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보이스피싱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요즘 보이스피싱에 넘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다들 반문하지만 올들어 하루 평균 피해자가 무려 116명이나 되고 있다. 피해액도 하루 평균 10억원이나 된다. 이에따라 금융감독원과 금융권이 10월 한 달간을 보이스피싱 제로(Zero) 캠페인 기간으로 설정하고 전국 2만여개 금융사에서 대대적인 홍보 활동에 돌입했다.

보이스피싱은 음성(voice)과 개인정보(private data), 낚시(fishing)를 합성한 신조어로 전화를 통해 불법적으로 개인 정보를 빼내 금융사기를 벌이는 범죄다. 과거 보이스피싱이라고 하면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시골 노인들에게 자식들이 다쳤다고 하거나 정부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해 돈을 요구하는 수법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법이 무척 교묘해져 보이스피싱임을 의심하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영특하고 법률지식이 해박한 변호사조차도 당할 정도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2006년 처음 등장한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총 16만 건이 발생했고, 피해액 규모는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올해들어 8월까지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천 633억원으로 작년 한 해 전체 피해액인 2천431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8개월간 피해자도 3만 명으로 지난해 연간 피해자 3만 1천명과 비슷하다. 어처구니 없는 이러한 범죄에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이 허다하지만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이처럼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는 범죄 수법이 인터넷이나 첨단 통신 기술과 결합하면서 날로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고, 범죄단체도 조직화·국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수법은 ‘대출사기’다. 경기악화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제1금융권 이용이 힘들어 고금리의 제2금융권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이 증가하면서 급박성 등 이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대출사기가 보이스피싱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체 보이스피싱 사례 1만 6338건 중 1만 3159건이 대출 사기형이고 10건 중 8건이 금융기관을 사칭한 수법이었다. 주로 대환대출을 빙자한 기존 대출금 상환이나 추가 대출을 요구하는 수법으로 피해자들의 돈을 뜯어낸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이 높아지니 수법도 그만큼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금융사기 수법은 실로 교묘하기 짝이 없다. 사기꾼들은 무작위로 아무에게나 전화를 해 이자가 무척 싼 자금이 있는데 이것이 필요한지를 물어보고 필요하다고 하면 작업을 시작한다. 이들은 금융사 정식 상담사 이름과 사진을 무단 도용해 고객이 의심하면 공공연하게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고 상담사 등록번호도 불러준다. 사기꾼들이 보이스피싱을 위해 금융사에 정식으로 등록된 상담사 이름 등을 몰래 도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담사 본인은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활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 리가 없다.

사기꾼들은 저리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면 조회 동의를 받아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고객의 부채를 파악한 뒤 대환해야 할 부채 등의 상담을 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사 대출한도와 금리가 어느 정도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달콤한 유혹을 한다. 그런 다음에 금융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유도한다. 물론 이 홈페이지는 보이스피싱 업체가 만든 가짜다. 피해자가 가짜 사이트에 접속하면 즉각 해킹프로그램이 피해자의 휴대폰에 심어진다. 일단 해킹프로그램이 깔리면 피해자가 거는 모든 전화를 중간에 가로챌 수 있게 된다. 그러니 피해자가 의심을 하고 금융사나 경찰, 국세청 대표번호로 전화를 하더라도 중간에서 가로채져 보이스피싱 업체로 연결된다. 따라서 고객이 직접 금융사에 전화해서 상환계좌와 금액을 받았다하더라도 이는 보이스피싱 업체가 알려준 계좌와 금액인 것이다. 결국 피해자는 기존 고금리 대출금을 갚기 위해 새로 받은 대출금을 금융사가 알려준 계좌로 입금했지만 이는 보이스피싱 업체의 대포통장으로 입금해 버린 결과가 되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휴대폰으로 자금 상담 전화가 오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프로그램이나 사이트 접속을 일체 하지 않아야 한다. 실수로 사이트에 접속했다면 다른 일반 전화기를 이용해 금융사에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 그리고 휴대폰을 다시 포맷하거나 초기화해 보이스피싱 해킹프로그램을 제거해야 한다.

대출사기형 보이스피싱의 주된 표적은 젊은 20·30대 사무직 여성들이다. 이들은 사기 등 범죄에 대한 직, 간접적 경험이 적은데다 법이나 규정, 상사의 지시사항 등을 잘 준수하는 성향이 있어 상담원을 사칭하거나 사법기관 등의 권위를 내세운 사기범이 명의도용, 계좌안전조치 등을 거론하며 금융사기를 조심해야 한다거나 전문용어를 구사할 경우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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