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自淨)노력 없으면 결국 소멸” 찬성 측도 우려 목소리

▲ 현란한 기술로 투우 공격을 받아넘기는 투우사.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지난 14일 고려대에서 열린 ‘2018 외국인학생 축제’ 전통의상 패션쇼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이 연출됐다. 스페인팀 학생들이 기획한 ‘스페인 투우(corrida de toros)’ 공연이다.


참가학생들은 한 명은 머리에 빨간띠를 두른 채 소로 분하고, 한 명은 빨간천을 펄럭이면서 상대학생을 유인하는 식으로 공연을 진행해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투우(鬪牛)는 말 그대로 ‘소싸움’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반도 국가 및 이들 국가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은 일부 남미국가들의 전통문화로 17세기 말부터 성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체중 수백kg의 숫소 앞에서 붉은천을 흔들어 흥분시킨 뒤 달려드는 소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작살을 꽂다 검으로 심장을 찔러 쓰러뜨리는 방식이다.


스페인은 투우를 전통문화로 인정해 일부 주(州)에서 시행되던 투우축제는 더이상 불법이 아니게 됐다. 지난 2013년 상원은 투우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2015년에는 투우가 공립학교 정규교과목으로 편성됐다. 이듬해 스페인 대법원은 카탈루냐 주정부의 투우금지법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올해 2월 유엔은 어린이 관람금지를 요구할 뿐 투우 자체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여전히 투우는 ‘동물학대’라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에는 한 여성이 투우장에 난입해 소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체중 530kg의 숫소 뿔에 찔린 투우사가 끝내 숨져 안전성 논란도 발생했다.


▲ 미노타우로스를 격퇴하는 용사를 그린 그리스벽화.


‘힘(力)의 상징’에 대한 인류의 동경과 도전, 스포츠화 되다

소(牛)는 양, 돼지, 염소, 고양이, 개, 닭 등과 함께 인간이 가축화한 대표적 동물이다. 고기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을 대신해 밭을 가는 귀중한 농경자산이었으며 지금은 가축화 역사가 너무 오래된 나머지 인간의 손길 없이는 야생에서 생존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우리나라 전통소인 한우는 ‘순둥이’의 대명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소는 본시 ‘맹수’였다. 조상 격인 오록스(Aurochs)는 체중이 ‘1톤’을 상회했으며 성격도 사나웠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경사회에서 힘이 센 역사(力士)를 묘사하는 표현은 ‘들소와 같은 힘’이었다. 그리스신화에는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라는 괴수가 등장하기도 한다.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을 제외하고 가장 흉폭한 맹수는 의외로 대부분 소와 같은 초식동물이다. 우선 초식동물은 식량이 지천에 널려있고 민첩성을 바탕으로 힘들게 사냥할 필요가 없기에 덩치가 매우 큰 종들이 있다. 육식동물은 배가 부르거나 영역이 침범당하지 않는 한 대체로 다른 동물을 적극적으로 해치려들지 않지만 초식동물은 그렇지 않다.


실례로 체중 5톤 이상의 ‘지상최대 동물’ 아프리카코끼리가 단순히 ‘재미’로 체중 1~2톤의 코뿔소를 앞발로 이리저리 ‘굴리다가’ 짓밟아 죽인 목격담이 여럿 보고되고 있다. 고대로부터 그 흉폭함이 입증됐던 하마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나약해보이는 외관의 기린마저 밥 잘 먹고 쉬고 있던 암사자에게 덤벼들어 긴 다리로 걷어찬 끝에 일격에 죽여버린 영상이 공개된 바 있다. 이들에 의한 인명피해도 무수히 발생했다.


이같은 대형 초식동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동물은 단연 소였으며, 소를 인간이 1대1로 정복하거나 그 괴력을 목격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나아가 소의 ‘기운’을 얻으려는 노력은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지속되어왔다. 서양에서의 대표적 사례가 상술한 투우이며, 동양에서는 한국의 ‘소싸움’이 있다.


▲ 소싸움대회에서 격돌한 두 황소.


“사람보다 호강” 싸움소의 삶

소싸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합법화 된 동물싸움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신라·백제 간 전쟁 후 전승기념 잔치에서 비롯됐다는 설, 고려 말엽 생겨났다는 설 등 기원은 분분하다.


소싸움 대회는 대한제국까지 이어지다 일제(日帝)치하 때 군중이 모이는 걸 꺼린 일제에 의해 일시중단되고 6.25전쟁으로 국토가 초토화 돼 명맥이 끊기는가 했지만 1970년대 부활해 1990년대부터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다시금 성행하고 있다. 호남지역에서도 소싸움 대회는 자주 열리고 있다.


한국 소싸움이 스페인 투우와 다른 점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며 소를 일부러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싸움은 말 그대로 ‘소들 간의 싸움’이다. 사람의 역할은 경기진행, 관람에 그치며 싸움소 한마리 사육에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기에 승부를 가리는 선에서 경기를 중단시킨다. 싸움소가 경기 도중 중상을 입거나 죽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


청도소싸움축제의 경우 가장 가벼운 체급은 600kg 가량이며 이따금 1톤에 육박하는 몸무게의 싸움소가 등장하기도 한다. 좋은 싸움소의 조건은 ‘날카롭고 독기 서린 눈’ ‘목 등 발달된 상체근육’ ‘긴 꼬리’ ‘뿔과 뿔 사이의 좁은 간격’ 등으로 알려진다. 주요기술은 머리로 공격하는 기본기인 ‘머리치기’, 순간적으로 체중을 실어 들이받는 ‘모둠치기’, 뿔을 얽어 이리저리 흔드는 ‘뿔치기’, 상대 뿔에 자신의 뿔을 걸어 들어올려 목을 꺾는 ‘뿔걸이’, 전력을 다해 밀어내는 ‘밀치기’ 등이다.


싸움소는 보는 사람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대접을 받는다. 우선 전문 트레이너가 붙여지며 볏짚, 풀, 쌀가루 등에 당귀, 황기 등 한약재를 넣은 쇠죽을 하루 2~3차례 먹는다. 대회직전에는 십전대보탕, 낙지 등 보양식이 제공되기도 한다. 트레이너는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싸움소를 돌봐야 하는 등 ‘3D직종’이기에 근래에는 많은 싸움소 농가들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육성된 싸움소는 대회성적이 좋을 경우 몸값이 수억원대 단위로 뛰어오른다. 은퇴 후에는 ‘후대양성’을 위해 씨받이 소 즉 종우(種牛)로 여생을 보다. 한국 소싸움은 세계적인 스포츠로도 발돋움해 2000년대 초엽부터는 일본, 미국, 호주 등 해외 싸움소들도 ‘한판’을 위해 뛰어들고 있다.


▲ 소싸움장 건립반대 1인시위에 나선 시민.


‘동물학대’ ‘전통문화’ 대립 팽팽
‘사행성’ 우려에는 공통된 목소리

올해 3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소싸움대회는 존폐기로에 설 뻔 했지만 폐지를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갔다. 법안은 투견 등 동물 간에 싸움을 붙이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민속소싸움은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반대여론은 동물보호단체, 일부 언론·정치인을 중심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달 말 한 종합편성채널의 모 뉴스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인위적 동물싸움을 금지하는 추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전통이라는 이유로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K동물보호단체는 작년 6월 “소싸움은 동물학대”라며 전북 정읍축산테마파크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정읍시는 해당시설 건립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소싸움 존치를 촉구하는 시민들은 전통문화일뿐만 아니라 싸움소를 학대하거나 고통스럽게 죽이는 행위가 아니므로 보존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동물보호론자들이 동물권(權)을 주장하면서 SNS에 도축과정을 알 수 없는 육류를 즐기는 사진을 올린 것을 두고 ‘이중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동물보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동물보호운동을 통해 얻는 각종 금전적·사회적 이익 및 기득권 유지가 진짜목적 아니냐는 것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소싸움이 지나지게 사행성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에는 찬반 측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전국 유명 소싸움대회마다 출몰해 판돈을 받고 승패에 따라 배당금을 챙기는 일명 ‘맞대기도박’ 일당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소싸움 관련 지자체들은 베팅금액을 10만원 이하로 제한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소싸움이 건전한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업계가 동물학대 반대노력을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한편 불법도박 근절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촉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자정(自淨)의 노력이 없다면 동물학대 논란 끝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견육(犬肉)의 길을 소싸움도 언젠가는 반드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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