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기 부회장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 실적과 전망이 폭염에 지친 국민들을 더욱 맥 빠지게 만든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촉발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 증가, 청년 실업으로 압축되는 일자리 쇼크, 기업의 투자부진과 생산 차질에 이르기까지 걱정되는 소식이 줄을 잇는다.

지난 7월 하순 발표된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올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7%로 고꾸라졌다. 지난해 2분기와 비교하면 연간 2.9% 성장에 그쳤다. 미국의 관세인상으로 철강, 자동차, 가전 등 주요 품목 수출이 차질을 받는 터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확산되는 추세라서 시장 여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설비투자증가율은 -6.6%로 나타나 경제 역동성이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 대출규제 강화와 보유세 등 세금인상 영향으로 부동산시장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주택 및 토목건설투자도 -1.3%로 돌아섰다. 7월 소비자심리지수까지 101.0으로 15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면서 우리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우려했던 조짐들이 한꺼번에 가시화하는 형세다. 여기에는 미.중간 무역분쟁과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요 수출시장 여건의 급변과 국내 산업구조개혁과 지지부진한 규제 혁신 등대내외 환경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경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일부 관계자들은 경제분야 등 국정운영에 걸림돌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전임 이명박 박근혜 정권 탓으로 애써 돌리려는 면피성 발언을 내놓았다. 이 모든 책임을 이제 2년차로 접어든 현 정부 탓으로 볼 수도 없다는 점에서 전 정권의 책임론을 모두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현 정부 주요 정책들이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현실을 외면해 자초한 몫이 커 보인다. 노조요구를 의식해 산업구조개혁을 늦추면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에 집착한 정책들을 강행해 시장의 반발과 부작용을 불렀다.

‘부자증세’ 구호를 앞세워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증세를 추진하면서 전체적인 세부담 형평성을 감안한 세제개편은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아파트 한 채 가진 은퇴 연금생활자들을 피부양자에서 제외해 별도로 보험료를 물렸다. 정부가 흔히 지칭하는 ‘고소득자’가 아닌 중산층 가정들도 졸지에 재산세가 급등하고 건보료까지 껑충 뛰는 부담을 안게 됐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횡포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공분하는 게 사실이다. 재벌의 힘이 어느 정도이기에 조씨 일가가 저렇게 날뛰고 성격은 왜 그리 못됐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도덕적으로 당연히 비난받아야 하고 범법행위가 있었다면 응분의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경찰과 관세당국, 검찰이 두루 나서 조씨 일가의 비행과 혐의를 경쟁하듯 쏟아내고 약속이나 한 듯 구속영장을 줄줄이 신청했다가 차례로 기각당하는 모습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법치주의에서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과 공개적인 망신과 겁주기는 사뭇 다른 영역이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혼재된 현상을 본다. 적폐청산을 외치면서 이명박과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측근들을 사법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구도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기업인들은 흔히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로 기업하기 어려운 심정을 표현한다. 유혹을 받기도 쉽지만 과잉처벌도 적지않다는 자조적인 말로 들린다. 조리돌림에 가까운 조씨 일가 사법처리 과정을 보면서 다른 기업인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 정부는 한번쯤 되새겨보기 바란다.

경제가 어렵게 돌아갈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지난 1년간 소위 적폐청산을 통해 나름대로 정치기반을 다졌으면 이제는 우선 순위를 경제로 돌려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원리제가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지만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에 반드시 요구되는 처방이다. 지방선거도 마쳤으니 표를 의식한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가 통하는 정책목표를 세워 경제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의 좌장격인 이해찬 의원은 당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개혁적인 정책을 뿌리내리려면 민주당이 20년 정도 집권하도록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는 요지로 발언했다. ‘보수궤멸’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20년 집권’은 보수궤멸이 아니라 경제가 뒷받침해야 가능한 꿈이다. 경제가 활력을 잃어 국민 삶이 고단해지면 20년 집권의 꿈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