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뗏목을 타고 강을 무사히 건넜다. 이제 뗏목은 쓸모가 없다. 그러나 뗏목이 없었더라면 넓고 깊은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그러니 뗏목이 너무 고맙다. 강을 건넌 이는 뗏목을 아무데나 묶어두고 가면 된다. 뗏목을 버려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일 필요가 없다.


‘강을 건넜으니 뗏목을 버려라’. 정권이 바뀌면 초기에 한 번씩 나오는 얘기다. 집권하기 위해 선거 때 신세진 세력이나, 표를 얻기 위해 내건 공약(公約)을 버리라는 이야기다. 그냥 강을 건넌 사람은 뗏목을 적당한 곳에 묶어두거나 버려도 되지만, 정치지도자의 뗏목은 다르다. 버리면 약속을 어긴 사람이고 신의가 없는 사람이 된다. 지지세력 으로부터의 반발이 뒤따른다.


이 정권 담당자들은 과연 뗏목을 버릴 것인가.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넌(집권한) 사람은 문재인대통령이고, 뗏목중의 하나는 민주노총이다. 촛불시위로 전대통령을 탄핵으로 물러나게 하는 과정에서 민노총은 크게 기여했다. 정권창출에 큰 공을 세웠다. 뗏목 역할을 잘 했다.


그래서 민노총이 정부에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를 두고 시중에서는 ‘촛불 청구서’ ‘촛불 지분’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이 청구서 금액이 너무 과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사건건 정부 정책을 물고 늘어지고,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서 어깃장을 놓으며 자신들의 몫 챙기기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많다.


민주노총은 21일 전국에서 총파업 시위를 벌였다.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및 노조 할 권리 보장 등을 내세웠다. 곧 있을 사회대타협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출범을 앞두고 민노총은 참여를 거부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그들은 문재인정부가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노동법 개악 등 반노동 친재벌 정책으로 회귀했다’면서 경사노위 참여와 대화를 촉구하는 정부에 대고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며 총파업을 강행했다. 여기에서 ‘개’가 정부인지, 아니면 강성 노조에 비판적인 국민들을 칭하는지, 이들 두 부문을 모두 칭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도를 넘는 방자한 표현이다.


더구나 이 정부는 출범 초부터 지나치다시피 친노동 정책을 펼쳐 적지 않은 반발을 사온 터여서 더욱 아연할 수밖에 없다. 촛불 청구서에 얼마를 더 적어나갈 것인지 다수 국민들은 불쾌해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뗏목 버려야


공은 정부로 넘어가는 중이다. 노조원이 아닌 다수의 근로자와 국민경제를 위해서 뗏목을 버릴 것인가, 뗏목을 안고 갈 것인가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여기에서 정부 당국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며 예견해보자.


정권실세인 임종석청와대비서실장은 얼마 전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임실장의 입을 통해 나온 이 말의 무게는 심상찮게 들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인 홍영표대표는 어느 회사 사장실을 점거 시위한 민노총의 과격 행위에 대해 “미국 같은 나라에선 시장을 감금시키는 것은 테러”라고 비난했다. 김부겸행정안전부장관은 민노총의 과격 행위에 대해 “어떤 집단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며 “민노총이기 때문에 정부가 손을 못 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문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노동계의 지나친 요구와 행태에 실망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촛불 세력이 정책에 협력하기보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일이 잦다보니 더 이상 안고 가야할 지를 고민하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정부의 최대 역점정책 중의 하나인 최저임금 문제와 관련, 최저임금위원회에 민노총은 불참했다. 그리고 사회적인 대타협을 이끌어내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루며 국정을 펼쳐나가기 위해 구성한 경사노위 첫 회의에도 주요 참여주체인 민노총은 불참을 통보해 놓은 상태다.


대검 청사는 물론이고 국회의사당에서까지 기습 시위를 벌이는 민노총은 도를 넘었다. 그런 한편에서는 노조의 고용세습이 비일비재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그들의 특혜가 진행되며, 이 정부가 역점으로 펼쳐온 정규직화에 대기업 노조가 있는 곳이 더 부진하다는 국책연구소의 보고서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권익 향상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만의 몫 챙기기에만 몰두한다. 강성 귀족노조라는 불명예스런 딱지가 붙은 지 오래다. 이제 그들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의 의무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산업의 동공화를 우려한 광주는 노사정이 큰 통으로 양보하여 자동차공장을 지어 지역경제도 살리고 고용도 창출하자는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를 수년째 추진해오고 있으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 큰 이유는 노조의 반대 때문이다. 기존 자동차회사 근로자 임금의 절반 수준의 공장이 들어서면 향후 자신들의 처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대기업 노조원들의 반발이다.


정부는 어정쩡한 자세로 민노총의 주장을 반영해가며, 기업에 부담을 안겨주는 형태로 봉합하려 한다. 원래 취지의 광주형이 아니다. 그래선 안된다.


문제는 정부다. 노조에 끌려 다니며 혁신성장 규제혁파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주저앉느냐, 아니면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노조와 일정 거리를 두고 경제를 살려나가느냐의 선택이 남아있다. 강성 노조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지금의 친노조 정부에조차 이처럼 비협조적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정부는 알고 있다. 행동으로 옮기는 일만 남아있을 뿐이다.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 새로운 노사관계를 조성하는 것은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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