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기 부회장
지난 달부터 햅쌀이 시중에 출하되고 있는데도 쌀값이 요동을 치고 있다. 지난주 산지 쌀값은 80kg 가마당 19만3천원을 넘어섰고 소매가는 21만4천원을 상회한다. 1인당 쌀소비량이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여서 쌀값 변동에 따른 소비자 부담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 상승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 산지 쌀값 12만원대와 비교하면 약 1년반만에 50% 이상 급등했다.

그동안 생산농민들은 다른 물가에 비해 쌀값이 너무 낮다며 정부에 비축미 출하를 줄이고 쌀 목표가격을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지난 1998년부터 20년간 물가상승률을 쌀값에 반영하면 쌀 목표가격이 24만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쌀 목표가격은 정부가 지급하는 쌀 변동직불금의 기준이 된다. 시중 쌀값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액의 85%를 변동직불금으로 농가에 지원한다. 농업의 생태 환경보호 등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고 농가소득을 보전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쌀은 국민의 주식(主食)이라는 측면에서 정부가 생산보조, 가격지지 등 다양한 정책을 동원해 생산농가를 지원해왔고 시장개방도 최대한 늦춰 국내 생산기반을 보호해왔다. 과거 시장가격을 크게 웃도는 추곡수매가 산정과 비축, 관세화 개방유예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 결과 주식자급자족을 이루고 농업소득을 보장하는 성과를 이룩했으나 국내시장 과보호에 따르는 쌀재고 증가와 비축미 관리비용 상승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쌀재고가 넘쳐 적정수준(80만톤)의 2배가 넘는 정부 재고가 쌓여 재고관리비용만 연간 5천700여억원에 이른다.

폭염에 수확이 다소 줄었다지만 올해 생산량은 386만8천톤으로 수요량 378만톤을 웃돌고 재고가 넘쳐나는 판에 시중쌀값이 급등하는 이유는 정부가 비축미 방출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나와 “쌀값을 낮추는게 아니라 더 치솟아 오르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비축미 5만톤을 방출하겠다”며 “다만 추가 방출은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물가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어쩔 수 없이 방출하지만 더 이상은 없다는 발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에서 제시한 ‘쌀목표가격 21만원’을 다분히 의식한 소극적인 대책으로 보인다. 해당 위원회 의원들은 농민들의 표를 의식해 비축미 방출을 중단시켜 시중 쌀값 상승을 용인하라고 이 장관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더구나 시중에는 북한에 대한 쌀 제공설 등 사실 무근의 괴담과 함께 남북관계가 풀리면 어차피 쌀이 반출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돌아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은 정부 비축미방출에 항의해 22일 여의도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일부 생산농가는 쌀값 추이를 지켜보며 햅쌀 출하를 늦추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논농사면적을 줄여 생산을 조절하고 조사료 등 다른 작물생산을 권장하기 위해 타작물재배지원사업을 펼쳐 ha당 평균 340만원을 재배전환 농가에 제공하고 있다. 정부가 어정쩡한 대책으로 쌀값 상승을 용인하게 되면 쌀 감산정책에 역행하는 시그널로 받아들여 농업정책에 일대 혼란을 줄 게 뻔하다.

정치권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대선을 비롯한 주요선거에서 ‘쌀수입 결사저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정부도 이에 맞춰 눈치만 보다가 2014년 뒤늦게 쌀 관세화수입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쌀시장을 지키기 위해 다른 품목에서 양보를 거듭하고 20년간 관세화 유예를 대가로 의무수입물량 40만8700톤을 해마다 수입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았다.

그동안 쌀 감산 등 농업구조조정에 막대한 국민세금을 쏟아 붓고도 모자라 다시 쌀공급과잉을 불러올 농정의 혼란을 언제까지 거듭해야 하는지 국민은 답답할 따름이다. 쌀이 선거판의 표심 미끼로 농락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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