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서울 아파트값의 천장이 뚫렸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가 29억 5000만 원에 거래됐다. 한강이 보이는 곳의 호가는 30억 원이나 된다. '평당 1억 원' 수준이다. 그래서 '서울 집값이 미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집값 고공 행진은 단지 강남 지역만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 강남 인근 지역에 집중되던 집값 상승 열풍이 이젠 서울 전 지역과 수도권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서울의 서대문·양천·도봉구와 경기도의 광명· 과천· 군포시 등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지역이 상승 흐름을 주도하며 신고가를 찍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단기간 내 가격 폭등으로 매도인의 계약 파기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부터 진정세를 보이면서 하락세를 보이던 서울 주택 값이 이처럼 폭등세로 반전된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용산·여의도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박시장의 개발 발언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보유세 인상,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 잇단 정부 규제로 식어가던 주택시장에 다시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로 작용했다. 그런데도 박 시장은 지난 20일에는 한 달간 거주했던 삼양동 옥탑방을 떠나며 강남·북 균형개발 전략까지 내놓았다. 강북 지역에 새로운 경전철을 신설하고 강남의 서울시 산하기관을 강북으로 이전하며, 빈집을 매입해 주거대책을 세우는 등 임기 내 총 1조 원 이상을 투입해 강북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정부를 믿고 집값이 내려가길 기다리던 실수요자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서둘러 아파트 매수에 나서면서 강북 상승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추세다. 시장에서는 이미 나올만한 규제책이 다 나왔기 때문에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어 당분간 백약이 무효라고 입을 모은다. 벌써부터 노무현 정부시절과 같은 주택폭등을 점치고 있는 분위기다.

사태가 이처럼 악화되자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와 ‘투기지역 추가 지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1일 국회에서 “10월 시작하는 공시가격 조사에서 올해 집값 상승분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겠다”며 공시가격 인상을 공식화했다. 그동안에는 공시가격을 단기에 급격히 올릴 경우 부담이 크기 때문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산정해 왔으나 내년부터는 집값이 10% 오르면 공시가격도 같은 수준인 10%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올해 집값 상승률을 공시가격에 그대로 반영할 경우 내년 보유세는 올해보다도 20~30%, 많게는 상한선인 50%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내년에는 9억 원 초과 주택에 부과하는 종합부동산세도 인상되기 때문에 고가 주택의 부담은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주택 공시가격이 인상되면 다주택자는 물론이고 1주택자라도 과표 상승으로 재산세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특히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부세는 물론이고 건강보험료 산정과 기초노령연금 수급대상자 선정 등 약 60가지 항목과 연관돼 있어 인상 파장이 무척 크고 국민들의 부담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4년 연속 공시지가가 크게 오른 제주에서는 기초노령연금 신청자 중 43%(4138명)가 탈락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전국 평균 탈락률인 29%를 크게 앞서는 수치다. 소득이 없는 은퇴세대들의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무주택 서민들은 그동안 뛰는 집값과 과도한 전셋값 부담으로 심한 고통을 느껴왔다. 특히 젊은층은 주거 부담 때문에 결혼까지 기피하고 있다. 이런데도 일각에서는 이처럼 주택이 투기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유세 강화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해소, 과세 형평성 제고,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당연한 귀결책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공시가 인상은 상당한 조세저항을 노정시킬 것으로 예견된다. 특히 현금 여유가 없는 노령 퇴직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아끼고 아껴서 어렵사리 집 한 채 장만해 투기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채 10년, 20년 한 집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데 이젠 집값이 올랐으니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더구나 정부가 빚내서 집사라고 하거나, 사전에 투기방지책도 내놓지 않고 무작정 개발 호재를 발표해 투기를 조장하고선 그 책임을 선량한 국민에게 뒤집어 씌우니 수긍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올해 서울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0.19%나 올랐는데 내년에 공시가격을 시가와 비슷하게 올릴 경우 최저임금 인상보다 훨씬 더 큰 후유증이 나타나지 않을 까 심히 우려된다. 단순하게 집값이 올랐으니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다간 큰 코를 다치기 십상이다. 투기억제를 위해 공시가격 현실화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투기와 담을 쌓으면서 오랫동안 한집에서 살아온 1가주 1주택자에 대해서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대책이 요구된다. ‘혁명의 역사는 조세저항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조세정책 실패로 정권이 흔들린 사례는 무수히 많다. 급하다고 졸속행정을 하다간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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