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별 헤는 대신 ‘늑대’와 생존투쟁 벌여… ‘흉노·바이킹’ 등 역사 뒤바꾸기도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목동의 이미지. 그림은 소설 ‘별’에 등장하는 목동과 소녀.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최근 전국 주요 목장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S목장은 ‘유기농 목장체험’ 이벤트에 10만명이 참여한 것을 기념해 추가이벤트를 실시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D목장은 N포털사이트를 통해 예매 시 최대 22% 입장료 할인행사를 진행한다.


목가적 풍경의 목장은 힐링장소로서 도시인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푸른 초원과 맑은 하늘, 그리고 이리저리 뛰노는 동물들을 보고있노라면 그림이 따로 없다. 가족과 함께할 시 즐거움은 배가 된다.


목장의 주역은 목동(牧童)이다. 말 그대로 ‘풀을 뜯기며 가축을 치는 사람’을 뜻한다. 예로부터 목동은 ‘낭만’의 상징이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소설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가 쓴 ‘별(Les Etroiles)’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목동과 주인집 아가씨의 플라토닉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목동(berger)’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의 한 목장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는 양치기다. 어느날 동네사람 대신 주인집 딸인 ‘스테파네트(Stephanette)’가 2주치 식량을 갖고 산을 올라온다. 스테파네트는 식량을 내려두고 다시 하산하지만 거세진 물살에 휩쓸릴 뻔 하다가 다시 돌아온다.


목동은 아가씨를 위해 정성스레 잠자리를 마련해주지만 스테파네트는 생전 처음 겪는 불편한 환경 때문에 모닥불 앞으로 온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목동은 하산 때의 사건으로 겁먹은 스테파네트가 안심할 수 있도록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어느새 아가씨는 새근새근 잠들고 목동은 하늘의 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별이 지금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데는 19세기 말 프랑스를 잠식하던 문란한 연애문화를 비판하면서 ‘별’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서정적인 문장으로 목동과 소녀의 사랑을 그린 소설 ‘별’은 첫 출간된지 약 1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읽혀지고 있다.


▲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목동의 이미지 ‘2탄’. 사냥개와 함께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듯하다.



‘동심파괴’의 목동


하지만 실제 역사상 목동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었다. 오늘날 정형화된 목동의 모습은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일 뿐 목동은 ‘싸움꾼’이자 심지어 ‘약탈자’ ‘살인자’이기까지 했다.


목동은 대단히 험란한 환경에서 일해야하는 ‘3D’ 직종이었다. ‘별’에서도 언급되지만 우선 상당한 외로움에 처하게 된다. 이는 곧 홀로 ‘생존’과의 투쟁에 나서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각종 천재지변에 혼자 대처해야 하며 수시로 죽음의 위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게다가 자신만의 생존이 아니라 수많은 가축들의 생존도 책임져야 한다. 풀 등 가축먹이가 바닥나면 다른 풀을 찾아 이동해야 하며 늑대 등 가축들을 노리는 육식동물과도 맞서야 한다. 사진이나 실물을 본 사람은 알지만 늑대는 의외로 덩치가 상당하며 무리를 지어 사냥에 나선다. 목동으로서는 자신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육체단련을 안 할 수가 없는 셈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목동의 기록은 성경에 있다. 다름아닌 ‘다윗(David)’이다. 블레셋(Philistine)군 소속이었던 무패의 거인 골리앗(Goliath)을 단 한 번의 ‘돌팔매질’로 쓰러뜨린 그 다윗 맞다.


다윗은 본래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자연히 자비와는 거리가 먼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야생동물들에 맞서 투석(投石) 등 각종 싸움기술을 익혔다. 왕의 전속악사로 입궁했다가 누구도 대적하지 못한 골리앗의 미간을 정확하게 돌로 맞추는 전공을 세운다.


모든 동물 중 근력이나 운동신경 면에서 가장 약한 축에 속하는 인간의 유일한 신체적 장점은 ‘던지기’에 특화된 어깨다. 곰, 고릴라 등 이족보행이 가능한 야수들은 의외로 던지기에 미숙하다. 반면 인간은 다르다. 지난 리우올림픽에서의 투창 금메달 기록은 무려 ‘90.3m’다. 투포환, 원반던지기에서도 수십m는 기본이다.


던지기는 전장에서도 유용하게 쓰여 고대 로마군은 필룸(pilum)이라는 투창을 운용했다. 임진왜란에서도 조선군 투석병들이 크게 활약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장비도 없는 시절에 평생을 육체노동으로 단련한 고대~중세 투석병들이 30여m 거리에서 던진 돌의 위력은 오늘날의 45구경 권총과 맞먹는다는 분석도 있다.


▲ 동심(?)을 파괴하는 목동의 모습. 사진은 현대에 복원된 바이킹 전사.


목동의 부업은 ‘약탈’


목동은 때때로 ‘부업’에 나서기도 했다. 동양의 대표적 사례는 흉노(匈奴) 등 유목민이며 서양은 바이킹(viking)이다.


몽골에는 “부자도 조드(dzud) 한차례면 족하고 영웅도 화살 하나면 족하다”는 속담이 있다. ‘조드’는 설한풍을 뜻하며 “족하다”는 ‘죽음’을 의미한다.


몽골 등 북방지역은 척박한 땅 때문에 농사를 짓기 매우 어렵다. 주민 대다수는 자연히 양 등 가축을 치는 ‘목동’이 돼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들에게 곡식은 중국 등 남방지역에서나 먹을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그러나 북방에는 겨울만 되면 혹독한 추위가 몰아닥친다. 가축들이 몰살당하는 건 순식간이다.


조드는 오늘날에도 발생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에 의하면 지난 2016년 12월에는 조드로 인해 몽골 북부지역에서 가축 4만5000여 마리가 동사(凍死)하고 주민 3만7000여 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북방 설한풍의 위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명사회에서는 자연재해가 들 때마다 중앙·지방정부가 구제를 실시하지만 북방은 그렇지 못했다. 부족단위로 뿔뿔이 흩어져 가축을 치는 과정에서 서로 시기하고 싸우던 그들에게 각지에서 조세를 거두고 유사시 배분할 중앙집권제는 딴 나라 얘기였다. 조드가 몰아닥칠 때마다 북방민족들은 생명의 위협에 내몰려야 했으며 급기야 그들이 택한 건 ‘약탈’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올 즈음이면 이들은 어김없이 부족단위로 혹은 친한 부족끼리 연합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넘어 남하했다. 해마다 국경도시들은 초토화됐다. 근골로 다져진 데다 말(馬)까지 능숙하게 다루는 북방민족들에게 농경사회의 군대는 번번이 무기력하게 당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천고마비(天高馬肥)는 그 당시 남방민족들의 공포심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서양의 대표적 ‘약탈목동’은 노르만(Norman)족이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북유럽은 매우 추운 지방이다. 자연히 농사짓기 적합한 곳이 아니었으며 노르만족은 많은 수가 유목이나 수렵에 나서야만 했다. 이들이 농사를 즐겨했다는 일부의 반론도 있지만 그렇게 살기 좋은 땅이었다면 애초에 해적집단이 대량으로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은 낮다.


삶에 지친 노르만족은 아시아 북방민족과 마찬가지로 부족단위로 유럽 약탈에 나섰으며 이들이 바로 ‘바이킹’이다. 바이킹은 우월한 신체조건, 수렵·유목에서 다져진 근력을 바탕으로 해상경로로 남하해 전 유럽을 휩쓸었다. 오늘날 ‘광전사’로 번역되는 베르세르크(berserk)는 특히 악명을 떨쳤다. 이들은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대검, 도끼 등으로 무장한 채 마약성분이 담긴 광대버섯을 먹은 순록의 소변을 마시고서 환각상태에서 살육을 펼쳤다.


▲ 야생마를 타는 카우보이(cowboy). 카우보이도 가축을 기르면서 포장마차를 이끌고 유목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목동 범주에 든다. 이들도 무법천지였던 서부개척시대 당시 가축을 뺏으려는 도적떼·늑대 등과 혈투를 벌이는 삶을 살았다.


오늘날의 목동


물론 오늘날에는 목동들에게서 이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전세계적으로 식량이 풍부하다못해 넘쳐나는 상황에서 목동들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각국의 공권력도 강화돼 조직적인 약탈은 꿈꾸기 힘들다.


다만 아프리카 등 치안의 사각지대는 예외다. 군벌이 난립한 가운데 정부가 힘을 쓰지 못하는 지역에서는 여전히 약탈이 자행되고 있다. 범죄조직은 수시로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기 위해 눈을 부라리고 있으며 목동들은 자위력을 위해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때로는 목동들이 선제공격에 나서기도 한다. 작년 4월에는 케냐 서부 라이키피아에서 이탈리아 환경운동가인 쿠키 갈만(74)이 현지 유목민들에게 총격을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용의자 2명은 현장에서 사살됐으며 다른 용의자들은 구금됐다. 이들은 두달 전 극심한 가뭄으로 정부가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한 가운데 갈만의 목초지를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갈만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불과 한달 전에는 영국인 목장주가 피살됐다. 이같은 목동들의 폭력행위 앞에 정부가 군경(軍警) 병력을 동원해 단속에 나서고 일부 정치인들이 ‘백인의 탐욕’을 선동하면서 유혈사태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재산을 잃은 일부 목동은 아예 군벌에 가담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목동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원인은 정부의 부재 혹은 무능이다. 우리나라도 목동들이 받는 고통에서 예외는 아니다. 근래에는 흑염소 산지가격이 폭락해 사육농가가 울상을 짓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9월에는 오리농가 농민 1천여명이 사육제한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앞서 2월에는 축산단체들이 환경부 해체 및 장관퇴진 촉구 시위를 벌어기도 했다.


육식(肉食)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호흡해왔다. 인간의 두뇌가 발달한 것도 인류가 불을 인위적으로 피울 수 있게 되고 고기를 익혀 자주 섭취할 수 있게 됨으로써 단백질공급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적절한 육식은 건강에 필수적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마운 고기를 제공해주는 대한민국 축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축산농가가 안정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탁상행정’ 대신 ‘현실행정’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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