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문재인 대통령이 마침내 규제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 의료기기 규제 완화를 주문한데 이어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을 방문, 은산분리 완화를 강조했다. 그는 “은산(銀産)분리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들어 규제 개혁에 대한 발언 수위를 계속 높여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규제 혁신 토론회에서 "과감한 방식, 그야말로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고, 5월에는 "정부 1년이 지나도록 혁신 성장에서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며 관료와 청와대 관계자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또한 6월에는 "답답하다"며 예정된 규제 혁신 점검 회의를 취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강력한 규제혁파 의지를 보인데 이어 급기야 직접 선두에 나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자 문 대통령 지지층에서 먼저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경실련, 정의당 등은 증권회사가 재벌의 사금고 역할을 한 2013년의 동양증권 사태를 예로 들면서 은산분리 규제완화에 반대하고 나섰다. 동양증권은 당시 동양그룹 경영진들과 공모해 자사의 부실회사채를 우량한 것처럼 속여 판매, 4만여명의 개인 투자자들에게 약 1조3,000억원의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청와대는 일단 인터넷 전문은행과 의료산업 분야부터 규제의 벽을 깨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청와대는 신산업 육성을 위해 신기술을 일단 허용한 뒤 사후에 규제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와 일정 기간 규제를 전면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방안을 도입,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한 개인정보 규제 완화, 드론의 비행 공역 추가 지정, 자율주행차의 임시 운행 허가 절차 간소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몰론 규제완화가 만사를 해결해 주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예컨대 은산분리 완화를 통해 인터넷 은행의 자본 확충 물꼬를 터주더라도 사업 호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 은행 스스로 시중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증자만 반복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막힌 곳을 뚫어 활로를 열어주고 낙후된 기존 산업에 자극을 준다는 의미에서 규제완화는 무척 중요하다. 위험이 있다고 해서 신기술을 규제로 제어한다면 새로운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은산분리 완화가 실시될 경우 기존 은행권은 고객 유출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핀테크와의 협업을 통해 인터넷 은행 대응에 나설 것이다. 기존 은행은 이를 통해 신속한 혁신을 달성하고 스타트업은 자본을 유치하는 상호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원유라고 불리는 빅데이터의 한국기업 이용률은 고작 5%(2016년 기준)이나 글로벌 기업은 29%나 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올해 발표한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도 한국의 빅데이터 사용 및 활용 능력은 63개국 중 56위에 그쳤다. 이는 세계 각국이 글로벌 빅데이터 산업을 리드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개인정보 보호 규제로 발목이 묶여있기 때문이다. 세계 전기자동차 및 자율주행차 산업을 리드하고 있는 미국 기업 테슬라가 회사 설립 15년 만에 100여 년 전통의 포드 자동차와 GM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성과를 낸 것도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완화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규제 개혁'은 역대 정부 모두가 정권 초기에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핵심 과제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던 2008년 1월 전봇대 때문에 대형 트레일러가 지나가지 못한다며 ‘규제의 전봇대'를 뽑으라고 지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를 '암 덩어리'에 비유하며 도려내겠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규제 기요틴(단두대) 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규제 총량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해 당사자의 반발,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시민단체의 반대, 규제가 있어야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관료사회의 경직성과 국회 입법 실패 등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의 '집단 이기주의', 관료의 '복지부동', 국회·시민단체의 '정쟁 도구화'와 '발목 잡기'를 뛰어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제아무리 험한 난관이 있더라도 반드시 규제를 철폐하고 말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무척 중요하다. 일본, 미국, 영국, 중국 등 세계 주요국들은 규제철폐의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결같이 신기술 선점을 위해 규제혁파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문제인 정부의 규제혁파는 이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이 은산분리 완화에 적극성을 보이자 여야는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젠 속도를 높여야 한다. 계속 머뭇거리다간 국제경쟁력은 추락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고무적인 것은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이 이달부터 월 1회 규제개혁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로 하는 등 규제개혁에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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