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연일 섭씨 30도를 훌쩍 넘는 살인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전력예비율에 비상등이 커졌다. 변압기 파손이나 전력과부하로 인한 차단기 작동 등으로 인한 정전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올여름 최대전력수요가 8830만㎾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연중 가장 더운 8월이 되기도 전에 이같은 전망치가 무너지고 말았다. 특히 지난 24일에는 최대 전력수요가 사상 최대인 9248만㎾까지 치솟아 정부의 예상치를 무려 418만 ㎾나 웃돌았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4기를 돌려야 만들 수 있는 전력이다. 그 결과 전력예비율이 7.4%까지 떨어졌다. 예비율이 7%대를 나타낸 것은 2016년 8월 8일 이후 2년 만이다.

이처럼 최대전력사용량이 연일 정부의 예상치를 웃돌자 정부는 부랴부랴 LNG(액화천연가스)와 석탄화력발전소를 총동원하고 정비중인 원자력발전소를 서둘러 가동시키는가 하면 원전의 정비 시기도 늦추고 있다. 이와함께 8월 둘째주까지 최소 100만kW 규모의 추가공급 능력을 확충하기로 했다.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전력 수요증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24일 일제히 “전력 공급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일축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날로 증폭되면서 지난 2011년과 같은 전국적인 대정전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수요 예측이 계속 어긋나고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5일 공개한 ‘하계 수급대책’을 통해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를 8830만㎾, 예비력을 1241만㎾(예비율 14.1%)로 내다봤지만 이 기록이 깨진지 오래다. 게다가 일일 최대 전력수요 전망도 엉망이다. 7월 13일부터 20일까지 8일간 최대 전력사용량이 전력거래소의 예측량을 200만㎾ 이상 웃돈 날이 5일로 절반을 넘었다. 물론 기록적인 폭염으로 장사가 되지 않자 일부 상인들이 에어컨을 가동한 채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는 등의 돌출행동으로 전력수요 예측이 틀릴 수 있다. 하지만, 번번이 수백만㎾씩 빗나간다는 것은 전력 당국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역량마저 의심케 하는 심각한 문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금이 전력수요의 정점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여름이 끝나려면 아직 한 달 가량 남았다. 특히 정부가 최대 전력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8월 둘째주에는 무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려 전력수요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름철에 기온이 섭씨 1도 올라가면 전력수요가 평균 80만kW나 증가한다. 원전 1기를 더 돌려야 맞출수 있는 전력량이다.


블랙아웃은 전기 사용량이 공급량을 넘어서 발생하는 대규모 정전사태를 말한다. 특히 전력망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한 지역에서 블랙아웃이 발생한다면 다른 지역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국 753만 가구에 전기가 나가 620억 원의 피해를 낸 지난 2011년 9월 15일의 블랙아웃이 전형적인 실례다. 9월 중순이었지만 기록적인 늦더위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예비 전력이 300만㎾대까지 떨어지자 전력거래소가 아무런 사전 예고없이 일부 지역 강제 단전(斷電)에 나선 것이 화근이 됐다. 전국적인 '블랙아웃'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일이 커지고 말았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히는가 하면 양식장에선 물고기 수백만 마리가 산소공급 중단으로 폐사하는 등 생산현장과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피해가 속출했다. 전력 당국의 안이한 대응과 주먹구구식 전력 예측, 무시된 매뉴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이러한 결과가 초래됐다.

정부는 이같은 블랙아웃을 사전 예방하기 위해 전력공급 예비력이 1,000만㎾를 밑돌 경우 기업에 공장가동을 일시 중지해 달라는 이른바 전력수요감축요청(DR)을 발령할 수 있다. 정부는 아직 DR을 발령하지 않고 있지만 현재 예비력이 발동 기준을 이미 밑돌고 있어 실행은 시간문제라 하겠다. 지난해 여름 2번, 겨울 10번이나 DR을 경험했던 기업들로서는 언제 공장가동을 중단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

전력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견된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는데다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산업계는 물론 가계의 전기 사용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지역 기온이 최고 35도 이상, 최저 -15도 이하로 떨어진 날이 지난 10년간 각각 6회 및 7회나 됐다. 전력 사용량이 순간적으로 급증할 수 있는 이상기온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전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고 임시방편으로 마냥 기업에 부담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젠 정부가 에너지믹스 등 에너지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여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도모해야 한다. 에너지믹스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탈원전만을 주장하며 지금처럼 오류투성이의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다보면 국민들의 불안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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