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평소 같으면 별 관심사도 아닌 통계청장 교체를 두고 시끄럽다. 야당이 벌떼같이 일어나 반발하고 언론 또한 갖가지 의혹을 들이대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차관급 통계청장 임명이 이렇게 이슈가 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적극 부인에도 불구하고 원인제공은 정부가 했다. 청와대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고, 정부 정책에 흠짓나는 통계를 생산해 발표한 통계청장을 경질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논란의 핵심이다. 사실 여부는 시간을 두고 밝혀지리라 본다. 그렇다 해도 이정도 핫이슈로 등장한 것은 국가통계의 엄정성 때문이다. 지난 일이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청와대 입맛에 맞는 통계’만 발표된다면, ‘정부의 주문 통계가 작성’된다면, ‘코드통계, 맞춤형 통계가 작성되거나 해석’된다면 어찌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면 아찔한 사건이다.

정말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나쁜 의도가 없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러나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가장 두드러진 사건이 지난 1.4분기 가계소득동향 통계 발표에서 시작됐다.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어 이 정부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내용으로, 논란에 불이 붙었다.

1차로 ‘저소득층 소득이 줄었다’가 통계청 자료였고, 논란이 일자 2차로는 문재인대통령이 나서 ‘통계를 잘 분석해보니 최저임금인상 효과가 90%’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분석이 ‘정부입맛에 맞는 통계해석’이라는 공격이 나와 결론적으로 대통령이 좀 민망스럽게 됐었다. 이 과정에서 통계청 분석이 문제가 있다며 재해석한 장본인이 바로 이번에 임명된 통계청장이라는 스토리다.

물러난 통계청장의 말(이임식 등에서)을 들으면 더욱 석연치 않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내가 그렇게 (정부)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다”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말을 음미하면 사안의 일단을 짐작케 한다. 그런 청장을 별 잘못도 없어 보이는데도 협조적인 인사로 교체한 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눈치 없이 정부 정책을 흠짓 내는 자료를 내놓는 사람, 정책 홍보에 소극적인 인물, 비록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정부 부처가 요구하는 자료를 신속하게 제공하지 않는 청장을 청와대가 좋아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통계청장을 경질했다는 것이 야당과 언론의 주장이다. 물론 정부는 이를 극구 부인한다. 앞으로 두고 보면 안다. 판단은 국민 몫이다.

통계청의 중립성 보장이 통계신뢰의 관건

가장 큰 문제는 통계의 생명인 신뢰성이다. 이같은 논란 속에 국가통계의 생산 분석을 총괄하는 청장이 내놓는 통계에 국민들이 신뢰할지가 최대 관건이다. 설령 신뢰한다 하더라도 혹여 ‘관제통계’를 근거로 정책이 수립되고, 정책효과가 알려진다면 이는 끔찍한 사건이다. 그래서 통계청장의 교체에 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걱정하는 이유다. 정부는 정책이나 인사에 반대하는 세력을 적대시해선 안된다. 그들도 국민이다. 국민은 정책에 반대할 권리가 있다.

통계는 모든 정부 정책을 수립하는데 기초자료다. 통계가 현실과 동떨어지면 정책도 현실을 도외시한 수준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는 객관적이다. 정직하다. 정치성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수치로 나타낼 뿐이다.’ 이래야 한다. 그러려면 통계생산에 중립성 독립성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통화정책을 통활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 만큼이나 통계청의 중립성 독립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선진 각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통계청은 내각 지휘를 받지 않는 의회 산하의 독립기구“(영국) ’통계 생산활동의 독립성을 법으로 보장‘ (프랑스)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통계청장 임기는 7년 보장’ 등의 예에서 보듯이 통계기구의 중립성 독립성은 현대국가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가뜩이나 각종 경제지표 해석 과정에서 아전인수격 해석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 통계청장 경질 인사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는 2005년까지는 국가 통계업무를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서 맡아했다. 그 이후 통계청이 발족돼 오늘에 이르렀고, 3000여명을 거느린 조직으로 커졌다. 통계청은 직접 작성하는 통계 60여종, 각 부처가 작성하는 통계를 승인 관리하는 것이 380여개, 지방자치단체에 작성을 승인하고 관리하는 것 등을 합하면 모두 1000여개가 넘는 통계를 생산 또는 관리하고 있다.


그간 우리 통계청이 발족한 이후 통계의 신뢰성, 해석 문제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신뢰성을 확보해왔고, 기구의 중립성 독립성이 상당히 보장되어왔다는 평가다. 통계업무 종사자의 퀄리티도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런 통계청이 시험대에 올랐다. 일부 우려대로 신임 통계청장이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난다면 금방 들통이 난다. 첫째는 시장과 현장이 들고 일어선다. 자영업자들의 집단반발이 그 예다. 둘째는 평생 자존심을 걸고 묵묵히 통계업무에 종사해온 사람들의 반발에 부닥칠 것이다. 부당하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고 고발하는 세대가 지금의 주류다. 정부 말대로 통계청장 경질에 나쁜 의도가 없었다면 앞으로 신임 청장이 증명하기 바란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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