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항의 “누구도 韓 정부와 일하기 어려울 것”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문재인정부와의 협력중단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배상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는 반면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 신용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경제학계·사회 일각에서 나온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5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국제법에 기초해 한국 정부와 맺은 협정을 한국 대법원이 원하는 아무 때나 뒤집을 수 있다면 어떤 나라도 한국 정부와 일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30일 일제(日帝)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배소 재상고심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이 소멸된 건 아니라고 판결했다.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당시 일본은 한국에 무상 3억달러(현 환율로 약 3천366억원), 차관 2억달러를 지급했다.


청구권협정에는 ‘배상’이라는 문구가 담기지 않았지만 학계는 사실상의 강제징용 배상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장기영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은 “이 자금에는 배상적 성격이 있다”며 “보상금을 국가 자격으로 (일본에) 청구하니 (피해자) 개인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노무현정부 민관합동위원회도 2005년 8월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은 청구권협정에 ‘포함’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들어 대법원이 이같은 해석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이미 박근혜정부 시절의 ‘위안부합의’를 ‘적폐’로 규정하면서 사실상 파기한 바 있다. 위안부합의, 청구권협정 등 잇따른 합의 파기에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신용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학계·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다. 낮은 신용도는 투자 감소, 협력 약화 등으로 이어진다. 반면 강제징용 피해자들 개개인에 대한 일본의 배상은 당연한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신용도 저하 외에 한일관계 악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고노 외무상은 청구권협정 관련 대법원 판결 이튿날 강경화 외교장관에게 전화해 “한일 간 법적기반이 근본부터 손상됐다” “한일관계 법적기반이 무너지면 미래지향도 없다”고 비난했다.


일본은 앞서 위안부합의 파기에 따라 제주관함식에 ‘욱일기 군함’을 첫 참가시키려다 결국 불참한 바 있다.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등장시키려 한 일본 잘못이 크지만 이같은 행동은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문재인정부가 아베 내각에 군국주의 ‘구실’을 준다는 비판이 발생했다. 그간 한일관계를 고려해 ‘큰 사고’는 치지 않던 아베 내각이 문재인정부의 잇따른 합의 파기를 빌미로 ‘폭주’할 시 결국 더 큰 피해를 보는 건 한국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일본은 우리나라 수출 대상국 5위, 수입 대상국 2위 국가다. 한국에 대한 외국 투자에서도 일본은 3위 수준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관광객에서도 일본(17.3%)은 중국(31.3%)에 이어 2위다. 일본의 올해 전세계 GDP 순위는 5조706억달러로 미국, 중국에 이어 3위다. 문재인정부 들어 고용이 악화되면서 일본에서 취업하는 한국 청년들은 급증하는 추세다.


한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중국, 일본은 화해의 손짓을 하는 사이 한국만 외톨이가 될 수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며 “안팎으로 힘든 우리 경제의 어깨에 또다른 짐을 올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일본 재계도 이번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게이단렌(經團連.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은 “이번 판결이 한일 경제관계에 이상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그게(악영향)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일단 국민정서를 의식한 듯 신중한 모습이다. 일본 의원단이 5일 야당을 찾아 판결 수용불가 입장을 나타내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은 “한국인의 기본적 정서는 언제나 일본이 우리에게 피해를 줬다는 것”이라며 “시작은 한국 국민들이 피해자였다는 점을 꼭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에 대해서는 배상할 건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다만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는 입을 모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일본 의원단 간 만남은 불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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