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고갈 앞 외교·군사분쟁 가능성 대두… 이제는 ‘양식전쟁’으로

▲ 일본 최대 수산물시장 츠키지(築地)시장에서 해체되는 참다랑어.


‘네코마다기(猫跨ぎ)’에서 전세계인의 미식(美食)으로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작년 10월5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남방참다랑어보존위원회(CCSBT) 제24차 연례회의’ 현장. 호주, 유럽연합(EU), 대만,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남아공은 물론 한국과 일본 대표단도 착석한 가운데 회의장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회의 주요안건은 각국 어획증명제도 결의, 항만국 검색제도 실시를 통한 불법 어획물 유통 원천차단 등. 그러나 각국 대표단이 무엇보다 주목하는 건 전년 연례회의에서 결정된 국가별 조업쿼터(할당량) 재검토였다.


회의에 앞서 펼쳐진 각국 간의 손에 땀을 쥐는 신경전, 이해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이합집산 끝에 우리나라는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남위 30~50도 수역에서 서식·회유하는 남방참다랑어 조업쿼터 1천240톤을 잠정확보했다. 전년 대비 100톤 가량 늘어난 규모였다.


불그스레한 속살을 지닌 참다랑어는 ‘붉은 황금’으로 불린다. 198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과 함께 참다랑어 회·초밥은 날것을 먹지 않는 서구권에서도 ‘고급음식’으로 인식되며 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금도 미국 월스트리트, 영국 그레이터런던, 프랑스 일드프랑스 등에서 참다랑어를 먹는 사람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자연히 수요도 급증했고 이에 비례해 가격도 급등해 작년 1월1일 도쿄(東京) 츠키지(築地)시장에서는 혼마구로(本マグロ. 아오모리산 참다랑어) 한마리가 무려 ‘7억6000만원’에 경매되기도 했다. 본시 과거 일본에서는 고양이도 안 먹는 생선이라는 뜻의 네코마다기(猫跨ぎ)로 불렸던 게 참다랑어인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참다랑어 대중화는 멀리 17세기 에도(江戶)막부 성립으로까지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의 중심이 서쪽(교토)에서 동쪽으로 옮겨가면서 도쿄에서는 대대적인 토목공사가 연일 벌어졌으며, 불교에 심취해 소·돼지 등 육류섭취를 삼가던 일본인들은 바다와 인접한 도쿄의 특성을 이용해 생선초밥을 만들어 인부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이후 20세기 들어 미 군정(GHQ) 시기를 겪으면서 육류섭취가 일반화되자 일본인들은 비싼 소·돼지 대신 식감이 비슷한 참다랑어를 찾았다. 서구인들은 스페인, 쿠바 등 연안국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생식을 금하던터라 초밥을 터부시했지만 1980년대 일본이 버블경제를 바탕으로 미국 턱 밑까지 추격하게 되자 부(富)의 과시, 비즈니스 등의 목적으로 너도나도 참다랑어 초밥을 선호하게 됐다. 참다랑어는 이렇게 전세계가 사랑하는 식재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같은 인기는 필연적으로 자원감소를 야기했다. 특히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해 미국과 함께 ‘G2’로까지 급부상한 중국에서 참다랑어 유통량이 증가한 건 치명적이었다. ‘볶고 삶고 구운’ 음식만을 먹던 중국인들은 참다랑어 생식요리에 한 번 맛들이자 무서운 속도로 자원을 고갈시켜 나갔다.


이로 인해 지난 2016년 우리나라의 참다랑어 어획량은 전체 다랑어류 어획량(579만톤)의 1%(4만8000톤)에도 미치지 못하는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작년 참다랑어 수입에 우리나라가 지출한 돈은 1천200억원에 달한다. 1957년 부산항을 떠난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 ‘지남호’를 필두로 오대양을 누비며 참다랑어를 사냥해왔던 바다의 노장들은 참다랑어 개체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입 모아 지적하고 있다.


▲ 양식장에서 헤엄치는 참다랑어떼.


자원고갈 앞 ‘양식’ 해결방안으로… 韓日 위협하는 中


‘붉은 황금’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가열되면서 각국 간 외교·군사분쟁 가능성이 대두되고 원양업체와 ‘시 셰퍼드(Sea Shepherd)’ 등 환경단체들 간의 물리적 충돌까지 지속되자 국제사회는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바로 ‘양식’이다.


참다랑어 양식기술에서 선두주자는 단연 일본이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참다랑어 인공사육에 성공했다. 치어가 성체가 될 확률(3~5%)이 낮은 점에 고심하던 일본은 인공수정을 통해 치어를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해 ‘완전양식’까지 이뤄냈다. 스페인, 호주 등은 아직 치어를 잡아 성체로 키우는 불완전양식 단계에 머물러 있다.


양식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풍부한 자원’이 담보된다는 것이다. 자연산의 경우 한정된 자원 앞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어업국 간 분쟁소지가 발생하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지만 양식은 자본만 있다면 생산량을 조절해 얼마든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자연산과 달리 중금속 위험이 덜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우리나라도 근래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 양식어가를 중심으로 참다랑어 양식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세계 최고의 참다랑어 양식 기술을 보유한 일본 긴키(近畿)대학에서 수학한 수과원 제주수산연구소 지승철 박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알을 자연수정시켜 치어를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바다에서 잡은 치어를 성체로 키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참다랑어 양식은 매우 까다롭다. 치어는 90% 이상이 죽는다. 자라는 과정에서는 서로를 잡아먹는다. 빛, 소음 등에 민감해 놀라서 수조에 머리를 부딪혀 죽기도 한다. 스스로 아가미를 움직이는 근육이 없는 참다랑어는 심지어 잠잘 때에도 좌우 뇌를 번갈아가며 쉬면서 헤엄치는 특성이 있다. 이동과정에서 물 속에 녹아있는 산소를 아가미로 흡수하기 위함이다. 전속력일 때는 속도가 무려 시속 80~100km에 달한다.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무서운 속도로 일본의 뒤를 추격하고 있다. 한국의 참다랑어 양식 기술은 일본의 90% 수준이다. 일본이 1970년대부터 양식에 착수하고 우리나라는 2007년에 비로소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수중가두리 제작, 수정란 채취, 배합사료 제조 기술에서는 일본을 앞서고 있다.


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지 박사가 긴키대학에서 수학할 때 일본 기술자들은 외국인들을 연구에서 배제했다. 지 박사가 참다랑어에 열정을 보이자 대학 측은 비로소 그를 연구에 참여토록 했지만 그나마 어깨 넘어 배우는 게 고작이었다. 이같은 악조건에서 한국은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마냥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이달 초 중국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7월 산둥(山東)반도 동쪽 240km 지점 해저에 세계 최대규모의 심해양식장을 조성했다. 이 양식장에는 연어 치어가 투입됐지만 조만간 남중국해 3곳에 건설될 심해양식장에는 참다랑어가 사육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특유의 ‘대륙의 규모’를 감안할 때 완전한 양식기술 확보 시 장차 전세계 참다랑어 양식시장을 독점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의 뒤를 한국이 맹추격하고 중국마저 뒤따를 정도로 참다랑어 시장은 누구나 탐내는 ‘엘도라도’다. ‘붉은 황금’을 차지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중일(韓中日) 3국은 총력을 다하고 있다. 수십조원 규모의 전세계 참다랑어 시장 선점 경쟁에서 한중일 중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국제사회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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