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어른들은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갖춘 정장이고 어린이들은 오랜만에 장만해준 새 옷을 입었다. 어머니와 큰어머니 작은어머니가 할머니의 지휘 하에 정성껏 차린 차례상 앞에서 경건하게 차례를 지낸 뒤 대소가 가족들은 느즈막한 아침을 먹고, 줄지어 집을 나선다. 큰집 작은집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렬 길이는 늘어난다. 우리들이 가는 추석날 코스는 정해져있다. 산소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으므로 성묘하는 순서가 정해져있다.

들도 지나고 산도 넘고 시냇물도 건너는 동안 꼬마들은 마냥 즐겁고, 어른들은 몇 대조 할아버지 산소가 제일 명당이고, 어느 할아버지 묘소는 손질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눈다. 60~70년대 추석날 풍경이 이랬다.


80년대에 들어 도회에 나간 식구가 많아지면서 명절이면 한바탕 귀성전쟁이 빚어졌다. 서울이나 부산 울산 등 8도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고향 오는데 10시간은 보통이고 20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네명 다섯 명의 자식들이 그들의 처자식을 대리고 귀성하는 고통을 보다 못한 시골 부모님의 영단이 내려진다. 자식 고생 시키기보다 자식이 사는 도회지로 부모님들이 올라와 명절을 지낸다. 이른바 역귀성(逆歸省)이다.

그때만 해도 역귀성은 새 트랜드로 뉴스가 됐다. 많은 자식들은 부모들의 파격적인 역귀성 가정을 부러워했다. 그러더니 여유가 생기고 살기가 좋아지니 아예 명절을 해외에서, 또는 휴양지에서 보내는 사람이 늘어난다. 올 추석만 해도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45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조상님들도 헷갈리게 됐다. 그러니 명절이면 자손들 만나기 위해 조상님들이 내비게이션을 장만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추석을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명절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랐다. 남성은 귀성길 고생, 여성은 음식장만 고통이라며 아예 명절을 없애달라는 청원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처럼 간소하게 보낼 수 없느냐는 호소다. 명절을 전후해 매스컴에 등장하는 용어만 봐도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귀성 귀경전쟁, 추석물가, 명절증후군이 주종을 이뤘으나 이젠 옛말이다.

바뀌는 명절 문화


명절 상차림의 간소화는 이제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풍성한 상차림보다 간소하고 식구들이 나누 먹기 좋은 음식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어떤 집은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 중심으로 차례상을 차린다. 변종 차례상이라고 불린다. 음식도 큰집이 주도해서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품목을 나눠 준비해서 진설한다. 서양 사람들이 파티에서 흔히 하는 포트 럭(Potluck, 각자 음식을 장만해와 함께 나눠 먹는 것)이 널리 애용된다.


제사나 명절 행사를 큰아들만 해야 되느냐. 그래서 형제간에 돌아가면서 제사나 차례를 모시기도 한다. 종교가 다른 형제간은 절에서 교회에서 성당에서 각자의 신앙 예식으로 명절을 지내기도 한다. 아예 벌초나 차례를 없애는 가정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 인터넷 매체의 ‘요즘 것들의 명절’이라는 특집기사를 보자. 한 시어머니는 자신의 작고한 남편 유골을 화장, 납골당에 모셔 벌초를 없앴다. 그간 포트 럭으로 차리던 차례까지도 아예 없애고 간소한 가족 모임으로 바꾸고, 추모 기도로 대체했다. 시어머니의 파격에 아들은 경악했으나, 며느리는 쌍수 들어 환영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연대한 반란이다.

여성들의 파워가 커질수록, 그리고 젊은 세대들의 전통에 대한 인식이 엷어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 할 것이다. 이같은 고부(姑婦)연대는 전통과 가부장제에 대한 반란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시어머니의 반란이 없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 며느리의 은밀한 대화다. “동서,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시면 제사는 성당 위령미사로 대체하고, 명절 차례도 생략하고 여행가자” (오 마이 뉴스 특집 ‘요즘 것들의 명절’)

예법(禮法)의 진화

요즘 사람들이 그처럼 부담스러워 하는 명절 차례나 제사가 유교 전통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교 관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유교에서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만 제사(기제사)를 지낼 뿐, 명절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절 차례상 문화는 자손들이 자기들끼리만 좋은 음식을 먹기가 죄송해서 상을 차리고 조상들께 절하고 음식을 올리면서 시작됐다는 설명.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양반가를 중심으로 이런 분위기가 경쟁적으로 번지면서 과중한 차례 문화가 조성된 것이다.


장남만 제사를 지내야 한다거나, 음식을 한 집에서 책임지고 장만한다는 관례도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유교 측은 설명한다. 과거에도 선조들은 형제마다 음식을 준비해 오거나 제사 일부를 나눠 맡는 분할봉사를 했다고 한다. 종갓집에서는 지금도 제사 때 반드시 두 번째 술잔을 맏며느리에게 올리게 해 여성을 존중하는 사상도 있었다는 것이다.


세태가 변화하면서 명절 예식이 편법으로 바뀌고 있지 않나 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원형으로 돌아가는 측면도 있음을 보여준다. 어찌됐든 명절 문화나 예법은 진화하고 있다. 불가피한 변화다. 그러나 조상을 숭배하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조상을 기리고, 풍성한 수확을 감사하고(Thanks giving), 자손들 간의 우애 화목을 도모하는 명절 문화는 이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우물물만 떠놔도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진짜“라는 정성으로 명절을 보낸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