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딴난’ 소련과 ‘부흥한’ 한국… 미국선 ‘마피아’ 활개치기도

▲ 시원하게 ‘원샷’ 중인 동방불패. 고대인류가 발효된 곡물을 먹고 ‘알딸딸한’ 경험을 한 이래 적당한 음주는 인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왔다(사진=영화 ‘동방불패’ 中).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한 무리의 협객들이 성(城)내 한복판에서 현란한 검술로 혈투를 벌인다. 기나긴 싸움 끝에 모두 나가 떨어지자 두 무리의 우두머리가 직접 승부를 겨룬다. 결판을 내지 못한 둘은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인근 주점에 난입해 술독 째로 벌컥벌컥 들이키고 고기를 뜯으면서 뜬금 없이 의형제를 맺는다”


1980~90년대 초 우리나라에 열풍을 몰고 온 ‘홍콩 무협영화’의 단골 레퍼토리다. 무협영화에는 빠짐 없이 ‘술’이 등장한다. 비단 홍콩영화뿐만 아니라 아동용을 제외한 동서양의 모든 영화에서 술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술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기호식품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연말이 되면 술 소비량은 급증한다.


고래(古來)로 술을 금지한 치자(治者)는 막대한 저항에 직면했다.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로 우리에게 친숙한 중국 삼국시대 때는 유비(劉備)가 금주령을 내렸다가 측근의 ‘19금 간언’을 듣고 철회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주조(酒造)도구를 가진 자는 엄벌에 처한다고 유비가 공표하자 측근은 “술 빚는 도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한다면 저기 가는 남녀도 ‘도구’를 가졌으므로 음행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간한다. ‘도구’의 상세한 정체(?)는 청소년 독자를 위해 밝히지 않는다.


▲ 금주령으로 부를 축적한 알 카포네.


둥지 수리하다 나무 무너질뻔한 흰머리수리


가장 유명한 ‘금주령 후폭풍’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벌어졌다. 1919년 연방의회는 행정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정헌법 18조를 통과시켰다. 행정부가 ‘백기’를 듦에 따라 금주령은 시행됐으며 결과는 혹독했다.


‘퇴근 후 한잔’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던 서민들은 ‘밀주’를 찾기 시작했으며 냄새를 맡고 몰려온 ‘마피아’들이 활개치게 된다. 범죄조직이 밀주 제조·유통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 기관단총이 동원된 조직 간 ‘항쟁’이 발생해 치안은 급격히 악회됐다. 천문학적 규모의 ‘주세(酒稅)’를 거두지 못한 행정부는 그들 대로 자금난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불량밀주를 먹고 사망하는 사례가 연일 주요일간 헤드라인을 장식해 민심은 한층 흉흉해졌다. 음주에 서민 따로 있고 고관대작 따로 있는 건 아니라서 정치인, 검사·판사 등 고위인사들도 밀주를 먹고 졸지에 ‘범법자’가 돼 잡혀들어가 치안력이 위축 돼 마피아의 더 큰 기승을 불러왔다.


결국 금주령은 사라지지만 이 사건이 미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한낱 동네불량배에 불과했던 마피아, 특히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은 이 때 돈더미 위에 앉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구한 미국 조직범죄 역사의 기반을 마련한다.


이탈리아계 마피아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무자비한 ‘살인마’로 통하며 시카고 암흑가를 주름잡았던 ‘알 카포네(Al Capone. 1899~1947)’다. 수사당국은 수시로 갖은 죄목을 붙여 그를 기소해 법정에 세웠으나 알 카포네로부터 ‘밀주’ ‘뇌물’을 받은 약점이 있는 사법부는 그 때마다 ‘무죄’를 선고했다.


알 카포네는 대외적으로는 ‘유능한 합법적 사업가’ ‘불우이웃의 천사’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표본’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했다. 그 와중에도 시카고 곳곳에서는 누가 봐도 그가 배후임이 뚜렷한 ‘유혈낭자 암살극’이 펼쳐졌지만 그의 소행임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


번번이 수사당국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던 알 카포네는 급기야 1930년 시카고트리뷴에 의해 ‘공공의 적(Public enemy)’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는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 1932년 탈세혐의로 구속기소돼 결국 실형을 선고받고 출소 후 ‘퇴물’이 돼 처참한 삶을 살다가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가운뎃 손가락(!)’을 날리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실은 의도된 게 아니라 대화 중 우연히 촬영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클린턴 대통령 표정이 매우 적절하다(사진=러시아매체 캡처).


‘보드카 금단증세’에 쓰러진 불곰


소련(소비에트연방)의 금주령은 아예 ‘정부’를 바꿔버리는데 일조했다. 1985년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는 계획경제 실패에 따른 미국에 대한 곡물수입 의존 등 경제난에 더해 보드카 등 술독에 빠져 허구헌날 싸움질을 벌이는 자국 남성들을 보다 못해 금주령을 선포했다.


초기에는 효과가 그럭저럭 있었다. 합법적 주류소비가 60% 가량 감소하자 남성 자살률이 줄어들었고 평균수명이 늘었으며 범죄발생율도 낮아졌다. 그러나 술은 ‘체제’마저도 극복한 만국공통 기호식품이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련인들 사이에서도 ‘사마곤(Самогон)’이라 불리는 밀주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집단주의를 강요하면서 인간성을 극도로 말살하는 억압적 공산체제 특성상 정부는 밀주 제조·유통책은 물론 소비자들까지 혹형으로 다스렸다. 안 그래도 경제난에 불만을 갖고 있던 적잖은 소련인들은 공산당에 등을 돌려버렸다.


최후의 카드를 꺼낸 고르바초프는 중국처럼 자본주의를 도입해 기사회생하려는 목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 글로스노스트(Perestroika Glasnost. 개혁개방)’을 실시했지만 ‘저항의 물결’은 막을 수 없었고 결국 1991년 소련은 전격해체됐다.


러시아연방 초대 대통령에 오른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은 대중들로부터 반대급부적 인기를 얻기 위해 정부 주도로 ‘보드카 반값 세일’ 행사를 개최했다.


실상 옐친 자신도 ‘보드카 중독자’였다. 그가 친(親)소련 군부쿠데타 때 탱크 위에 올라 유창한 연설로 무혈진압한 것도 실은 당시 ‘만취상태라 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옐친은 국제무대 공식석상에서도 종종 술냄새를 풍기며 의복이 흐트러진 채로 등장한 바 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오늘의 술 한잔은 내일의 밥 한공기” 의지의 호랑이


금주령이 큰 반발 없이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 희귀사례도 있다. 다름아닌 우리나라에서다.


일제(日帝) 수탈이 끝나자마자 북한 남침에 따른 6.25전쟁이 벌어져 경제가 세계최악 수준으로 떨어지자 박정희정부는 1961년 주세법을 개정하고 순수한 쌀을 술의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부분적 금주령을 내렸다. 1965년에는 모든 알곡으로 술을 빚는 행위가 금지됐다.


사실상 막걸리, 증류식 소주 유통이 막힌 상황에서 폭동이 날 법도 하건만 훗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인들은 오히려 동참했다. “우리 아들·딸만큼은 배불리 먹고 살게 만들자”는 신념 아래 전국민이 금주법에 동참했으며 대신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대표 주류’인 희석식 소주가 술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박정희정부에 대한 ‘묻지마 반대파’는 전통주가 거의 사라지게 된 계기였다고 비난하지만 실상 그 때 그 시절에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는 게 중론이다. 제대로 된 산업기반도 없이 식사마저 미국 무상지원 밀가루에 의존하는 식량난 속에서 귀한 곡물이 소수 부유층을 위한 주조에 투입된다면 그만큼 굶는 서민이 늘어날 건 불을 보듯 뻔했다.


금주령 앞에 미국에서는 밀주가 성행해 전국구 마피아가 속출하고 공산체제 소련에서마저도 폭동직전 분위기가 연출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러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이 정부 금주령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걸 뜻했다.


이처럼 전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 결과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서 고속도로를 닦고, 제철소를 세우며,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양성한 끝에 불과 반세기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도약했다.


1인당 국민소득도 급증해 북한이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던 ‘이밥(쌀밥)에 고깃국’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됐다. 경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막걸리 등 전통주도 부활한 지 오래다. 반대로 북한은 강압적 1인 독재체제, 계획경제의 한계, 지도부의 탐욕·무능 등으로 말미암아 1990년대 중후반 최소 수십만에서 최대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참상을 겪고 지금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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