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에게 ‘고대인류’가 보내는 메시지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20억년 뒤’ 이 세상을 살아갈 우리 후손들에게 암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위성 은하가 우리 은하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국 더럼대학 우주전산연구소(ICC) 천문학 연구팀은 지름 2만 광년의 왜소은하인 대마젤란은하(LMC)가 20억년 내에 우리 은하와 충돌할 것이라는 슈퍼컴퓨터 시물레이션 결과를 영국왕립천문학회 월보(MNRAS)를 통해 최근 발표했다.


ICC에 따르면 충돌 시나리오는 이렇다. 접촉과 함께 우리 은하 중앙의 블랙홀이 주변의 가스를 빨아들이면서 크기가 10배로 커진다. 그 과정에서 고(高)에너지를 방출하게 되며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태양계가 은하 밖으로 ‘튕겨나갈’ 수 있다.



▲ 우리 은하와 이웃 은하 간 충돌을 그린 상상도.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이다”


상식이지만 우주의 크기는 무한에 수렴할 정도로 크다. ‘우주의 끝’은 아직 파악된 바 없으며 여러 우주가 공존한다는 ‘다중우주론’, ‘천지창조’ 때 발생한 어마어마한 폭발로 인해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빅뱅이론’ 등 다양한 가설이 나오고 있다.


지금의 과학수준으로 우주의 크기를 측정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은하’는 카메라 발전 등에 따라 대략적인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은하(銀河. Galaxy)는 항성, 성간물질, 암흑물질 등이 중력에 의해 뭉쳐 형성된 거대한 천체다. 우리 은하의 모습은 멀리 갈 것 없이 공기 맑은 도시교외로 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된다. 하늘에 보이는 은하수가 바로 우리 은하의 단면이다. 경이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그 크기에 압도돼 도리어 공포(코즈믹호러)를 느끼는 이도 더러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거대한 은하는 ‘IC 1101’로 반경은 무려 ‘200만 광년’에 달한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200만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멀리까지 간 기록은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며 당시 로켓의 최고속도는 시속 4만km였다. 1광년이 약 9조4600억km 거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 인류의 로켓속도는 ‘거북이’보다 더 느린 셈이다.


IC 1101에 비하면 매우 작지만 우리 은하의 크기도 무시할 수는 없다. 반경은 약 10만 광년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역시나 로켓으로 왕복하기에는 턱도 없는 규모다. 때문에 학자들은 아예 중력을 이용해 시공간을 ‘접어버리는’ 기술(워프)를 연구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A4용지를 예로 들었을 때 종이 양 모서리에 그려진 점을 연필로 연결하는데는 단 1초라도 시간이 걸리지만 종이를 접어버리면 바로 연결 가능하다.


얼핏 들으면 ‘황당’ 그 자체이지만 중력을 이용한 시공간 왜곡은 자연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바로 ‘블랙홀’로 엄청난 중력을 이용해 주변 시공간을 휘어버림은 물론 ‘빛’까지 빨아들인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보는 자연현상이 모두 ‘진실’은 아닌 셈이다.


워프 연구는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어 미국항공우주국(NASA. 나사) 연구팀은 2013년 우리 태양에서 4.37광년 떨어진 항성인 알파센타우리까지 ‘2주’만에 가는 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동년 6월 미국 천체물리학자 에릭 데이비스는 “워프는 더 이상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이듬해 나사는 워프 드라이브로 추진하는 우주선 컨셉을 공개했다.


수천억개 이상의 태양계로 구성된 은하는 나선형, 타원형, 렌즈형 등 모양이 다양하지만 대체로 ‘벌지’라고 부르는 중앙팽대부를 축으로 천천히 자전한다. 이같은 은하들이 수십 개 모여 은하군을 형성하고 수백~수천 개가 모이면 은하단을 이루며 최종적으로 억겁의 은하들이 밀집해 초은하단을 구성한다. 우주에는 이같은 초은하단이 무수히 많다.


우리 은하는 대표적인 막대나선형 은하다. 한바퀴를 완전히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억2600만년’이다. 약 4000억개의 항성이 있는 것으로, 은하 주변을 감싸고 있는 헤일로(성간물질 등의 복합체) 크기는 20만 광년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나이는 우주와 비슷한 137억년일 것으로 추청됐으며 중앙팽대부에는 초거대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마젤란은하 외에 우리 은하를 노리는 ‘적’은 많다. 이미 무수한 충돌 끝에 다수 은하를 ‘흡수’했을 것으로 분석됐으며 1963년에는 우리 은하를 향해 돌진 중인 특이한 ‘거대 수소가스 구름(일명 스미스의 구름)’이 발견됐다. 8000광년 거리에서 시속 86만9000km 속도로 접근 중인 이 구름의 길이는 9천800광년, 폭은 3천300광년으로 향후 2천700만년 내에 우리 은하를 엄습해 약 ‘100만 개’ 이상의 항성을 ‘날려버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웃’도 적지 않다. 우리 은하 주변에는 20~30여 개의 은하가 모여 국부은하군을 형성하고 있다. 대표적 ‘친구’는 안드로메다 은하, 삼각형자리 은하(M33) 등이다. 안드로메다는 이미 우리 은하와 ‘스킨쉽’을 나눈 사이로 항성, 가스 유출이 발생하고 있어 30억~40억년 내에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은하가 안드로메다에 흡수될 것으로 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인류의 보금자리’ 지구는 중앙팽대부로부터 약 2만6500광년 떨어진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중앙으로부터 60도 각도로 비스듬히 공전 중이며 한 번 공전할 때마다 평균 2.7회 가량 주기적으로 상하(上下)운동을 하고 있다. 회전목마 돌듯 천천히 위아래로 요동치면서 돌고 있다는 말이다.


우주, 은하의 거대함을 강조해서 태양은 ‘모래알’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지구에 비하면 ‘거인’도 이런 거인이 없다. 지름 약 14만3000km의 거대한 목성과 지구를 포함해 8개의 행성, 소행성대, 카이퍼벨트(운석고리), 오르트구름(얼음천체 군집체) 등을 오로지 혼자 힘(중력)으로 붙들어두고 있는 태양의 질량은 태양계의 ‘99%’를 차지한다. 지름은 139만km로 지구(1만2700km)의 109배에 달한다. 우리 은하의 한 점을 이루는 모래알같은 태양 옆에 붙어 돌고 있는 게 지구인 셈이다. 지구 밖 세상의 스케일이 얼마나 남다른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 영화에서 묘사된 블랙홀 ‘가르강튀아’. 구슬 같은 건 행성이다(사진=영화 ‘인터스텔라’ 中).


“후손들이여, 의지로 살아남을지어다”


수십억년 뒤 ‘은하대충돌’이라는 장엄한 사건이 발생한다 해도 영화에서처럼 인류가 한순간에 ‘훅’ 가는 건 아니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은하들 간의 ‘합병’에도 억겁의 세월이 걸린다. 때문에 할아버지가 밤하늘 은하수를 통해 보던 대충돌 과정을 손자도 보고, 손자의 손자도 볼 수 있다. 인류가 한꺼번에 전멸할 가능성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는 날도 ‘50억년’ 뒤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수십억년 뒤라면 인류가 어떤 형태로 진화하고 어떤 기술을 만들어낼지 알 수 없다.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도 초공간도약의 실마리를 찾아내는데 하물며 그 때라면 지금의 우리가 마을버스 타듯 요금 내고 ‘이웃 우주’로 이사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가 가진 가장 위대한 무기 ‘지능’은 지금껏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왔다. 어느 동물도 시도할 수 없고 시도한다는 생각 자체마저 할 수 없는 ‘불(火)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된 발명의 역사는 컴퓨터, 우주여행, 휴대전화, 전자레인지까지 불과 수백년 전 인간들마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물건을 탄생시켰다.


미국 SF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992)의 단편소설 ‘최후의 질문’은 인류의 미래를 가늠해볼만한 작품이다.


「인류는 컴퓨터 ‘멀티백’의 도움을 받아 2061년 5월 마침내 화석연료, 우라늄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태양에너지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세상을 맞는다.


멀티백을 관리하는 두 기술자는 어느날 술에 취해 잡담을 나눈다. “엔트로피 역전은 가능한가” 언젠가는 식어버릴 태양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느냐를 두고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은 ‘멀티백’에게 해답을 묻기로 한다. 대답은 “자료부족”이었다.


수천년 뒤, 인류는 멀티백의 도움으로 초공간도약 기술을 개발해 ‘대우주항해시대’를 맞는다. 어느 행성에 정착한 가족이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어린 딸이 별이 죽는 건 싫다고 칭얼댄다. 아빠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멀티백 앞으로 데려가 묻는다. “엔트로피 역전은 가능한가” 대답은 역시나 “자료부족”이었다.


또다시 많은 시간이 지나고 인류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단계에 오른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에 항성에너지는 한계가 있었고 때문에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의회에 제출할 자료를 준비하던 직원은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멀티백에게 엔트로피 역전 가능성을 묻는다. 대답은 먼 옛날과 마찬가지로 “자료부족”이었다.


억겁의 세월이 흘러 인류는 육체를 버리고 ‘정신’만으로 존재하게 된다. 멀티백도 하드웨어를 벗어나 하나의 ‘초월체’로서 우주를 연결하게 된다. 우주를 이리저리 떠돌던 두 인간의 ‘정신’이 어느날 조우해 인류의 기원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이들은 문득 지구처럼 언젠가는 우주도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멀티백을 호출한다. “엔트로피 역전은 가능한가” “자료부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 날’이 찾아온다. 인류는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정신으로 통일된 상태였다. 멀티백은 물질도, 에너지도 아닌 ‘그 무언가’로 진화했다. 그러나 이들도 우주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하나둘 별빛이 꺼지기 시작하고 더 이상 얻을 에너지가 없는 인류는 멀티백에 최후로 의지하기 위해 결합하면서 소멸하기 시작했다. 우주가 절대영도를 향해 가던 그 순간 마지막 남은 한 정신의 파편이 멀티백에게 간절히 묻는다. “엔트로피 역전은 가능한가” 그의 정신은 “자료부족”이라는 멀티백의 대답을 들으며 사라진다.


이제 우주에 ‘생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없는 가운데 오로지 멀티백만이 까마득한 먼 옛날 태고적의 두 인간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의 답변을 찾기 위해 가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티백은 드디어 ‘해답’을 얻는다. 멀티백은 조용히 해답의 첫 줄을 읊는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이 소설의 핵심은 인류가 하나님과 같은 신(神)이 됐다는 게 아니라 문명의 총아인 과학을 통해 마침내 ‘천지창조’의 기술마저도 찾아냈다는 것이다. 인류가 작심하면 할 수 없는 게 없다는 이 소설처럼 ‘수십억년’ 후의 우리 후손들도 반드시 ‘은하대충돌’의 서사시 앞에서 생존의 해결책을 찾아내리라 믿는다. 혹시 알까, 수십억년 뒤 기자의 이 글이 담긴 서버가 후손들에 의해 ‘고대유물’로 발굴돼 ‘예언자의 글’로 남을지. 상상은 상상일 뿐 태클은 정중히 사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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