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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귀농귀촌? ‘귀농귀성(歸農歸星)’ 시대가 다가온다

    화성지질탐사선 ‘인사이트’로 본 미래의 화성개척
    기사입력 2018.12.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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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jpg▲ 화성의 실제 표면사진. 자막만 없다면 여기가 화성(火星)인지 경기도 화성(華城)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사진=YTN 캡처).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미국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6일. 워싱턴에 위치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전광판을 바라보던 직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인류가 남긴 또 하나의 족적을 기념했다. 지질탐사선 ‘인사이트(InSight)’의 화성착륙이다.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인사이트는 길이 6.1m, 폭 2.0m, 높이 1.4m, 무게 360kg의 무인탐사선이다. 올해 5월 캘리포니아주(州) 반덴버그공군기지에서 로켓에 실려 발사돼 206일, 4억8000만km라는 장대한 여행을 한 끝에 지구의 이웃행성 화성에 무사착륙했다.

    화성(火星). 영어로 마르스(Mars)라 부르는 이 행성은 특유의 호전적인 붉은 빛깔로 인해 그리스신화 속 ‘전쟁의 신’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태양계 전체질량의 99%를 차지하는 거대한 태양 주위로 공전하는 8개 행성 중 하나이자 4개의 지구형 행성 중 하나로 크기는 지구의 3분의 1 가량이다. 위성은 포보스(Phobos), 데이모스(Deimos) 등 2개다. ‘명물’도 있어 높이 약 27km의 올림푸스(Olympus)산은 에베레스트산의 3배 높이를 자랑한다.

    지구표면에서 육안으로 볼 때 달, 금성과 함께 가장 잘 보이는 천체이기도 하다.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화성은 인류가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대상이 됐다. 19세기 말부터는 화성인의 지구침공을 다룬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 등 화성을 소재로 한 공상과학소설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지옥불’ 금성을 비롯한 다른 행성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지만 화성의 환경은 인간에게 혹독하다. 각종 화성탐사선들이 보내온 현장사진을 보면 푸른 하늘, 건조한 대지 등 지구와 얼핏 비슷하지만 대기는 95%의 이산화탄소, 3%의 질소 및 극소수의 산소로 이뤄져있다. 대기권은 매우 얇아 운석이 수시로 표면을 강타한다. 표면온도는 평균 영하 23도다. 중력도 지구보다 낮다.

    이처럼 ‘죽음의 행성’으로 여겨졌던 화성이 재주목받은 건 올해 7월이다.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스(Science)’ 온라인판은 유럽우주기구(ESA)가 2003년 발사한 탐사기 ‘마스 익스프레스(Mars Express)’가 화성궤도를 돌면서 고성능레이더(MARSIS)로 탐지한 결과 화성지하에서 거대한 ‘호수’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과거 물이 얼음형태로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액체상태로 확인된 건 처음이었다. 상식이지만 물은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생명체가 필요로하는 화학물질이다. 모든 지구생명체가 처음에는 바닷 속 단세포에서 시작했다는 점에서 물은 ‘생명의 근원’ 그 자체다. 물의 발견은 곧 인간이 화성에 가서도 살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 생겼음을 뜻했다. 전 지구촌이 흥분으로 들끓은 이유다.

    2.jpg▲ 졸지에 엘리트과학자에서 순박한 농군의 삶을 강요당한 마크 와트니(사진=영화 ‘마션’ 中).
     

    “화성개척도 식후경”

    물론 화성을 개척하는 데에는 아직 많은 난제가 남아 있다. 우선 현 기술로는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무려 6~7달에 달한다. 그 시간 동안 인간이 좁디좁은 우주선 실내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온전히 견디기는 힘들다. 한때 지원자들을 격리된 시설에 몇달 간 가두는 실험이 행해졌지만 우울증, 갈등 끝에 파벌이 형성돼 서로를 지배하려 등 전형적인 닫힌사회(morale fermée) 초기현상이 일어나 조기종결된 바 있다.

    어째어째 화성까지 간다 하더라도 혹독한 환경이 발목잡는다. 상술한대로 식수는 확보할 수 있다 해도 산소가 부족하다. 화성표면을 지구처럼 만드는 테라포밍(Terraforming) 작업에는 ‘천조국’ 미국도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된다. 민간자본을 유치하려 해도 화성개척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거액을 투자할 간 큰 도박사는 찾기 힘들다. 결국 화성에 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은 인공산소가 있는 구조물 또는 지하에 갇혀 생활해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식량조달이다. 화성에 단지 몇 명이 거주한다면 모를까 지금 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일본 등 우주강국들이 꿈꾸는 ‘화성식민지배’를 위해 최소 수백명이 이주한다면 이들이 소비할 막대한 식량수송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성인 한끼 식사량을 쌀 200g으로 잡았을 때 7달 동안 한 사람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소비하는 쌀은 약 126kg이다. 화성 거주자를 단 1000명으로만 잡아도 1회 수송량은 최소 126톤이 돼야 한다.

    이정도 물자를 한꺼번에 우주로 쏘아올린 전례는 아직 없다. 물론 여러 우주선에 나눠서 보내면 되지만 몇달에 걸친 우주여행 중에 만에 하나 우주선들 중 하나가 고장나 작동이 중단될 경우 화성거주자들은 여지없이 식량난에 시달려야 한다. 곡물 대신 우주식량 등 간편식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지만 ‘맛’에 대한 욕구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타국에서 단 며칠만 지내도 고국의 음식이 그리워지는 게 사람이다.

    결국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거주자들 간의 내분, 범죄발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간은 사회를 이뤄야하면서도 위기 시에는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이중적 동물이기에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를 보여주는 유사사례가 1940년대 일어난 ‘아나타한(アナタハン)의 여왕’ 사건이다. 한 명의 여성과 함께 섬에 고립돼 배고픔에 시달린 다수의 일본인 남성들은 힘을 합쳐 탈출하려는 대신 이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살육전을 벌이다 자멸했다.

    이같은 비극을 방지할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조달, 즉 화성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치면서 어류양식을 하는 것이다. 2015년 개봉한 헐리웃영화 ‘마션(The Martian)’은 ‘화성 농사’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홀로 화성에 격리된 주인공은 산소발생기에 호흡을 의지한 채 수소를 태워 물을 만들고 화성의 흙에 동료들 인분을 섞은 뒤 씨감자를 심어 키워 먹는다. 대표적 구황작물인 감자는 어떤 조건에서도 잘 자라기로 유명하다. 물론 감자만 먹을 경우 영양불균형은 어쩔 수 없다.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분명한 건 ‘귀농귀성(歸農歸星)’ 시대는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화성지질탐사선 인사이트의 임무도 인간이 화성지하에서 거주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피는 것이다.

    인류는 그 어떤 악조건도 극복하고 현대문명을 이룩해왔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익숙한 스마트폰은 고대~중세 인류의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물건이다. 단 몇 초만에 한국에서 태평양 건너 미국의 지인에게 전화하거나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한국인의 모습이 한양에서 동래현(부산)으로 편치를 부치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던 조선인들에게 상식이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미래에는 현생인류가 상상할 수 없는 또 어떤 ‘물건’이 나와 대규모 화성이주를 현실화시킬지 알 수 없다.

    여담이지만 인류역사상 건설된 식민지들은 대부분 ‘독립쟁취’에 나섰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화성식민지가 지구에 ‘반기’를 들고 나설 수도 있다. 지구의 대기업 본사가 화성의 자원을 캐내어 본(本)행성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닌 화성과 지구의 ‘동등한’ 무역관계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 날이 되면 우리 후손들은 실제로 ‘우주전쟁’을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은 자유이니 판단은 각자의 몫일 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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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코칼럼
  • [김성기 칼럼]‘脫원전’ 국민투표까지 갈 필요 없다
  • 김성기 부회장|2018-12-07
  • 대만이 지난 11월 탈(脫)원전 정책을 채택한 지 2년 만에 국민투표를 통해 정책을 폐기하자 국내에서도 비현실적인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겨 탈원전으로 가는 정책은 에너지 수급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 나라의 장래를 크게 위협한다는 지적이다. 대만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주도한 대만 칭화대 원자과학원의 예쭝광 교수는 국민투표 직후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원자력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불안, 유언비어에 현혹됐던 국민이 작년 대정전과 심각한 대기 오염을 겪으면서 원전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대만은 11월 24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찬성 59.5%대 반대 40.5%로 탈원전 폐기를 선택했다. 대만은 환태평양지진대에 들어 있어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국민의 막연한 원전사고 불안감도 높았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해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2016년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민진당 정권이 탄생했다. 그러나 예 교수를 비롯한 대만 과학자들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 대기오염 방지에도 적합하다는 점을 대만 국민에게 널리 알려 탈원전 폐기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에너지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과학자들이 나서 꾸준히 탈원전 정책의 허상과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지난달 하순에는 57개 대학 교수 210명이 가입한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가 국민투표를 촉구하는 대정부 성명을 냈다. 이들은 정부가 “국민의사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도 없이 무책임한 환경단체의 비현실적 주장만 반영했다”며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만 사례는 우리와 다르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정부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가 지질과 자연환경, 과학기술 수준 및 원전 안전도 등에서 대만 사례와는 크게 다른 게 사실이다. 최근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지만 대만 사례처럼 원전 안전을 직접 위협할 수준이 아니며 원전 건설과 운영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가 훨씬 더 안전하게 원전을 가동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는 말이다. 정부와 관련 업계도 한국 원전의 기술수준과 안전성을 앞세워 해외진출을 홍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연장 불허,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등 탈원전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했다. 취임후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를 중단시켰다가 공론화위원회의 배심원단 공론조사를 받아들여 공사를 재개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약 60%의 공사재개 찬성으로 나타난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막연하게 앞으로 원전비중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는 이후 지난해 말 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탈원전 정책을 포함시켰고 한국수력원자력의 자발적인 사업포기로 신규 원전 4기 백지화,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구체화했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확고하게 세운다는 의미에서 탈원전에 대한 국민투표가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탈원전 절차를 감안하면 국민투표가 본래 취지와는 달리 정권의 명운을 건 치열한 정쟁으로 변질될 우려가 높다. 에너지 정책이 소위 ‘적폐청산’ 대상으로 떠올라 온갖 논쟁과 들쑤시기가 난무하고 또 하나의 거리 투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지난 8월과 11월 원자력학회 등에서 실시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원전 이용에 찬성한 응답이 70% 안팎으로 높게 나타났다. 여론의 흐름은 이미 방향이 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뻔한 흐름을 놓고 분쟁을 일삼기보다 그동안 정부가 취해온 정책의 역순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면서 원전의 안전도 요구를 대폭 강화해 국민 신뢰를 높이고 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 한수원의 정상화도 반드시 요구되는 부분이다. &lt;투데이코리아 부회장&gt;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 [권순직 칼럼]국가 부도의 날
  • 권순직 논설주간|2018-12-06
  •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 10일도 안되어 관객 6백만 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이 성공적이다. 20여년 전 우리나라를 치욕의 현장으로 만든 이른바 IMF(국재통화기금)사태를 주재로 한 이 영화에 관객이 몰리고, 국민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며 지금의 팍팍한 삶이 겹쳐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국가가 부도 위기에 몰려있던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고 IMF와 협상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픽션과 넌픽션을 가미한 팩션이라고는 하지만 사실과는 많이 달랐다. 극적인 재미에 더 비중을 두어 그랬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생각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시대의 사건을 너무 흥미 위주로 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어쨌든 여러 측면에서 우리 국민에게 던지는 교훈은 적지 않다. 우리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그 댓가로 금융 통화정책은 물론이고 기업구조조정 등 모든 정책을 IMF승인을 받아야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하고서야 겨우 국가부도를 모면한 사건이다. 경제주권을 3년간 IMF에 넘겨준 것으로 그야말로 국치(國恥)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고개 숙이고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던 협상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국회는 IMF기준에 맞춰 세입 세출을 맞춰야하고, 정부는 이 틀 안에서 정책을 수립한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국방 통일 문화정책까지 그들의 승인을 받아야했다. 이 양해각서는 국무위원의 서명도 모자라 국회의장과 대선 후보자들에게까지 서약을 받아갔다. 주권국가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굴욕이었고, 국민이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면 어떠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절감했다. 사태 1년전인 1996년 12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 선진국 클럽에 들어갔다며 샴페인을 터뜨린다. 그러나 이 잔치는 한해도 못넘기고 재앙으로 다가온다. 1997년에 들어서면서 한달에 1천3백여개의 사상초유 기업 연쇄부도 사태가 빚어지는가 하면 한보 삼미 진로 기아자동차 등 재벌그룹이 도산위기에 몰리며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경제난이 심각해진다. 은행과 제2금융권의 부실로 이어진다. 여기에다 태국 바트화의 폭락 등 동남아시아 각국의 외환위기가 국내 외환 및 증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기업의 대량 부도와 주가폭락 등으로 곳곳에서 적신호가 켜졌지만 당시 경제팀은 “우리나라는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강한 펀더멘털론’을 펼치며 경고음을 무시했다. 이처럼 곪을대로 곪은 경제체질을 놓고 건강하다며 내외로부터 다가오는 위기를 강건너 불보듯 한 정부 때문에 호미로 막을 위기를 가래로도 못막는 사태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것이 IMF사태의 본질이다. IMF사태의 여파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기업의 대량 도산과 은행 및 종금사의 퇴출, 그에 따른 곳곳에서의 무더기 해고, 고공행진을 하는 실업률에 자살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가정의 붕괴가 줄을 이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상황이다. 자, 그럼 국가부도의 날 영화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뭔가. 필자는 두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우리는 IMF사태를 조기에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왔다. 물론 전 국민들이 뼈를 깎는 노력과 고통을 감내하여 경제를 안정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위기를 초래하고, 안이한 대처로 상황을 악화시킨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실패의 교훈을 얻는데 소홀했다. 둘째, 정책대응에 실패한 정책당국자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정책의 실패에 형사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시각이 있지만, 실패한 정책이나 적절하지 못한 정책대응의 책임소재는 분명히 가려놓았어야 했다. 이 영화가 오늘도 빚어지고 있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정책당국자들이 한번쯤 심사숙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lt;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gt;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 [박현채 칼럼]철밥통을 걷어찬 이웅렬 회장
  • 박현채 주필|2018-11-30
  • 재벌 총수는 임기가 없는 만년 직장이다. 올해 62세로 적어도 10년은 더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데도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철밥통을 걷어찼다. 1996년 코오롱 경영권을 승계한지 23년 만에 스스로 그룹 회장직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직책을 모두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새로운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사실 그룹 오너의 퇴진 자체는 큰 이슈가 아니다. 갑질 논란이나 경영 실패 등 그룹을 둘러싼 잡음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사태가 진정되면 슬며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럴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이 회장 스스로 퇴임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갑작스러운 은퇴선언 배경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창업주인 할아버지 이원만, 2세 아버지 이동찬의 뒤를 이어 자산기준 재계 순위 31위의 코오롱 그룹을 이끌어 온 그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다”면서 '3세 경영자' 자리가 결코 쉽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이 회장은 "세상이 변하고 있고, 변하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전제하고 "매년 시무식 때마다 환골탈태의 각오를 다졌지만 미래의 승자가 될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불현듯 내가 바로 걸림돌이구나, 내가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겠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기업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앞장서 달렸으나 한계를 느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는다”며 홀가분해 했다. 검은색 터틀넥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연단에 올라 은퇴선언을 한 것도 이러한 기분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인의 변화 속도가 느려 회사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껴 퇴임을 결심했다는 이 회장의 솔직한 고백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재벌 기업과 총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반세기동안 재벌의 오너 중심 지배구조는 과감한 의사결정, 빠른 추진력 등의 장점으로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주역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지구촌의 산업 생태계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데도 대마불사라는 말만 믿고 안주하다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조선이 그렇고, 해운이 그렇고, 자동차가 그렇다. 기득권의 벽에 둘러싸여 작은 변화도 거부한 채 친인척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자신들의 철옹성 지키기에만 몰두해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너 독단’의 폐해를 경계하며 스스로 그 그물을 제거한 이 회장의 ‘자의적 조기 퇴진’ 결정이 우리 기업문화를 돌아보는 신선한 자극제가 돼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회장은 “이제 저는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쳐 보겠다”고 창업 의사를 내비쳤다. 스타트업은 대마가 아니라서 망해도 좋으니 마음껏 뜻을 펼쳐 보겠다는 얘기다. 번듯한 사업체를 놔두고 험난한 창업의 길을 택할 필요가 없는데도 이를 선택했다. 이 회장은 29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단 초청 간담회에서 “창업 아이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아이템을 꼽지는 않았지만 주저 없이 “플랫폼 사업이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며 “앞으로 1년 정도 4차 산업 분야 인사들을 많이 만날 것”이라고 밝혀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 회장은 “천천히 공부하며 창업을 준비하겠다. 창업 시기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1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그 모든 것들을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경영권을 바로 아들에게 승계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에 맡긴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로 승진시켜 그룹의 패션사업을 총괄토록 했다. 경영수업을 받게 한 것이다. 언제 외아들인 이규호(35) 전무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것이냐는 질문에 “나중에 능력이 있다고 판단이 돼야 가능하다”며 “나는 기회를 주는 거다. (아들은) 현재 주요 회사 지분도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 회장은 “아들에게 스스로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사회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나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아들을 믿는다”고 말해 이 전무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이 회장의 전격 퇴진이 당장 코오롱의 소유구조나 경영 근간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그룹 지주사인 ㈜코오롱의 지분 49.74%를 보유하고 있는 1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이 회장의 퇴진을 4세 경영체제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면서 오너 경영이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자의적 조기 퇴진’을 주목하는 것은 그 결정이 재벌가의 대물림 경영 관행에 익숙한 우리 기업문화를 뒤돌아보는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lt;투데이코리아 주필&gt;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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