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침하하면서 사람과 자동차, 건물 등을 빨아들이는 싱크홀(sink hole)이 하루 평균 2.6개씩 생기고 있다. 차를 몰고 가던 도중 갑자기 도로가 움푹 꺼지면서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내가 살고 있는 집이 한순간에 커다란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상상을 하게 되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2005년 전남 무안군에서는 전날까지 멀쩡했던 30평이나 되는 방앗간 창고가 하룻밤 사이 19m 깊이의 땅속으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2008년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서는 천둥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땅에 구멍이 생겨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또 2010년에는 충북 청원군의 마을 저수지에 구멍이 생겨 물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최근에는 지난달 31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구덩이 크기가 90평이나 되는 깊이 6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 5일에는 의정부시 사패산 화룡사 입구에서 싱크홀이 발생, 그곳을 지나던 지게차가 통째로 빠졌고 10일에는 경남 창원에서 깊이 2m의 싱크홀이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싱크홀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그 중에는 원인 불명인 경우도 상당수였다.

싱크홀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거나 인공적으로 생긴다. 자연 발생 싱크홀은 주로 물에 잘 녹는 석회암과 백운암, 암염 지대에서 주성분이 지하수에 녹으면서 발생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국토 대부분이 단단한 화강암과 편마암층으로 이뤄져 있어 땅 속에 빈 공간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들어 도심에서 인공적인 지반침하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인구 밀집지역인 도심지에서 발견되는 싱크홀은 지하수 네트워크에 이상이 생기면서 만들어진다.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이나 지하철, 대형 건축공사 등으로 지하수를 너무 많이 빼내게 되면 지하수위가 낮아져 땅속에 공간이 생기게 되고 이 공간이 위에서 누르는 압력을 버텨내지 못하게 되면 한순간에 지표가 무너져 내린다. 사라지는 지하수의 양이 많을수록 싱크홀의 크기도 커진다. 또한 지표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경우 메마른 흙에 물이 흥건해 지면서 지반 약화로 땅이 내려앉을 수 있고 파손된 상.하수관이나 빗물 연결관에서 새어 나온 물이 주변 흙에 스며들어 싱크홀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지하수가 너무 잘 흘러도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 흐르는 지하수가 수로 주변의 점토와 모래 등을 깎아내 지하수 길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으로 나타나는 싱크홀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지만 인공적으로 생기는 싱크홀은 사전 예방하면 막을 수 있는 인재다. 싱크홀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5년간 전국에서 4500여 건이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3년 898건, 2014년 858건, 2015년 1036건, 2016년 828건, 2017년 960건으로 해마다 900건 안팎의 지반침하가 발생하고 있다. 이중 서울이 3581건으로 전체의 78%를 차지, 가장 많다. 이어 경기도 255건(5.6%), 광주 109건(2.4%), 대전 84건(1.8%), 충북도 82건(1.8%) 순이다.


싱크홀의 주요 원인은 노후 하수관 손상이 3027건(66%)으로 가장 많았고 관로공사 등이 1434건(31%), 상수관 손상이 119건(3%)으로 뒤를 이었다. 노후 상·하수관의 파손으로 물이 흘러나오면서 지하의 흙이 쓸려 내려가 싱크홀을 유발하는 것이다. 여름철인 6~8월의 월평균 발생건수가 350~500여 건으로 겨울철의 100여 건, 봄·가을의 200여 건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은 집중호우 등으로 지반이 약해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면서 집중호우에 따른 지질 변화가 예상돼 앞으로 땅 꺼짐 현상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자연 발생 싱크홀과는 달리 인구밀집지역인 도심에서 생기는 싱크홀은 엄청난 인명 및 재산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구체적인 발생 원인을 규명해 근원적인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은채 단순히 구덩이를 흙으로 메우는 땜질식 복구는 대재앙을 자초할 수 있다. 특히 지반이 약한 한강 매립지로, 싱크홀 발생이 잦은 잠실과 여의도 지역에서는 보다 철저하고 확실한 원인 규명이 있어야 하겠다.


이젠 노후 상·하수관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통합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야 한다. 아직까지도 30년 이상 지난 노후 지하 시설물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하시설물 안전 점검을 주기적으로 실시, 땅 꺼짐 현상을 사전 예방해야 한다. 아울러 도심 지반침하가 주변 부실공사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거 늘어나고 있는 만큼 공사현장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해 나가야 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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