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기 부회장


최근 정부가 통계청장을 바꾼 인사는 대단히 부적절했다. 절차에 잘못이 있다거나 인사에 불법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파장을 고려할 때 인선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은 정책부처가 아니라 국가 통계를 생산 관리하는 곳이다. 통계의 신뢰성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을 통계법 등 관련법규에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의 신뢰성 확보는 규정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경제개발이 한창인 시대에도 국가 통계는 국내외에서 그리 높은 신뢰를 받지 못했다. 차관을 도입하기 위한 대외협상에서 우리 통계는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국제기구 통계에서도 신뢰를 받지 못했다. 국민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통계 조차 참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대외부채와 차관도입 등 민감한 부분은 아예 일반에 공개되지도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까지 대외부채와 외환보유고 등 긴박하게 돌아가는 통계는 정부가 허용하는 선까지만 공개하고 “경제 펀더멘탈(기초)은 튼튼하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혹독한 IMF 외환위기와 함께 한국 경제의 치부가 대내외에 속속 공개되는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국가가 관리하는 통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들이 본격화했다. 1990년 통계청 승격 이후 2005년 청장 직급이 1급에서 차관급으로 올라갔고 2009년 민간 출신 청장이 처음 취임해 통계청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이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황수경 청장을 물러나게 하고 강신욱 신임 청장을 임명하면서 통계의 신뢰성 논란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골몰해 있는 시점에 통계청이 고용지표가 갈수록 악화되고 소득 분배까지 나빠져 지난 1분기 빈부격차가 최악에 달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통계가 아닐 수 없지만 그렇다고 민감한 시점에 취임 13개월인 청장을 교체할 일은 아니었다. 통계청장은 아직 임기제는 아니만 이명박 정부 이후 통상 2년을 채우는 관례를 이어왔다. 더구나 후임 청장이 지난 5월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청와대 입맛에 맞게 통계청자료를 다시 분석해 제시한 연구원이었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청장은 보건사회연구원에 재직하면서 가계소득동향 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조사방식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고 시인했다.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해온 청와대가 고용과 소득 분배가 악화됐다는 통계로 난처한 입장에 처한 시점에 통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조사방식을 제시한 연구원을 새 청장으로 전격 발탁한 구도다. 당장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청와대가 ‘분식통계’를 만들려고 작심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바른미래당은 “통계를 왜곡하는 것은 여론조작과 같은 범죄행위”라고 비난했다.

황 전 청장은 이임식 후 한 인터뷰에서 “제가 그렇게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는 말을 남겼다. 청와대와 갈등이 있었음 암시한 발언으로 들렸다. 통계청 공무원노조 역시 청장 교체에 대해 “통계청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조치로 보인다”는 성명을 냈다.

청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일부의 극단적인 비난처럼 통계가 조작되는 사례까지는 오지 않으리라고 본다. 현행 통계청의 업무 시스템과 조직, 구성원들의 자질이 이를 허용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엄격한 자격요건과 나름대로 자부심,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나 강 신임 청장의 주장대로 새로운 조사방식을 도입하거나 표본을 조정하다 보면 설계 초기단계부터 정부 입맛에 맞는 통계가 시도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청와대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소득 분배 분야 전문가가 청장으로 하게 될 역할에 의구심이 집중되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통계의 적절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국민이 품게 될 불신이 걱정이다. 국민이 소득과 고용 통계를 신뢰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주요 경제정책이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경제 지표를 향한 불신은 소득 정책뿐 아니라 부동산 대책, 세제개편 등으로 확산될 위험이 크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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