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딸네 식구들을 먹먹한 마음으로 배웅한 다음날 영천으로 돌아왔다. 서울서 아침 10시 발 고속버스로 오다 보니 도착했을 때는 한낮이었다. 에어컨이 잘 된 버스에서 영천 땅에 한 발을 내딛었을 때의 느낌은 순식간에 한증막에 떨어진 기분. 숨 막히는 뜨거운 사막을 걸으며 “룸서비스! 룸서비스!”를 외치던 만화 영화 속 주인공의 기분을 그대로 느끼며 냉방이 잘 된 택시 속으로 도망치듯 빨려 들어갔다. 영화를 보면서는 웃었는데 지금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아! 지금이 현대가 아니고 조선시대였다면 어땠을까? 속곳부터 차곡차곡 옷을 꿰입은 채로 여름을 보냈을 우리 조상님들은 어떠셨을까?

“감사합니다. 비록 시골에 살지만 우리 집엔 에어컨이 있어요.”

에어컨이 너무 고맙다. 시골엔 마을회관마다 에어컨이 있다. 집에서 각자 선풍기만을 틀고 살거나 에어컨이 있어도 넉넉하게 틀지 못하던 분들이 회관에 모여 함께 시원하게 여름을 난다. 서울에도 쪽방에서 힘들게 여름을 보내는 분들이 함께 모여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의 동사무소에는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시원하게 지낼 그런 공간이 있을까? 그런 점으로 보면 주민 숫자가 적은 시골이 훨씬 더 유리하다.

저녁이라도 7시가 넘어야 조금 시원해진다.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키고 호스도 길게 빼서 텃밭에, 잔디밭에, 꽃나무에, 감나무에 물을 주는 것도 이 때다. 짱똥이에게 밥도 주고 감나무 두 그루에 영양제 대용으로 막걸리를 부어주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뒷마당에 물을 주는 대상이 하나 더 생겼다. 원래 뒷마당은 잔디를 안 심고 자갈을 부어 놓았다. 그런 자갈을 뚫고 수박이 여러 놈 자라기 시작했다. 봄에 수박 모종을 심어 보지 않았다면 그 이파리가 수박 이파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파리가 특이하게 예쁘게 생긴 수박 모종이었지만 착근하지 못하고 말라버렸다. 그 때, 아쉬웠는데........작년 여름, 오픈 하우스 행사를 우리 집 뒷마당에서 테이블과 의자 펼쳐 놓고 치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사람들이 수박씨를 뱉었던 것이 지금 싹이 튼 모양이다. 거의 일 년 만에.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과연 열매를 맺을 수는 있을까? 계절이 너무 늦다. 열매는 아니라도 꽃이라도 피워 보았으면.

아주 어두워지기 전에 복숭아 농사로 이름난 동생뻘 되는 농부의 집을 찾아갔다. 지난주에 복숭아를 따는데 조금 도와줬다. 장갑과 마스크를 끼고 꼭지 부분을 살짝 비틀어 따는 비교적 쉬운 과정이지만 익은 놈을 골라내는 것이 요령이다. 그 때 복숭아 한 소쿠리를 얻어 왔는데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오늘 가는 것은 친척들, 친구들에게 한 상자씩 보내기 위해서다. 우리 동네 복숭아라고, 정말 맛있는 복숭아라고, 복숭아 과수원만 30년을 한 농사꾼이 키운 복숭아라고 선전도 많이 할 생각이다. 가장 더운 고장이라고 뉴스에 이름을 올린 영천에서 생산한 복숭아라고, 혹서를 뚫고서 익은 과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덥기만 하면 과일의 당도가 높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란다. 너무 더우면 식물도 생물체라 광합성이 자연스레 이루어지질 않는다고. 이른바 온열질환에 걸린다는 말이다. 그 어려움을 뚫고 수확하는 것이니 농부는 얼마나 기쁠까. 동생은 상품을 받을 수취자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확인하고서는 휴대폰으로 찰칵 찰칵 찍어 놓는다. 내일 택배 차에 실려 보내면 냉장차에 옮겨져 다음날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농가에서는 스마트 팜으로 수요자도 찾고 택배도 보낸다. 과육이 곧 물러져 당일 택배가 가능한 곳에서만 재배하는 수밀도 종류만 빼고는 수많은 종류의 복숭아를 생산한단다. 딱딱한 복숭아라 여러 날 두고 먹을 수 있고, 먹을수록 더 맛있는 영천 복숭아가 자랑스럽다.

영천 복숭아, 만세!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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