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권규홍 기자]


<영화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화제다. 국가부도의 날은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아픔으로 남아있는 1997년 IMF 경제위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개봉전부터 베테랑 배우인 김혜수, 허준호와 자신만의 독보적인 캐릭터로 충무로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유아인, 개성넘치는 연기로 사랑받는 조우진, 프랑스의 국민배우 뱅상 카셀이 출연해 개봉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영화속에서 김혜수는 IMF위기를 경고하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역을, 조우진은 사회혼란이 가중된다며 IMF위기를 알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정국 차관 역할을 맡아 김혜수와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펼쳤다.


▲ 국가부도의 날 출연배우들


유아인은 IMF 위기를 직감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증권맨 ‘윤정학’으로, IMF 직전 대형 백화점과 거래를 했다가 공장이 부도날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 사장 한갑수 역엔 ‘허준호’가 캐스팅 되어 당시 어려운 서민들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

프랑스 국민배우 뱅상카셀은 당시 IMF 총재로 우리나라에 방문해 정부와 협상을 한 미셸 캉드쉬 총재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영화는 개봉하고 난 뒤 평단과 관객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국가부도의 날은 13일 오전 9시 기준으로 누적관객수 300만71명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인 260만을 돌파하고 3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이미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전문 매체 씨네 21의 장영엽 기자는 이 영화에 대해 “ ‘헬조선’의 기원을 탐구하는 경제 스릴러”라고 평가했다.

장 기자의 평가대로 이 영화는 IMF를 다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 사회를 반추하고 있는 작품으로, IMF 이후 완전히 달라진 현재 사회구조 모습을 살펴보면 경제 스릴러라는 표현은 딱히 틀린말도 아닐 것이다.

▲ 기업들의 도산소식이 줄을 이었던 당시 뉴스 (사진=MBC)



국가부도사태의 시작

영화는 당시 국가적위기를 불러온 여러 요인들을 영화전반부에 풀어 넣으며 당시 시대상을 조망하고 있다. 영화속에서 한시현(김혜수분)은 국가부도사태를 앞두고 부실 경영을 하는 기업들을 찾아가 회사를 어떤 식으로 운영했는지 물어가며 따지는데, 당시 한국을 이끌어 간다는 기업들의 황당한 경영방식을 미뤄보면 IMF가 예견된 사태였음을 알수 있다.

IMF의 전조로, 기업 줄도산의 시작을 알렸던 한보그룹은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번듯한 본사 건물 하나없이 당시 강남 은마 아파트의 상가건물 최상층에 있었는데, 이는 당시 한보그룹 회장인 정태수가 점쟁이의 말만 믿고 사업을 시작했으며, 회사 건물역시 점쟁이가 지정해준 대로 했었다는 황당한 사실이 드러나며 관객들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며 나중에 알려졌지만 기업들만 아니라 정부 고위인사들 역시 점쟁이의 말을 듣고 일을 처리한 사실도 드러나며 국민들에게 황당함을 안겨주었다.

사실 당시 IMF를 불러온 집적적인 요인은 이런 황당하고 방만한 기업들의 경영방식도 원인일수 있으나, 당시 국내에 존재했던 종합금융회사들의 부실 경영. 이른바 ‘종금사태’에서 시작된 것이 정확한 원인일 것이다.

종금사는 종합금융회사의 줄임말로 1976년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종합금융이란 말 그대로 예금과 보험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금융업무를 총괄하는 회사로 당시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외환위기를 겪었던 박정희 군사정권이 외자조달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허용했다.

이후 대기업의 확장을 우려해 정부로부터 추가적인 출범을 금지 당했던 종금사는 김영삼 정부들어 활기를 띄었다. 김영상 정부 출범이후 9개로 늘어난 종금사는, 1996년에 무려 30개로 급증했다.

투기성이 강하고 국제 금융노하우가 떨어지는 이들 회사에 대해 학계와 금융계에선 경고의 시그널을 날렸지만 김영상 정부는 이를 듣지 않았다,

단기차익에 사활을 건 종금사들을 경쟁적으로 이웃나라들로부터 단기자금을 빌리고, 이를 발판으로 신흥국들의 장기 채권등을 사들이며 겁 없이 국제 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이 과정에서 종금사들은 러시아 정부의 장기채권을 무려 15%나 보유했고 태국 부동산업계에는 40억 달러를 빌려주는 등의 겁 없는 투자를 감행하며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기업들은 1996년 불황이 시작되며 자금난에 허덕였고 담보 없이도 돈을 빌릴수 있는 종금사를 통해 회사자금과 고금리 기업어음(CP)를 사들였다.

이런 종금사들의 경영에 태클을 걸어야 하는 당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은 한심하게도 종금사의 편을 들었다. 오히려 재경원은 은행권에 CP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막으며 철저히 종금사의 편을 들었는데 왜 이런 과정이 이뤄졌는가는 재경원 출신 인사들이 종금사 주요요직에 낙하산으로 부임한 사실들을 미뤄보면 이해가 가능 한 대목일 것이다.

결국 1997년 동남아에서 시작된 아시아금융위기가 시작되며 대한민국의 국가부도사태는 현실이 되어 갔다.

해외에 꿔준 돈을 받을 수 없었던 종금사들은 돈을 갚으라는 이웃나라의 압박을 받았지만 갚을 여력이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종금사를 통해 돈을 빌린 기업들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부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국내에 몰래 입국하여 경제협상을 지휘한 미쉘 캉드쉬 IMF 총재는 한국정부에 종금사들을 정리하라는 요구를 벌였고, 이에 정부는 12개의 종금사에 대해 업무중지를 명령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종금사를 감싸는 듯한 정부의 움직임이 보이자 캉드쉬 총재는 “한국 관료들과 종금사는 근친상관 관계에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을 하며 한국경제구조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 대었다.

IMF 강도 높은 주문앞에 한국경제의 모습은 97년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졌다.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었고 채권시장의 개방 확대가 시작되었으며 고금리정책이 시작되었다.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대기업들과 시중은행들 역시 통합과 인수 합병등을 겪어 이리저리 쪼개졌으며 이름도 생소한 외국계 회사에 줄줄히 인수당하는 굴욕을 맛보았다.

이 와중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기업들에게 “구조조정 약속을 지키자 않으면 5대 그룹도 워크아웃 대상”이라며 으름장을 놓으며 경제 개혁의 고삐를 당겼고 이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이 실행되어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노숙자들이 대거 양산되었다.

▲ 미쉘 캉드쉬 IMF 총재와 김영삼 대통령



사회구조의 변화


가장들의 실직으로 가정은 해체되었고 이로 인해 거리로 나오게 된 소년, 소녀들이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맞벌이 가정은 일상이 되었다. 자살자들은 점점 늘어갔으며 한강에는 매일 매일 자살자들의 자살 소식이 일상이 되어 사회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국내의 경제난을 뒤로하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 가정들도 많았으며 더 이상 대가족을 이루며 살던 한국전통가정의 모습은 볼수없게 되었으며, 4-50대의 명예퇴직은 당연한 것이 되었으며, 취업시장은 안정적인 공무원 직종에 취직자들이 몰리는 상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제위기를 겪으며 출산율은 날로 떨어졌고 부정한 방법으로 보험금을 타려하거나 자해공갈을 하는등의 사기꾼들의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렸으며, 불우이웃을 돕는 기부금도 날이갈수록 줄어들며 서로를 챙겨보지 않는 각박한 사회구조가 만들어 졌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국민들은 후일 외환위기에 별 도움은 안 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했고, 톱가수들은 모두 모여 국민 화합을 위한 음반들을 출시했다. 티비속 광고들 역시 다시 일어나자, 뭉치자는등의 희망적인 내용들이 줄을 이었고, 아나바다(아끼고 나누고 바꾸고 다시쓰자) 운동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IMF 당시 어려움을 겪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당시의 고통을 회상함과 더불어 그 시절과 비교해 아직도 크게 바뀐 것이 없는 현실을 영화 후반부에 보여준다.


국가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고생했던 사람들은 아직까지 어렵게 살아가고 있으며 당시 위기속에 나라의 경제주권을 맡긴 이들은 대기업과 학연 지연으로 유착해 아직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부도위기에 놓였던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인건비를 이유로 대부분의 직원들을 내보낸 뒤 의사소통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맞이해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는 모습을 통해 씁쓸한 웃음을 전하고 있다.


영화는 우리는 국가적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표와 함께, 극중 한시현의 입을 빌어 "위기상황에선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나름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위기속에 확실해 보이는것 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며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 믿음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다. 의심은 사람들을 뭉치게 한다 " - 피터 유스티노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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