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된 미사일기지 13곳 위치 폭로돼… IAEA도 “판문점선언 후 핵무기 생산”

▲ CSIS가 12일 공개한 북한 삭간몰 미사일기지 위성사진(사진=CSIS).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평화’라는 간판 아래 숨겨져 있던 북한의 ‘시뻘건 민낯’이 드러났다. 앞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북한 핵개발 지속’을 폭로한 가운데 정부·여당의 대북정책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현지시간으로 1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공개하지 않은 미신고(undeclared) 미사일기지 20곳 중 13곳의 위치가 파악됐다고 밝혔다. 또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미사일기지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들 기지가 ‘가동’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화’ 등 갖은 미사여구가 오간 남북·미북(美北)정상회담 이면에서 북한이 몰래 미사일기지를 운용하면서 ‘전쟁’을 준비했다는 이 소식에 현지언론은 앞다퉈 1면에 대서특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보고서는 북한이 미사일실험을 중단하긴 했어도 핵(전쟁물자)시설은 절대 해체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증거”라며 “실제로 북한은 오히려 (핵·미사일) 비축량을 더 늘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WP는 앞서 지난 7월 말 익명의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평양 외곽 산음동의 한 무기공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조 중이라고 전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8월 연차보고서에서 북한이 지난 1년간 흑연감속로(원자로) 및 재처리 공장 설비를 가동시키는 등 핵개발을 진전시킨 흔적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9월 제62차 IAEA 총회에서 보고됐다.


미 전문가들도 우려를 나타내면서 남북·미북 합의서 허점을 꼬집었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은 “김정은은 어떤 약속도 깨지 않았다”며 북한이 올 초 신년사에서 ‘핵탄두·탄도로켓 대량생산·실전배치’를 언급한 점을 들면서 “오히려 김정은은 핵무기 대량생산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남북·미북 합의서에는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가 어디에도 담기지 않았다.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은 “북한은 비핵화를 위해 어떤 단계를 밟을지 그 계획을 보여주는 어떠한 문서에도 서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청와대의 북한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단에 “삭간몰 미사일기지는 단거리용”이라며 “ICBM,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는 무관한 기지”라고 CSIS 보고서 내용을 반박했다. 그러나 단거리탄도미사일은 주 타깃이 바로 ‘남한’이라는 점에서 김 대변인의 발언이 사실일 경우 ‘더 큰 문제’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진다.


다른 주장들도 문제시되고 있다. 김 대변인은 “(은폐된 북한 미사일기지들은) 한미 정보당국이 군사용 위성을 이용해 훨씬 더 상세하게, 이미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기지 대량운용을 알면서도 ‘800만달러’ 대북지원 검토, 제주감귤 ‘배달’, 내년 남북교류예산 1조원 중 구체적 내역이 불분명한 ‘기타’ 2천976억원 요구, ‘서해5도 북한 이양’ 의혹이 제기된 서해훈련중단구역 설정 등에 나선 것이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김 대변인 주장에 미 행정부가 ‘정면반박’에 나서는 사태도 벌어졌다. 김 대변인은 “북한은 이 미사일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 없다. 미사일기지 폐기가 의무조항인 어떤 협상도, 협정도 맺은 적 없다”고 북한 미사일기지 대량운용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미 국무부는 이날 “미북정상회담 약속에는 ‘완전한 비핵화’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폐기’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 발언은 문재인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정면배치되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지난 9월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의 남북 간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 체결식 직후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은 오늘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위협을 없애기로 합의했다”며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모든 전쟁위협 제거’ 주장이 무색하게 북한은 ‘남한’이 공격목표인 ‘단거리탄도미사일 기지’를 가동해왔지만 정작 이 사실이 폭로되자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모든 전쟁위협 제거’ 발언을 부인한 셈이다.


이번 CSIS 폭로에 미 정계도 여야를 초월해 성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 민주당 간사인 에드워드 마키 의원은 이날 성명에서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분명한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 (미북정상회담은) 안 된다”고 촉구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다시금 강경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 여야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안보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초당적으로 협력한다.


CSIS 보고서를 두고 국내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남한도 탄도미사일 기지를 운용 중이다” 등 ‘북한 옹호’가 나온다. 그러나 수시로 ‘서울불바다’ 등을 협박하고 2016년 7월 ‘부산·울산’이 ’핵공격 지점’으로 표기된 지도를 공개하는가 하면 실제로 연평도포격 등을 통해 무수한 인명을 살해한 북한과 그렇지 않은 남한을 동일시하는 건 무리라는 반박이 이어진다.


남한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문제시하면서 북한의 미사일기지 운용은 ‘외세에 맞서는 자위력’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애초에 ‘요격용’인 사드와 ‘공격용’인 탄도미사일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반박도 쏟아진다. 6.25전쟁부터 시작해 반세기 넘게 각종 도발을 일삼으면서 전쟁불씨를 키운 건 북한이지 한미(韓美) 양 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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