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 뒤에는 ‘생태계 순환’ 얼굴도… ‘필요악(惡)’으로 자리잡은 태풍

▲ 우주에서 내려다 본 태풍의 모습.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동아시아로 접근 중인 슈퍼태풍 ‘위투’로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최대풍속이 초속 50m에 달하는 위투는 26일 새벽 서태평양 북마리아나제도의 휴양지 사이판을 덮쳤다. 나무가 뿌리 채 뽑히고 공항 관제센터가 무너지는가 하면 사망자까지 발생한 가운데 1천700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도 현지에 발이 묶인 채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구가 탄생하고 대기가 형성된 이래 태풍은 지진, 홍수와 함께 인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 까마득히 먼 선사시대는 물론 고대, 중세, 그리고 현대에도 태풍은 무수한 인명을 앗아갔다. 우리나라만 해도 고려, 조선시대 때의 태풍 피해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태풍은 심지어 북한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했다.


‘파괴’의 대명사 격이 된 태풍은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악(惡)’으로 규정되고 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태풍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큰 것으로 알려진다. 본 기획에서는 태풍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 태풍으로 거세게 요동치는 바다.


태풍의 개념과 위력


태풍은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을 통칭한다. 영어로는 타이푼(Typhoon)이라고 하며 어원은 중국어 기원설, 그리스 신화 기원설 등 다양하다. 청나라 초기 학자인 왕사진(王士禛)이 저술한 향조필기(香祖筆記)에 이미 태풍을 뜻하는 태(颱)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어 전자에 좀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서양에서는 허리케인, 인도양에서는 사이클론으로 각각 지칭한다. 이름은 각각이지만 모두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라는 점에서 성격은 비슷하다.


태풍은 주로 7~9월 사이 자주 발생한다. 간혹 6월이나 10월에 형성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근래에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이 시기에도 자주 발생하는 형편이다. ‘위투’도 10월에 발생한 대표적 태풍 중 하나다.


태풍 작명은 서구권에서 먼저 시작됐다. 호주 예보관들이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 이름을 붙이던 것이 미국으로 전래돼 여성 이름만 붙이는 게 관례가 됐다. 그러나 성차별 지적이 제기돼 1978년부터는 남녀 이름을 교대로 붙였다. 1998년에는 다수 국가가 참여하는 태풍위원회(TC)가 설립돼 각 나라가 제출한 이름을 일본기상청이 부여한다. TC 회원국은 한국, 미국, 일본, 중국, 홍콩, 마카오,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크로네시아, 북한 등이다.


한반도를 덮친 태풍 중 가장 큰 피해를 남긴 건 2002년 ‘루사’다. 당시 피해금액은 무려 5조1479억원에 달했다. 평균 최대풍속 약 초속 60m의 루사는 213명의 사망자, 33명의 실종자, 9만명의 이재민도 야기했다. 루사는 우리나라에 ‘특별재해지역제도’가 신설되는 계기가 됐다.


두 번째로 큰 피해를 입힌 태풍은 불과 이듬해인 2003년 발생한 ‘매미’로 피해금액은 4조2225억원이다. 이어 △1999년 올가(1조490억) △2012년 볼라벤·덴빈(6천365억) △1995년 재니스(4천563억) △1987년 셀마(3천913억) △2012년 산바(3천657억) △1998년 예니(2조749억) △2000년 쁘라삐룬(2천520억) △2004년 메기(2천508억) 등 순이다.


역대 가장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태풍은 일제(日帝)시대인 1936년의 제3693호 태풍이다. 무려 1천232명이 사망했으며 4000명이 부상당하거나 실종됐다. 가장 유명한 태풍은 1959년 사라다. 최대풍속은 무려 초속 85m를 기록했으며 849명이 사망하고 2천533명이 부상당했으며 실종자는 206명이다. 이재민은 37만명에 달했다.


틀린 전망을 자주 내놓는다는 비판을 받는 기상청의 ‘흑역사’도 있다. 1987년 셀마가 한반도를 덮쳤을 당시 기상청은 태풍이 대한해협을 통과해 내륙에는 큰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으나 결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풍이 예상경로로 지나갔다고 허위주장을 했다가 고위직 상당수가 사퇴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기상청 분석이 맞았다는 반론도 있다.


▲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을 덮친 ‘고난의 행군’ 당시 굶주려 쓰러진 여성.


北 숨통을 끊어놓을 뻔한 태풍


혈통세습 정권으로 인해 ‘막장경제’였던 북한에 치명타를 가한 태풍도 있다. 1995년 재니스로 이 태풍으로 인해 북한 지역에는 최대 1천200mm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져 말 그대로 온 지역이 물바다가 됐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실패와 정권 수뇌부의 부정부패에 겹쳐 그간 기대던 소련마저 붕괴된 가운데 대홍수를 몰고온 재니스로 인해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게 된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최대 ‘300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1997년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증언)가 발생했다. 많은 탈북자들이 당시 자고 일어나면 길거리에 ‘굶어죽은’ 시신이 즐비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경제난의 근본적 원인은 사회주의의 한계, 북한 지도부의 부패와 무능함이지만 재니스가 일격을 날린 사실은 분명하다.


2010년대 들어서도 태풍은 매년 한반도를 방문하고 있다. 2010년 곤파스는 서울 등 수도권을 직격한 태풍으로 유명하다. 2011년 무이파, 2012년 카눈·볼라벤·덴빈·산바, 2013년 다나스, 2014년 나크리, 2015년 할롤라, 2016년 라이언록·치바, 2017년 노루에 이어 올해에도 쁘라삐룬·솔릭·콩레이 등이 한국을 습격했다.


해외에서도 태풍 피해는 지속되고 있다. 1959년 사라는 한국은 물론 이웃나라 일본에도 영향을 끼쳐 50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대륙의 스케일’ 중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75년 니나로 인해 무려 ‘22만9000명’이 숨졌다. 이 태풍은 상륙 6시간만에 830mm의 물폭탄을 떨어뜨리면서 62개의 댐을 붕괴시켜 많은 마을이 홍수피해까지 입었다.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끼친 태풍도 있다. 2014년 일본을 강타한 ‘너구리’는 미국 기상캐스터가 한국어 발음 그대로 읽어 화제를 모았다. 그해 한 식품업체가 생산하는 ‘너OO 라면’ 판매량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져 경제학계가 배경을 분석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호수.


비바람으로 ‘생명’을 잉태하는 태풍


이처럼 ‘파괴’의 대명사가 된 태풍이지만 지구 생태계에 있어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우선 태풍은 장마전선과 함께 농번기 강수량을 책임지는 양대산맥이다. 태풍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지 않거나 와서도 비를 뿌리지 않을 경우 그해 농사는 극심한 가뭄 앞에 초토화된다.


대기질 개선효과도 있다. 미세먼지가 한창인 가운데 태풍은 정체돼 있던 대기상 오염물질을 한번에 쓸어내는 역할을 한다. 또 태풍에 동반되는 비바람은 강·호수의 녹조나 적조를 제거해준다. 무엇보다 적도 지방에 집중된 태양에너지를 극지방으로 이동시켜 지구 전반의 온도평행에 크게 기여한다.


대표적 ‘효자태풍’은 1994년의 월트·브랜던·더그다. 그해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던 우리나라에 세 태풍은 잇따라 비바람을 몰고와 다 죽어가던 작물들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성격도 ‘얌전해’ 피해도 미미했다. 모 방송사의 뉴스앵커는 “이렇게 태풍을 기다려 본 적이 있을까”라는, 역대 태풍 피해자들이 들으면 화를 낼 ‘망언(?)’까지 할 정도로 세 태풍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효자태풍’은 적당한 풍속에 적당한 비바람을 동반할 때나 가능한 얘기다. 지금도 사이판에서는 제26호 태풍 위투로 인해 2000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들이 귀국길이 끊긴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천재지변이 인재(人災)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여야는 당쟁을 멈추고, 정부는 논란소지가 많은 정책들 대신 국민안전에 집중해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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