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일자리 창출을 국정의 제1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일자리 상황이 파국을 맞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기준 실업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많았고 실업률도 2005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았다. 실질적인 고용창출 능력을 보여준다며 청와대가 가장 강조한 고용지표인 고용률은 61.2%로 9개월 연속 하락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장 기록을 이어갔다. 정부가 ‘단기 알바’를 급조하는 등 무리수까지 동원하며 안간힘을 쓰는데도 고용참사는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고용 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청와대가 "(과도하게 올린) 최저임금 영향이 아닐 수 있다"고 강변하며 근거로 든 수치가 있다. 바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다. 그런데 올해 한 번도 전년 동월 대비 줄어든 적이 없던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마저 지난 10월 중 전년 대비 4000명이나 줄어들었다. 지난 7월부터 3개월 연속 증가 폭이 줄더니 결국 마이너스가 됐다. 작년 8월이후 13개월 만에 감소로 돌아선 것이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숙박·음식업종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비중이 매우 높은 업종인데, 이 분야 취업자 수가 지난달 크게 줄어든 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숙박·음식업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9만7000명 줄어 같은 기준으로 통계가 집계된 2013년 이후 감소폭이 가장 컸다. 최저임금 3대 민감업종으로 꼽히는 도·소매, 숙박·음식업, 시설관리 부문에서만 10월중 28만 개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비교적 양질의 일자리를 가진 제조업에서도 4만5천 명이 감소해 7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

문제는 내년 고용이 올해보다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최근 발표한 '세계 거시전망'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2.5%, 내년에는 2.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잠재 성장률인 2.7% 안팎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하강하면 고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무디스의 한국 담당 이사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는 무역 불확실성뿐 아니라 내부적 불확실성이 나타나며 심리가 위축되는 상황”이라면서 국내 성장률을 깎아먹는 내부적 요인으로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등의 정책 리스크를 꼽았다.

상당수의 경제 전문가들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면밀한 준비 없이 밀어붙인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같은 정부의 '정책 독선'이 고용 참화를 부른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자동차·조선 등 주력 산업의 부진, 경제구조 변화에 따른 내수(內需) 정체 같은 우리 경제의 고질병을 고치려는 시도는 게을리하면서 중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반대에도 친 노동정책을 고집하다 본격적인 시장의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2년간 일자리 분야에 쏟아부은 세금은 무려 54조원이나 된다. 그런데도 일자리 사정은 나빠지고 소득 불평등은 커졌다. 물론 재정이 지원되는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고용은 15만 명 넘게 늘었다. 올 들어 9월까지의 월 평균 신규 취업자 10만382명 가운데 공공부문이 62%에 달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같은 정책 잘못으로 생긴 구멍을 메우는 등 병주고 약주기 식으로 효과가 떨어지는 곳에 세금을 투입하다 보니 전체적인 일자리 사정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도 23조 원에 달하는 세금을 일자리 만들기 명목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공무원 3만 6000명을 증원하는 가 하면 국립대 빈 강의실 불 끄는 일 등 단기 일자리가 주류다. 이젠 단기대책에 급급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시야로 경제의 구조개혁에 나서면서 종합적인 산업진흥책을 마련해야 한다. 적재적소에 세금을 쓰고 있는지, 일보 후퇴 2보 전진을 위해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유예할지 등을 정부 스스로 점검하는 것은 물론 민간 부문의 투자와 소비 진작을 위한 근본 처방에 주력해야 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최근 간담회에서 제안한 것처럼 중국의 '제조업 2025' 같은 산업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파격적인 규제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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