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한국이 올해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임신이 가능한 여성 한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인 합계출산율이 올해 2분기에 0.97명으로 1명 이하로 떨어졌다. 통상 상반기보다는 하반기에 출생아 숫자가 더 줄어들어 올해 합계출산률이 처음으로 1명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무척 크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0명대’를 기록하는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17 세계 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98개 나라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없다.

과거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될 때와 동독이 서독과 통일을 이룬 초창기에 동독 출신 주민들의 합계출산율이 1명에 미달한 적이 있다. 체제 붕괴와 같은 미래가 극히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우리나라는6.25전쟁 때보다도 아이를 적게 낳고 있다. 역대급 취업난과 주거난, 양육 부담 등이 체제 붕괴나 전쟁보다도 더 큰 불안을 청년들에게 주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대학가에서는 정규직에 취업하기만 해도 플래카드가 나붙을 정도로 취업난을 겪고 있다. 또한 집값과 전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스스로의 힘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특히 자녀 한 명을 낳아 대학을 졸업시키기 까지 3억원 가까이 든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여건아래서는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정규직이라도 아이를 낳아 키우기가 부담이 된다. 그러니 “육아 비용을 고려할 때 한국인들이 정말 열심히 아이를 낳고 있는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2031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즐어들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급속한 출산율 저하로 인구감소 시점이 약 10년 정도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출산율 저하는 필연적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와함께 ‘고령화사회’가 된지 불과 17년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프랑스가 100년, 미국이 70년, 독일이 40년이상 소요됐고 고령화속도가 빠르다는 일본도 24년이나 걸린 것과 비교할 때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다. 불과 8년후인 2026년에는 고령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구조는 국력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이다. 저출산. 고령화는 성장잠재력을 추락시키는 등 사회 전반에 심대한 충격을 가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게 된다. 생산과 소비가 위축돼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노동투입량 감소로 자본을 어지간히 투입해도 성장률을 끌어올리기가 힘들어 진다. 게다가 지금은 젊은이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면 되지만 20년 뒤에는 젊은이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복지 비용을 부담해야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반해 수혜를 입을 사람은 늘어나니 가만히 있어도 복지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재정은 악화된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도 고갈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주요 선진국들은 고령사회로 진입한 지 10~20년이 지나서야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이들 두 가지가 거의 동시에 몰아 닥쳤다. 게다가 선진국에 진입하기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으니 앞날이 더 어둡다. 정부는 2005년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지난 10여년간 100조원이 훨씬 넘는 막대한 예산을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쏟아 부었다. 그런데도 출산율이 높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출생률 저하는 특히 지방에 치명적이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한국의 지방 소멸 2018’을 보면 전국 228개 기초단체 가운데 ‘소멸 위험 지역’이 89곳(39.0%)으로 조사됐다. 그래서 지방정부가 인구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전남 해남군의 경우, 전국 최초로 출산정책 전담팀을 구성하고 공공산후조리원을 유치하는 등 다양한 저출산 정책을 편 끝에 4년 연속 합계출산율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합계출산율이 2.42명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현재의 인구규모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출산율인 대체출산율(2.1명)을 넘었다. 이제까지 중앙정부의 정책은 출산과 보육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정부의 일원화된 이러한 대책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이젠 사고의 발상을 전환할 때가 된 것 같다.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펼치기 보다는 저출산 해소에 힘을 쏟을 수 밖에 없는 지방에 예산을 내려 보내 지방정부 스스로 특성에 맞게 다양한 정책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 효율을 높이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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