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폭염이 이 주째 식을 줄을 모른다. 낮에는 도저히 집 밖을 나갈 수가 없다. 더워도 너무 덥다. 장마철의 후텁지근한 더위와는 완연히 다른, 괄한 장작불에 달궈지는 빈 가마 솥 같은 쨍한 더위다. 살인적인 더위라는 말 밖에 다른 표현이 없어 보인다.


여름의 초입, 넉넉한 강수량과 부드러운 햇빛으로 올해 농사를 낙관했던 농부들의 표정이 요즈음 일그러져 가는 듯 보인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대기도 지친 것 같았다. 바로 옆에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관정이나 양수장이라도 있는 밭이면 낫지만 물 대는 곳이 먼 곳에 있는 논이나 밭은 보통 일이 많은 것이 아니다. 잎이 너무 무성해서 과일이 좀 더 해를 보게끔 미리 솎아 주었던 복숭아 밭 주인들은 아뿔사! 하는 기분들인가 보다. 차라리 잎이 많아 과일 알을 불볕으로부터 가려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부지런을 떨었다는 생각도 해 본단다. 그늘에 있어 잘 자라지 못할 것 같아 걱정했던 호박이나 가지들이 도리어 푸른빛을 보인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복숭아밭이나 채소밭의 푸르렀던 식물들이 이제는 기운을 잃고 축 늘어졌다. 자주 물을 주었지만 적셔지는 물보다 기화되는 물의 양이 더 컸기 때문에 하나 씩. 둘 씩, 빛을 잃어가는 식물들이 많아졌다. 이래서 농사가 어렵다고 하나보다.


서울 친구 부부들과 약속한 여름휴가가 눈앞에 닥쳐왔다. 아침 일찍 텃밭에 나가 여행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먹을 채소들을 골랐다. 그 동안 신기하게도 잘 크는 참외를 보기만 하고 먹을 엄두를 못 내었는데 이제 드디어 다섯 개의 참외를 수확할 용기를 낸 것이다. 처음 모종을 심을 때만도 참외나 수박은 전문가들이나 하는 과일이라고 생각해서 살 생각을 하지 못 했다. 그런데 형님이 –한번 심어봐!- 하고 권유하시는 바람에 네 개의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수박도 두 개 심었는데 그 놈들은 비실비실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 했고 참외는 그럭저럭 자라기 시작했지만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크게 자란 것이다. 씻어서 한번 깎아 먹어 보았다.


아니 웬걸 이렇게 달 수가! 참외는 완전 성공이다! 게다가 과육도 버석거리지 않고 아삭하면서도 쫄깃, 씹는 맛이 있다. 자신 있게 채소 바구니에 넣을 수 있었다. 형님 말로는 참외가 잘 되는 성주도 모래흙이 아니고 조금 진흙에 가깝다나. 그러니 우리 텃밭에는 참외가 맞다는 거다. 우연찮게 텃밭에 맞는 품목까지도 알아내게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흠........내년엔 참외로 텃밭을 가득 채워 볼까나? 그래서 친구들에게 한 상자씩 보내 주고? 즐거운 상상에 미소를 띠며 뭐 더 가져갈게 없나? 둘러보았다. 참, 알록이 옥수수가 영글었으니........ 만나게 될 친구들의 숫자만큼 수확한 후, 쪄서 넣었다. 옥수수는 내가 좋아해서 한번 몇 자루 쪄 봤는데 약간의 붉은 반점이 보이는 것 외엔 맛으로는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조금 실망한 편에 속했다. 그 밖에 토마토와 호박, 고추, 오이를 넣었다. 펜션에서 호박과 고추를 넣어 된장찌개도 해 먹어야지. 2박3일이라도 이 불볕 속에 시달릴 식물들이 안쓰러워 형님께 한 두 번이라도 물을 주시라고 신신당부를 해 놓았다.


이번 여름은 태풍의 소식도 거의 없다. 전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태풍을 이번 여름에는 지금처럼 은근히 기다리게 될지 몰랐다. 자연의 힘은 변화무쌍해서 우리 인간의 예측 능력에 언제나 벗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또 한 번 자연을 향해서 경외심을 느끼게 되나 보다.


작년에는 장마도 없었다. 마른장마라고 몇 번 비가 지나갔을 뿐이다. 올해는 이른 여름에 장마다운 장마도 있었고 초복과 중복까지 엄청난 불볕더위가 덮치고 있다. 이 땅의 모든 농부들이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는 아름다운 마무리 늦여름이 다가오길 빌고 싶다.


뜨거운 땀을 흘리는 이 땅의 모든 농부들에게 축복을!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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