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백남기 농민.

[투데이코리아=유한일 기자] 지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故)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와 함께 당시 청와대와 경찰이 서울대학교병원으로 후송된 백 농민의 치료 과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술과정에도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1일 이 같은 내용의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유사사건 재발 방지 및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정책의 개선을 경찰청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진상위는 19차례의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방침 △경비계획 △집회금지통고 △경력동원 및 차벽설치 △살수행위와 피해자 부상 당시 상황 △서울대병원으로 후송,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경찰의 역할, 사후조치 등을 검토·심사했다.
백 농민은 지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중태에 빠진 뒤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고 뇌수술을 받았다. 백 농민은 연명치료를 받다 이듬해 9월25일 숨졌다.
21일 진상위에 따르면 백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병원에 옮겨졌을 때 의료진은 수술을 하더라도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혜화경찰서장은 서울대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신경외과 전문의가 수술을 집도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도 서울대병원에 전화를 걸어 백 농민의 상태를 문의하자 서울대병원장은 백선하 교수에게 “피해자 상황을 확인하고 적절한 조처를 하라”고 지시했다.
백 교수는 백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위원회는 백 교수가 수술을 집도한 것은 의료적 동기만이 작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유남영 위원장은 “물론 사람을 살리고자하는 의료적 동기도 충분히 있었을 것으로 본다”며 “그렇지만 경찰과 청와대 등의 외부적 입장이 백 교수가 직접 집도를 하게 된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지난 2015년 11월14일 서울 중구 시청 서울광장에서 민중총궐기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행진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아울러 위원회는 집회 현장에 차벽 설치와 차단행위는 과도한 경찰권 행사로서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와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위원회는 현존하는 위험이 명백한 상황이 아님에도 백 농민을 향해 지속적인 직사살수를 한 것과 살수행위를 주시하지 않고 살수를 지시한 행위가 피해자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경찰은 백 농민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된 살수차에 대한 안정성 검증도 없이 살수 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위원회는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와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공식적인 의견을 발표하고 피해자 가족과 협의해 사과할 것을 경찰청에 권고했다.
또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해 국가가 집회 주최자와 참여자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하고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집회시위 보장을 위한 업무지침’ 수립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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