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경제상황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인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2%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우리나라와 성장률이 비슷하거나 앞선 나라와 비교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내년도 예산안에 관한 국회시정연설에서 “우리 나라와 경제 수준이 비슷하거나 앞선 나라들과 비교하면 성장률이 여전히 가장 높은 편이다. 세계가 우리의 경제성장에 찬탄을 보낸다”고 한 말과 거의 같은 맥락이다.
장 실장은 최근 제기된 경제 위기설에 대해 근거 없는 공세라고 일갈하고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라는 일부 주장은 한국 경제를 더 큰 모순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경제정책은 시장 흐름부터 중시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를 ‘시장에만 맡기라는 주장’으로 교묘하게 바꿔 일축하면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공세를 피해가려는 의도를 엿보였다.
문 대통령과 장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들의 발언을 요약하면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최저임금인상으로 타격을 받는 계층이 있고 고용 위축이 발생하는 현실이 아쉽지만 경제는 전반적으로 건실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점차 정책 변화의 긍정적인 효과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최근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매출 격감과 일감 부족으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과 비교하면 너무 한가하고 동떨어진 진단으로 들린다. 특히 완성차 업계의 영업이익이 위험수준으로 추락하면서 협력업체들은 3분의 1 이상이 적자로 내몰리는 절박한 형편이다. ‘세계가 우리 경제 성장에 찬탄을 보낸다’는 발언은 차라리 지난 시절의 한국경제가 이룩한 성과에 대한 평가로 이해하는 게 순리일 듯싶다.
각종 지표를 보아도 우리 경제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실업자 수는 올 들어 매월 100만명을 넘어서 9월까지 월 평균치가 117만7천 여명에 이른다. 기업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도 위축돼 쉽게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하반기 경제전망’보고서에서 내년에도 고용사정은 악화되고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2.7%와 2.6%로 전망했다. 외국계 투자은행과 연구기관들은 정부가 내세운 2% 후반대의 잠재성장률에 훨씬 못 미치는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ING그룹은 2.0%, 도이체방크 2.3%, 소시에테제네랄 2.4%로 내다보았다.
청와대의 경제 인식이 현장의 체감과는 판이하고 국내외 주요 연구소와 투자은행들의 전망과도 괴리를 보이는 현상은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책 목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하지 못하고 미리 설정한 목표나 당위론에 맞춰 해석하고 조정하려는 경향이 현실과 정책 사이에 괴리를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국회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해 작심한 듯 내놓은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김 부총리는 “경제가 지금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란 경제정책을 둘러싼 의사결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발언으로 들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을 중용해 역할을 확대해온 청와대 비서실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 비서진이 정부부처를 앞장서 이끌면서 남북관계와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등 주요 정책방향을 일방적으로 주도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경제 현실에 관한 청와대의 인식도 결국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이 주도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다. 그러니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중소기업의 공장 가동률이 추락해도 ‘일부 어려움이 있지만 경제가 전반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는 자화자찬이 나오는 게 아닌가.
문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을 담당할 위원회 구성을 연내에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구중궁궐(九重宮闕)처럼 담이 겹겹으로 둘려있는 청와대에만 머물지 않고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대선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과의 소통을 저해하는 구중궁궐의 담은 청와대 집무실의 구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편중되고 경직된 성향의 측근들이 소통과 정확한 의사결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을 직시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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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뉴스룸/산업금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