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정권이 바뀌면 거의 예외 없이 기업, 기업인은 한차례 곤욕을 치른다. 이른바 기업 길들이기다. 정권 당사자들은 ‘길들이기가 아니라 사회 정의를 확립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기업인들은 길들이기라고 여긴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그 기간 숨죽이고 잔뜩 움츠리며 지낸다.

이 정부 들어 유난히 기업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정권 주류가 대부분 반기업 정서를 갖는 운동권 및 시민운동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투자에 소극적이고, 보신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여기에다 대기업 오너들의 눈살 찌뿌리게 하는 갑질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고,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인상이다. 고용위기에 처한 정부 입맛 맞춰주느라 재벌들은 거액의 투자계획, 인원 채용계획을 앞 다투어 발표한다. 뜯어놓고 보면 늘상 하는 정도이지 투자나 채용을 특별히 늘리는 수준도 아니다. 그것도 정부에 인심 쓰듯 발표해놓고 실행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누가 체크할 수도 없고, 이행하지 않았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재벌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은 이유가 있다. 1960년대 이후 압축경재성장 과정에서 정부는 재벌위주의 정책을 폈다. 자연히 재벌에 대한 갖가지 특혜가 주어졌고, 이를 자양분으로 크게 성장한 기업들이 성정 과실을 합당할 만큼 사회에 환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벌과 권력간의 유착 비리는 온 국민이 보아온 사실이다.

기업 오너들의 책임의식 결여도 문제다. 2세 3세로의 경영세습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유능한 후계자로 이어졌지만 상당수는 함량미달 낮은 수준의 세습자가 기업을 맡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눈살 찌뿌리게 하는 갑질 비리가 터져 나온다. 세 번째는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지만 그들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간 받아온 혜택에 부합할 만큼 기여하지 못하는 데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큰 것이다. 여기에 반기업 정서가 강한 정권실세들로부터 압박을 받는 것이 최근 우리 기업들 둘러싼 분위기다.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격려 유도해야

자, 그러면 기업은 타도 대상인가.


필자는 전두환군사정권 시절 국재 재벌랭킹 8위였던 국제그룹이 하루아침에 해체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 무렵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회장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국제그룹 해체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무척 의외였다. “양정모회장은 자격없는 경영인이다”였다. 같은 기업인으로서의 동정심이 아닌, 가혹한 평가였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회장은 “전후 사정이야 어찌됐든 양회장이 거느린 종업원이 10만명이 넘는데, 그들의 직장이 불안해졌고, 가족을 합하면 30~40여만명의 국민이 앞날을 걱정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알차고 큰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한 한 기업인 이야기. 중소기업을 하던 그의 아내는 월말만 되면 배가 아파 앓아누워야 했다. 월말이면 친정에 가서 돈을 빌려다가 종업원 월급을 지급해야 하니 앓을 수밖에 없었다. 시일이 흘러 이 기업은 탄탄해졌고, 친정으로 돈 빌리려 갈 일이 없어졌는 데도 이 사장 사모님은 월말 배앓이가 상당기간 지속됐다.

최근 고 최종현SK회장 20주기 추도 행사가 이목을 끌었다. 고려대와 연세대 두 대학 총장이 동시에 신문에 기고문을 싣고 최회장을 추모했다. 그들은 최회장이 세운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유학했다. 최회장이 세운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지난 44년간 3,700여명의 인재에게 유학비와 체재비를 지원했다. 아무 조건도 없다. 그간 해외 명문대 박사만도 740명에 이른다.인재 양성에 대한 고인의 집념과 파격적인 장학금 지원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많은 공헌을 했을 것이다.


과거 우리 역사에서도 많은 부자들의 사회 기여를 볼 수 있다. 손꼽히는 부자요 명문가였던 우당 이회영선생 일가는 전재산을 독립운동에 쓰고 자신들은 험하고 어려운 생활을 한 것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표상이다. 경주 최부자 얘기도 유명하다. 광활한 농지 소유자였던 최부자는 인근 10리안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나와선 안된다며 베풂을 실현했다. 6.25전쟁이 터져 공산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밤이면 부자들을 인민재판정에 불러 심판하고 죽이는 일이 빚어지던 때,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이웃을 보살폈던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앞장서서 보호해준 사례는 전국 곳곳에 널려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기여가 없느냐. 아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수행하고 있다. 재단을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의 기금을 조성, 이웃과 함께하고 국가 사회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그 규모가 국민의 요구 또는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만큼 행하여지느냐는 좀 더 살펴볼 일이다.

어쨌든 기업으로선 좀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정부나 국민들도 기업을 매도하지만 말고 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기업을 타도대상으로만 봐선 안 될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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