽑히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란 편애로 가득 차 있지 않던가. 이유도 분명치 않은 편애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

내 지인들 중 하나는 남편이 아직도 아내는 두고 다른 것만 챙기는 바람에 상처를 입고 산다. 그이는 창녕 우포 늪 가까운 호숫가에서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사는데 언제나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고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유를 물어보면 우물거리며 분명한 대답을 피한다. 이제 난 이유를 안다. 남편을 따라가기 싫은 부인들이나 일단 따라갔어도 다시 도시로 돌아오고 싶은 부인들은 남편의 편애에 질려서이다. 자연 속으로 갔어도 남편이 나무나 꽃과만 눈을 마주치거나 남편 자신만 생각한다면? 바로 옆에서 친구가 될 수 있는 아내를 한번 편애해 보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금방 알게 될 터인데........

내가 짱똥이한테 하듯이 아내에게 매일같이 맛있는 것을 사 주고 아내하고만 눈을 맞추고 아내만 찾아본다면?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 아내가 원하는 일을 먼저 찾아서 해 준다면?

편애의 대상이 본인이 되어서는 그 인생에 원망만 쌓일 수 있다. 아침마다 짱똥이는 나를 보러 온다. 왜? 나의 편애를 누리기 위해서다.

누군가를 편애하는 은밀한 행복, 한번 누려 보실래요?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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