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기 부회장

오랜만에 만나는 모임에 나가서는 정치 얘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자칫 정치성향이 다른 참석자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져 분위기를 망쳐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주 만나는 성향이 비슷한 지인들의 모임에서는 아무래도 화제가 정치에 집중될 때가 잦다.

지난 연말 친구들끼리 만난 송년모임에선 경기가 너무 나빠 주변이 모두 힘들어 한다는 걱정이 많이 나왔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최저임금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빠르게 늘고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많다는데 청와대에 계신 분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말씀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문재인 대통령 주위에 이념적 성향이 비슷한 비서와 보좌진이 포진하고 있어 경제현장의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한마디씩 의견을 말하다가 결국 분통을 터뜨리는 친구가 대부분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가진 송년모임에서 ‘경제 실패 프레임’을 거론하며 언론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비쳤다.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올해 소비는 지표상으로 좋게 나타났지만 소비가 계속 안 되는 것처럼 일관되게 보도됐다. 취사선택해 보도하고 싶은 것만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프레임(frame)이란 사전적으로 사물의 뼈대나 구조, 틀을 가리키는 단어로 심리학이나 언어학에서는 현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 또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경제 실패 프레임’은 언론이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비뚤어져 부정적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언론의 주요 역할인 감시 기능을 감안하면 정책에 대한 비판적 보도는 당연하지만 객관적 사실과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경제성과에 관한 보도는 기자들의 현장 취재와 함께 통계로 뒷받침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부정적 보도가 매우 서운하겠지만 객관적 취재 사실과 통계에 바탕을 둔 비판적 분석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해석이 엇갈릴 수 있는 지표에 대해서는 큰 흐름을 보는 혜안이 요구된다. 문 대통령이 지표상으로 좋게 나타났다고 언급한 소비만 하더라도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월 대비 지난해 9월 2.0% 감소했다가 10월 0.2%, 11월 0.5%로 미세한 반등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본격적인 회복으로 보아 ‘지표상 좋다’고까지 해석하기는 어렵다.

새해 세계 경제는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장기 호황을 누려온 미국경제가 침체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초저금리시대가 저물어가면서 환율과 금융불안이 신흥시장에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국제 무역질서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게다가 반도체 시장이 위축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은 아직 가물가물하고 내수시장의 침체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청와대가 좁은 경제 프레임에 갇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침체를 벗어날 해법은 요원하다. ‘사람중심 경제’나 소득주도성장 등 듣기 좋은 추상적인 정책이 아니라 실용적인 경제정책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청와대의 인적 구성부터 이념 성향이 유사한 진용에서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해가 바뀌면서 청와대 비서실 개편 전망이 들린다. 하지만 이념 성향이 비슷한 인사들을 돌아가면서 기용하는 개편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좁은 프레임을 벗어나 인적쇄신을 이룩하기 위해 문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래야 경제가 살아나고 국정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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