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목적달성’에 실패하더라도 “행복하게 용감하게” 나아가는 자세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기해년(己亥年)이 시작됐다. 많은 국민이 올해에는 경기가 호전되고 삶이 나아지기를 두 손 모아 열망하고 있다. 정부 실정에 겹쳐 올해는 부(富)를 상징하는 ‘돼지’의 해라서 더욱 그렇다.


‘삼겹살’ 등 식재료에서부터 ‘애완동물’로서도 사랑받고 있는 돼지.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정작 그 ‘실체’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돼지. 본 기획에서는 ‘미스터리’에 싸인 돼지의 세계에 대해 알아본다.


▲ ‘살인미소’를 날리는 아기돼지.


‘용맹함’ ‘지혜’의 돼지


소목 멧돼지과에 속하는 돼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애용되는 동물이다. 영어로는 피그(Pig), 호그(Hog)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라틴어로는 수스(Sus), 독일어로는 슈바인(Schwein), 불어로는 꼬숑(Cochon), 이태리어로는 포르코(Porco)로 호칭된다. 한자로는 돈(豚), 일본어로는 부타(ぶた)로 표기된다.


처음 가축화 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1만1000년 전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역별로는 동남아에서 4천800년 전부터 기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유럽은 3천500년 전이며 우리가 흔히 보는 랜드레이스종(양돈)이 한반도에 들어온 건 1903년 무렵이다.


집돼지는 흔히 ‘미련함’ 등으로 상징되지만 의외로 청결한 동물이다. 돼지는 목욕을 좋아하며 체온을 낮추기 위해 수시로 목욕을 한다. 돼지가 ‘뒷간’을 뒹구는 이유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물이 없기에 배설물에서라도 목욕을 하기 위함이다. 후각도 뛰어나 ‘땅 속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송로버섯을 찾는데 돼지가 동원되기도 한다.


집돼지는 다 자라면 체중이 300kg에 육박한다. 의외로 성격도 ‘난폭’해 경기도 이천의 한 돼지박물관 대표 이종영 씨의 경우 과거 돼지인공수정센터를 운영하다가 육중한 체격의 돼지가 직원을 들이받아 40바늘을 꿰매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중세유럽에서는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식인돼지’가 심심찮게 출몰했다.


중국에는 ‘한 성깔’하는 돼지에 관한 우화(寓話)가 있다. 어느날 집돼지 대장이 자기들을 잡아먹으려고 입맛을 다시는 호랑이에게 결투를 신청한 뒤 ‘조상 전래의 갑옷’이라며 ‘뒷간’에서 뒹굴고 ‘똥갑옷’을 입고 나타나자 호랑이가 더러워서 피했다는 내용이다. “집돼지가 성내면 호랑이도 피한다”는 속담의 어원이 된 이야기로 해학적인 면이 크지만 그만큼 돼지가 ‘용맹’하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양, 인도에서는 아예 ‘전쟁무기’로 쓰이기도 했다. 사람이 돼지에 올라타 말(馬)처럼 부린 건 아니고 전설에 따르면 인도의 왕 포로스(Porus)는 적군이 전투코끼리를 몰고 나올 경우 돼지를 ‘마구 때려’ 특유의 비명소리로 물리쳤다고 한다. 기원전 275년에는 로마군이 ‘돼지 멱 따는 소리’로 코끼리군단에 승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오늘날 동물보호단체가 보면 경악할만한 ‘전술’이긴 하다.


지능도 우수해서 이종영 씨가 직원을 공격한 돼지에게 “팔아먹겠다”고 말하자 놀랍게도 그 날부터 돼지는 스스로 굶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씨는 ‘돼지가 사람 말이나 감정을 이해한다’고 느끼고서부터 2011년부터 돼지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지난 7년간 관람객 42만명이 다녀가는 등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돼지는 의학적으로도 각광받았다. 널리 알려지다시피 인간의 장기 위치와 가장 유사한 동물이 돼지다. 복부를 절개한 사람 장기 모습과 돼지의 그것은 크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일치한다. 때문에 서기 2세기 그리스의 의학자, 철학자였던 갈레노스(Galenos)가 돼지를 이용해 해부학을 연구한 이래 돼지는 많은 의학자들의 ‘동반자’가 됐다. 오늘날에도 돼지는 이종(異種) 간 장기이식 연구에서 크게 활용되고 있다.


▲ 중국에서 민간을 중심으로 ‘조롱’의 대상인 ‘북한 김씨 집안 3대’.


北·中, 이슬람권, 이스라엘서 돼지는 ‘금기어’


‘용맹’하면서 ‘의학발전’에도 기여한 돼지는 뭐니뭐니해도 ‘식재료’로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사육된 돼지는 9억8660만 마리로 그 중 4억7410만 마리가 중국에서 길러졌다. 2위는 미국으로 6천770만 마리다.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거의 모든 요리에서 빠지지 않는다. 소고기를 주로 먹는 미국에서는 수출용으로 돼지가 사육되고 있다.


돼지는 한 때 사육논란에 휩싸였다. 좁은 우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새끼 때부터 어금니와 꼬리를 자르는 것은 물론 숫퇘지의 경우 성장 후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거세까지 했다. 이 모든 과정은 마취 없이 이뤄졌다. 좁은 우리는 구제역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가축복지’에 앞장선 곳은 유럽으로 독일이 선두에 있다. 이로 인해 독일산 돼지고기는 타국에 비해 약 30% 가량 비싸지만 크게 팔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0년대에 들어서서 케이지 사육 등을 금지하고 있다.


동서양에서 사랑받는 돼지이지만 종교에 따라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곳도 있다. 이슬람, 유대교는 부정한 동물이라는 이유로 돼지고기를 금하고 있으며 이슬람의 할랄(Halal)푸드, 유대교의 코셔(Kosher)푸드에는 돼지고기가 일절 쓰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는 돼지고기 음식점을 운영하는 중국인, 한국인이 유대교 근본주의집단인 하레디(Haredi)파 공격을 받기도 한다. 2002년 11월에는 돼지고기 식당을 차린 중국인이 심야퇴근 중 하레디 민병대에게 집단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슬람권에서도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돈육(豚肉) 섭취에 대한 테러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종교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돼지’ 언급을 금지하는 곳도 있다. 바로 북한, 중국으로 북한 웹사이트에서는 ‘돼지’가 금칙어로 설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은이 ‘육중한 몸매’로 인해 많은 나라에서 ‘돼지’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게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


‘북한의 우방’ 중국 웹사이트에서도 ‘진싼팡(金三胖. 김씨 집안 돼지 3세)’ 단어가 검색 불가능한 상태다. 중국 민간인들은 ‘봉건독재’를 부활시킨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를 ‘공산주의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북한이 작년 핵·미사일 실험에 나서자 ‘진싼팡’이라는 이름의 아동용 장난감이 출시되기도 했다.


‘행복’의 돼지


‘논란의 중심’인 돼지는 하지만 많은 문명권에서 ‘행운’ ‘부’의 심벌로 자리잡고 있다.


본래 그리스에서는 서유럽식 점토인 피그(Pygg)로 만든 그릇에 돈을 모았는데 19세기 무렵 한 은행에서 판촉용 저금통을 만들면서 “피그점토로 제조해달라”고 주문한 게 공장에서 ‘돼지 모양’으로 만들어 ‘돼지저금통’이 탄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꿈에 돼지가 나오면 길조(吉兆)로 여기는 풍습이 있다.


돼지는 두툼한 목 근육으로 인해 누군가 들어올리지 않는 한 평생 하늘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비록 올 한 해 경기악화가 지속되고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지 못하더라도 돼지처럼 ‘숨겨진 행복’을 즐기면서 동시에 ‘용맹하게’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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