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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황혼(黃昏)

    ‘식민지’에서 ‘정복자’로… 오늘날 ‘슈퍼파워’에게 주는 제국의 교훈
    기사입력 2019.01.09 17:15   최종수정 2019.01.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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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jpg▲ 런던의 명물 빅벤(Big Ben)을 배경으로 펄럭이는 유니언 잭(Union Jack).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영국과의 홍콩 반환 협상을 현장에서 이끌었던 전직 중국 외교관 커화(柯華)가 103세를 일기로 지난 1일 사망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중화권 언론들이 최근 일제히 보도했다.

    1997년 7월1일 단행된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은 ‘대영제국(大英帝國. the British Empire)’의 종말을 고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영국은 1839~1842년 청(靑)나라와의 아편전쟁에서 승리해 난징(南京)조약을 맺고 중국시장 장악을 위해 홍콩을 할양받았다. 당시 시골어촌 수준이었던 홍콩은 영국 지배 하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다민족이 거주하는 아시아 금융중심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영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 중국식 개혁개방) 앞에 중국 경제가 무섭게 성장하자 조차기간 연장을 포기하고 반환에 전격합의했다.

    155년만에 중국에 돌아온 홍콩을 두고 중국은 당초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를 통한 자치를 약속했다. 1984년 ‘영중(英中) 공동선언’을 통해 이는 명문화됐으나 중국은 근래 들어 홍콩 행정부, 입법부를 친중(親中)파로 채워넣으면서 ‘합병’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Great Britain no time to lose)”로 불리며 미국 이전에 글로벌 슈퍼파워를 과시했던 대영제국. 본 기획에서는 커화의 사망으로 재주목받고 있는 대영제국 일출(日出)·일몰(日沒) 사이의 400년 역사를 들여다보도록 한다.

    2.jpg▲ 다신교(多神敎)를 믿은 켈트(Celts)족이 세운 스톤헨지(Stonehenge).
     

    ‘변방 중의 변방’

    섬나라인 영국은 본시 유럽에서도 ‘변두리 중의 변두리’ 지역이었다.

    선사시대 크로마뇽(Cro-Magnon)인들이 살던 브리튼(Britain)섬에서는 빙하기 때 인적이 사라졌으나 기원전 1만1000년 무렵 빙하기가 끝나 기후가 따뜻해지자 대륙으로부터의 이주가 이뤄졌다. 기원전 6000~5000년경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돼 고립되자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으며 기원전 2000년께 비커(Beaker)족이 도버해협을 건너 와 인도유럽어를 정착시켰다.

    이후에는 켈트(Celts)족이 등장해 드루이드(Druid) 등 독특한 문명을 이룩했다. 켈트문화가 훗날 영국에 끼친 영향은 지대해 중세 서사시 ‘아서왕(King Arthur) 이야기’도 켈트전설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작품에는 ‘모건 르 페이(Morgan le Fay)’ ‘멀린(Merlin)’ 등 켈트식 인명이 등장한다.

    변방지역이었던 브리튼섬이 고도의 문명과 접촉한 건 기원전 58~51년 벌어진 ‘갈리아(Galia) 전쟁’이다.

    고대 로마(Rome)의 명장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는 기원전 56년 2개 군단을 이끌고 섬에 상륙해 정주민 군대를 격파했다. 이들은 정복자에 대한 충성을 약속했으나 어기기 일쑤였고 결국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가 친히 5만 병력을 이끌고 친정(親征)함에 따라 로마에 완전히 복속됐다. 약 300년 간의 식민지배 기간 이룩된 ‘로만-브리튼(Roman Britain) 문화’ 잔재는 오늘날 맨체스터, 윈체스터 등 지명에 아직 남아 있다.

    오늘날 영국의 주류민족인 앵글로색슨(Anglo-Saxon)족이 섬에 들어온 건 서기 5세기다. 이들은 켈트족, 픽트(Picts)족, 스코트(Scot)족 등 여러 민족과 영토전쟁을 벌였으며 7세기 경 승리함에 따라 지배층으로 자리매김한다. 다만 다수 부족들이 통일적으로 침공한 건 아니라서 각지에 각자의 국가를 세움에 따라 영국판 전국시대(戰國時代)인 ‘7왕국 시대’가 열린다. 아서왕도 앵글로색슨과의 전쟁에 나선 켈트족 영웅이 모티브인 것으로 알려진다.

    8~9세기 바이킹(Viking)족 침략, 10세기 ‘통일 잉글랜드’ 수립, 11세기 북방 데인(Danes)족과 노르만(Norman)족 지배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은 영국은 17세기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을 통해 민주주의의 단초를 마련한다. 명예혁명은 의회가 왕을 몰아내고 그의 딸을 새 군주로 옹립한 사건이다.

    18세기 초에는 스코틀랜드 왕국과 연합왕국을 이뤄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을, 19세기 초에는 아일랜드를 합병해 ‘그레이트 브리튼 아일랜드(Great Britain Ireland)’를 건설했다. ‘대영제국’이 형성된 것은 바로 이 무렵이다.

    3.jpg▲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를 그린 삽화.
     

    식민지에서 ‘정복자’로

    대영제국은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Ⅰ) 치세인 1584년 영국 함대가 지금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에 로어노크(Roanoke)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첫 발을 내딛었다.

    이곳에 정착한 개척자들은 모두 실종돼(현지 인디언 부족에 흡수됐다는 가설이 있다) 첫 식민지는 실패로 끝났지만 17세기 초부터 북미, 카리브해 도서지역에 식민지를 동시다발적으로 세우고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를 설립하면서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영국의 북미 지배는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1620년에는 미국 역사의 시발점(始發點)이라 할 수 있는 플리머스(Plymoyth) 식민지가 설치됐다.

    영국이 북미에만 눈독을 들인 건 아니었다. 16세기 말에는 대항해시대 선두주자로서 아시아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네덜란드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풍 예술인 ‘시누아즈리(Chinoiserie)’와 후추 등 향신료가 선풍적 인기를 끌던 유럽의 제1무역시장은 단연 명(明)나라, 청(靑)나라, 인도가 있는 아시아였다. 영국은 17~18세기에 걸쳐 4차례 벌어진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대중(對中) 수출입 시장을 독점하려 했다. 18세기 중반에는 프랑스 동인도회사와 싸워 인도를 지배하려 했다.

    프랑스와의 교전은 대승으로 끝나 영국 동인도회사는 1857년까지 인도를 다스리게 된다. 인도는 동인도회사 지배기 이후에도 1947년까지 영국 식민지가 됐으며 빅토리아(Victoria) 여왕은 1876년 무굴(Mugul) 황제가 퇴위하자 스스로 인도 황위에 올라 ‘인도의 여제(Empress of India)’를 자칭했다.

    유럽에서는 제 아무리 강대국이라 해도 로마제국으로부터의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황권(皇權)을 주장할 수 있으며 교황승인도 받아야 한다. 영국은 신(新)교도 국가였기에 인도 황위를 영국 여왕이 물려받는 편법을 쓴 것이다.

    대영제국이 항상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다. 1783년 미국이 독립해버린 것이다. 본국(本國)과 북미 13개 식민지 간 갈등은 18세기 중후반에 이미 표면화되고 있었다. 영국은 식민지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으며 급기야 1773년 일부 식민지인들이 본국으로부터의 차(茶) 수입을 막기 위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을 일으켰다.

    선박에 실린 차 상자들을 무단으로 바다에 내다버린 이 사건은 왕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영국은 식민지인들의 “대표 없이는 과세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ve)” 요구를 완전히 묵살해버렸다. 결국 1775년 미국독립전쟁이 벌어졌지만 오합지졸 민병대를 상대로 당초 승기를 잡았던 레드코트(Red coat. 영국 정규군)는 프랑스 개입 등 영향으로 패해 1783년 미국을 포기하게 된다.

    4.jpg▲ 오늘날에도 현존하는 레드코트(Red coat). 고전적 복장을 하고 불펍(Bullpup) 방식 자동소총을 들고 있는 게 이색적이다.
     

    제국확장의 선봉, 레드코트

    레드코트는 군(軍) 현대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군대다. 빨간색 군복을 입었다고 해서 레드코트라는 별칭이 붙여진 영국군의 정식명칭은 ‘여왕 폐하의 군대(Her Majesty's Armed Forces)’다. 최고지휘관은 오늘날까지도 왕이다. 다만 명예혁명으로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Kings reign but do not govern)”는 입헌군주제 개념을 처음 정립한 특성상 영국왕에게 실권은 없다.

    레드코트는 본국의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훈련’에만 몰두한 첫 근대적 군대다. 동시대까지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평시에 농민이었던 백성을 전시(戰時)에 징집해 군대를 급조하는 행태가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었다. 자연히 제대로 된 훈련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영제국은 상비군 제도를 도입함은 물론 ‘실탄 사격훈련’ 등을 집중실시했다. 당시 화약, 부싯돌은 고가의 재료였으며 이같은 실탄훈련은 ‘쇼 미 더 머니’ 원조인 대영제국이었기에 가능했다.

    훈련의 효과는 확실해서 당시 소화기(小火器)의 극악한 명중률, 조작성에도 불구하고 레드코트는 타국 군대가 1발 발사할 때 2~3발을 퍼부어 상당수 맞힐 수 있었다. 빈약한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유럽 각 군이 짰던 전열보병(戰列步兵. 촘촘히 밀집한 보병) 진형에서 이는 치명적이었다. 더구나 통상 3열 횡대였던 타국 군대와 달리 레드코트는 ‘씬 레드 라인(Thin red line)’이라 불리는 2열 진형을 갖추고 때로는 두 개 열이 동시사격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영국군은 오늘날 해병대의 원조가 되는 해군육전대(Marine corps)를 사실상 처음으로 정식운용했다. 많은 나라는 교전 발생 시 돛대, 갑판 등을 담당하던 수병(水兵)들에게 무기를 쥐어주고 백병전으로 몰아넣기 일쑤였다. 반면 대영제국은 함상백병전, 상륙전 등에 특화된 해군육전대를 따로 편성했다.

    사실 대영제국 건설의 일등주역은 바로 이들이었다. 해군육전대는 자국 해군의 제해권(制海權)을 바탕으로 적진에 진입해 수도에 유니언잭(Union Jack. 영국 국기)을 꽂았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도 실은 이들의 “한 번 뱃놈은 영원한 뱃놈(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에서 나온 것이다.

    5.png▲ 대영제국 최대 판도(분홍색 지역).
     

    제국의 황혼(黃昏)

    대영제국 전성기는 산업혁명 시기와 맞물리는 19세기 초~20세기 초다. “내 사전에 실패는 없다”고 호언하던 ‘숙적’ 나폴레옹 1세(Napoleon I)마저 워털루(Waterloo) 전투, 트라팔가르(Trafalgar) 해전 등에서 격파한 대영제국은 레드코트를 앞세워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나갔다. 이른바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ica)’ 시대다.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한 1901년 무렵 대영제국 영토는 전체 지표면적의 20%에 달하는 3천550만㎢, 인구는 전세계 4분의 1에 해당하는 4억2000만명에 이르렀다. 영국 식민지 어디에서나 태양을 볼 수 있다는 의미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수식어도 이같은 엄청난 스케일에서 비롯됐다.

    대영제국의 역대 주요 식민지 리스트 길이는 어마어마하다. △동아시아 홍콩, 중국 남부 △동남아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남아시아 인도, 스리랑카, 네팔, 몰디브, 부탄 △중동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 오만, 카타르, 키프로스, 예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오세아니아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피지,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투발루, 바누아투 △북미 미국, 캐나다 △중미 벨리즈, 자메이카, 도미니카연방, 바베이도스, 바하마, 트리니다드 토바고,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세인트 루시아 △남미 가이아나 △아프리카 이집트, 나이지리아, 남아공, 짐바브웨(舊 로디지아), 수단, 케냐, 우간다, 가나, 감비아, 시에라리온, 보츠와나, 레소토, 스와질란드, 잠비아, 말라위, 모리셔스, 세이셸 △유럽 아일랜드, 몰타, 지브롤터, 그리스 일부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주요 동서(東西) 무역로로 기능하는 수에즈(Suez)운하도 1882년 영국이 장악했다. 운하를 장악한다는 건 지금도 ‘패권’의 상징이 된다. 대영제국의 바통을 이어받은 ‘제2의 슈퍼파워’ 미국이 파나마(Panama)운하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원히 지구촌의 패자(覇者)로 군림할 것 같았던 대영제국도 그러나 ‘해질 날’을 맞고 만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영국은 독일제국 식민지였던 요르단, 잔지바르 및 오스만제국(Osman Empire) 지배 하의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흡수하며 덩치를 불려나갔다. 하지만 속된 말로 ‘통수’가 발목을 잡았다. 영국은 당초 독립을 조건으로 인도를 전쟁에 끌어들였지만 종전 후에는 ‘입 닦고’ 없었던 일로 한다. 인도 전역에서는 거센 독립운동이 벌어졌으며 진압과정에서 대영제국은 국력을 크게 소진한다.

    설상가상 ‘그레이트 브리튼 아일랜드 왕국’ 일원이었던 아일랜드마저 치열한 투쟁을 거쳐 1921년 켈트족의 나라를 세우고 독립(북아일랜드 제외)하고 만다.

    연합왕국 구성 후 영국은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곡물을 모조리 수탈하고 대신 ‘돼지사료’ 쯤으로 인식되던 감자 섭취를 아일랜드인들에게 강요했다. 게다가 역병이 돌아 감자가 모두 말라죽자 그나마도 먹을 게 없어 결국 1845~1852년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이 발생해 ‘100만명’이 ‘굶어죽는’ 참극이 벌어졌다. 아사(餓死), 이민 등으로 이 때 감소한 아일랜드 인구는 전체의 20~25%에 달한다. 때문에 지금도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이라면 ‘이’를 갈고 있다.

    대영제국 해체가 본격화된 건 제2차 세계대전 때이다. 유럽 각 국이 나치독일에 점령된 상태에서 영국도 맹렬한 공습에 노출된다. 당초 식민지들과 본국 간 관계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애증(愛憎)관계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때문에 인도, 아일랜드 등 소수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가 영국을 도와 전쟁에 참전했다.

    호주도 마찬가지였지만 과거 영국이 호주인들을 중동에서 혹사시킨 점이 여론 반대를 불러왔다. 급기야 로버트 멘지스(Robert Menzies) 총리 후임은 유럽전선으로 향하는 대신 일본에 대한 독자 선전포고를 내놨으며 영국, 호주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1941년 존 커틴(John Curtin) 총리는 미국 정상과의 전화회담에서 “우리는 더 이상 영국 이익을 우리 이익보다 우선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인도, 아일랜드, 호주의 유럽전선 불참은 대영제국 위상이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나치독일과의 전쟁에서 식민지들에 대한 영국 통치력은 급속도로 약화됐다. 1941년 일본과 싸운 말레이해전에서의 동양함대(East Asia Squadron) 궤멸은 제국군의 몰락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급기야 전쟁이 끝나자마자 식민지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잇따라 독립에 나섰다.

    1947년 8월 인도 독립을 시작으로 이듬해 팔레스타인이 식민지배 청산에 나섰다. 1952년에는 수에즈운하 소재지인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 이같은 ‘독립 릴레이’에 동참한 나라는 50여개국이다. 영국은 1997년 홍콩 반환으로 마지막 식민지를 잃고 대영제국 시대에 쓸쓸이 이별을 고한다.

    6.jpg▲ 지난 2013년 런던에서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 헌장에 서명하는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대영제국과 글로벌사회의 인과(因果)관계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을 상실한 영국이지만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여전히 전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다.

    경제대국 선두자리는 ‘식민지’ 미국에게 내주고 중국, 일본, 독일에게까지 밀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 기준으로 작년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5위(2조6200억 달러)에 불과하다. 게다가 ‘식민지’ 인도에게마저 바짝 추격당하는 신세이지만 대영제국은 ‘영(英)연방’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하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영연방 회원국은 52개국에 달한다. 대부분이 대영제국 식민지 출신 국가들로써 무섭게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인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도 여기에 포함된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지금도 영국 여왕을 ‘국가원수’로 떠받들면서 총독 부임을 형식적이지만 허용하고 있다. 영국 식민지배를 받은 적 없는 소말릴란드 등 국가들도 ‘자발적으로’ 영연방 가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같은 네트워크 형성 배경에는 무시할 수 없는 영국의 군사·외교적 파워가 있다. 영국은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와 함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구성하고 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유엔안보리는 실질적으로 국제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초월적 기구다. 이들 5개국은 모두 갯수 면에서 세계 1~5위 수준의 ‘핵탄두 보유국’이기도 하다. 회원국들은 또 ‘대영제국 출신’이라는 ‘동질감’을 매개체로 서로 협력하고 있다.

    여러 식민지들에서 드러난 각종 폐해에서 보듯 대영제국이 항상 ‘정의’였던 건 아니다. 초창기 주요산업은 ‘노예무역’이었다. 물론 노예를 공급하는 ‘도매상’은 아프리카 각 왕국 귀족, 중동상인들이었지만 이를 ‘세계적 산업’으로 키운 건 영국이라는 점에서 비난의 화살이 몰리고 있다. 노예산업 외에도 다른 식민지들에서는 인도 세포이(Sepoy) 항쟁 등으로 이어진 대규모 착취가 이뤄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의 희생은 어마어마했으며 이는 대영제국 몰락으로 직결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대영제국 형성이 20세기 글로벌사회 토대가 됐다는 점은 많은 학자들이 부인하지 않는다.

    ‘식민지 건설→식민지 간 네트워크 형성→식민지 독립→식민지로의 선진기술 이전→식민지 간 교역→각 국 상호의존 심화’라는 과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지구촌은 국가 단위의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현상이 두드러져 극소수 슈퍼파워들의 ‘독점’이 재앙을 낳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단적인 사례가 인도 등 비동맹(Nonaligned) 국가들의 단교 경고로 무산된 소련의 대미(對美) 핵공격 시도(쿠바 미사일 사태)다. 만약 인도가 소련에 제동을 걸 만큼 국력이 있지 않았다면 전세계는 1960년대에 이미 소련의 아집으로 인해 핵전쟁으로 멸망했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혹자에게는 추억으로, 혹자에게는 악몽으로 남은 두 얼굴의 대영제국. 400년 간 인류에게 ‘애증’의 존재가 된 대영제국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오늘날의 ‘슈퍼파워’들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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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성 칼럼]누가 민주주의를 무너트리는가?
  • 김재성 논설주간|2020-02-19
  • 투데이코리아 김재성 논설위원 | 성인의 치세가 아닌 바에야 인류가 창안한 제도치고 민주주의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라고 허점이 없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다수결의 ‘민주정’에서 독배를 받았듯이 고금을 막론하고 인심은 위태로운지라 제도의 빈 곳을 파고드는 파렴치 족은 늘 있어왔다. 민주주의가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되었다는 미국에서도 선의의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경고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등장 후 더욱 심각해졌다.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연구해 온 미국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을 민주주의 파괴자로 규정했다. 이들은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가’라는 공동저서에서 “그의 재임 중 언론, 법원, 안보기구, 윤리위 등 민주주의 보완장치들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과 거짓을 버무린 가짜뉴스의 범람도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캠프가 그 원조로 지목받는다. 태극기부대 시위현장의 성조기가 말해주듯 미국 민주주의 재채기가 어찌 우리와 무관하랴. 미국의 묵인 하에 이승만을 비롯한 역대 군부독재와 몸을 섞으면서 덩치를 키워온 자본, 그 자본에 젖줄을 대고 있는 언론과 범 기득권 세력은 민주제도가 보장하는 각종 자유를 한껏 누리면서 민주정부를 흔든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정부의 지지기반인 서민대중의 이익과 상충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점점 빈곤으로 몰리는 서민을 보호하는 것은 어느 정부든 마땅한 의무다. 여기에 대해 ‘좌파’ 혹은 ‘반미’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보수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공사례 학습을 토대로 이길 수 있다면 못하는 짓이 없는 민주주의 내부의 적으로 변하고 있다. 13일 중앙선관위에 등록을 마친 미래한국당은 황교안 대표가 공개적으로 창당을 선언했고 공공공연하게 창당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했다. 목적은 4월 총선의 비례대표 독식이다. 정당법 2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자발적 결사체다. 그러므로 ‘정당이 정당을 창당한다’는 말은 성립불가의 모순어법이다.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권순일)는 당명, 강령, 정책, 대표자 등 필요한 형식 요건만을 들어 등록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선관위’의 판단이 너무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황교안 대표의 지시로 신당의 대표가 된 한선교 의원과 사무총장이 된 조훈현 의원은 윤리위 소집도 없이 제명처분 된 현역의원들이 정당법 42조가 규정한 자발적 참여일까. 정당법 1조는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장 영남의 몇 개 도당 지구당 사무실 주소가 민주통합당과 일치하는 이 신당은 복제, 위성, 페이퍼, 시한부 등 별칭도 많다. 이런 당을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당이라고 할 있는가? 그리고 여기에 5억7143만 원의 국고보조금을 배분한 것이 옳은가? 황교안 대표가 공개적으로 밝힌 4월 총선의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배분에서 ‘미래 한국당’이 미칠 파장을 점검해 보자. 기존의 비례대표 배분방식은 A정당의 정당득표율이 10%라면 국회의원 정수 300명의 10%인 30명의 의석을 점해야 유권자 표의 등가성과 합치된다. 그런데 A당이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면 현행 비례대표 47명의 10%인 4∼5명에 그친다. 준 연동 비례대표제는 이 모순을 완화하기 위해 지역구 당선자수를 정당득표율 배분에 합산한다. 이 경우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처럼 지역구 당선자가 정당 득표율보다 많거나 같은 당은 비례 배정에서 제외된다. 만약 미래한국당이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미래 통합당의 지지율을 그대로 얻으면 지역구 합산이 없으므로 비례대표 배분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정가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미래한국당’이 가져갈 비례대표 의석을 민주당보다 10∼15석이 많은 15∼20석으로 전망한다. 그리고 두 당을 합쳐 원내 1당이 된다. 모든 제도는 허점이 있다. 성숙한 민주 사회는 선의의 제도에 구멍이 있을지라도 그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행위를 자제함으로써 제도를 정착시킨다. 미국의 연방헌법에 대통령의 3선 금지규정이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자제를 발휘해 재선에 그친 이후 대통령 중임제는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번 총선에서 만약 미래 통합당의 꼼수가 성공하면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후신들이 꼼수로 민주주의를 무너트린 결과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혐오한 플라톤의 말이 2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정당성을 획득하는 셈이다.
  • [데스크 칼럼]부모가 되려는 자, 그 책임감과 무게를 견뎌라
  • 김충식 편집국장|2020-02-17
  • 최근 20대 부부가 1살과 5개월 남매 아이를 방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19년 10월부터 12월까지 복지부와 경찰이 만 3세 아동의 소재, 안전 여부에 대해 전수 조사한 결과 약44만 명 중 유치원, 어린이 집에 다니는 걸로 확인된 아이가 약 40만 명, 그중 해외에 체류하는 아동이 1만 여명, 불명확한 3만 명에 대해 전수조사한 결과 23명의 소재와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다. 복지부가 경찰에 수사의뢰한 결과 23명 중 22명은 안전이 확인됐으나 1명만 확인이 되지 않았다. 경찰이 이 어린이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던 중 부모를 추궁한 결과 아이가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 남편은 특별한 직업없이 일용직으로 살아오면서 모텔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는 아이를 두고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아이가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더 기가 막힌 건 아이가 사망한 후에도 아동 수당을 신청해서 계속 받아왔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았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아이를 낳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자 아동 수당을 신청해 이를 주 수입으로 살아온 부부를 보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아이와 부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를 천륜(天倫)이라고 한다. 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믿는 유교사상이 우리네 인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륜은 거역할 수가 없고,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은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아이를 육체적으로 키우는 것에만 있지 않고 교육을 통해 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아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양육과 함께 더 큰 도덕적 의무가 따른다. 짐승도 자기 새끼를 키우는데 최선을 다한다. 사냥을 해 새끼를 먹이고, 추울 땐 새끼를 감싼다. 새끼를 강하게 키우는 짐승마저 자기 새끼를 보호하는데 자신의 몸이 상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와도 자기 새끼 지키는데 목숨을 바친다. 짐승마저도 자기 새끼를 키우는데 목숨을 바치고 최선을 다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하면 더했지 이만 못할까. 그러나 사회에서 이런 소식을 들려올 때 마다 이 철없는 20대 부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울면서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젖을 달라고 울었을 아이의 울음소리가 이 부모의 귀에는 들리지 않은 듯 하다.
  • [박현채 칼럼] 심각한 세수 펑크
  • 박현채 주필|2020-02-14
  • 지난해 국세가 정부가 계획한 것보다 1조3000억 원 덜 걷혔다. 국세 수입이 세입예산 보다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14년 이후 5년 만이자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2015년 계획보다 2조2000억 원이 더 걷히면서 플러스로 돌아선 국세 수입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은 무려 10조~25조 원 정도 매년 더 걷혔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밑천 삼아 과감한 복지 확대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젠 세금 풍년 기조가 꺾이면서 정부가 돈을 함부로 쓰기가 어렵게 됐다. 작년에 대규모 세수 결손이 난 것은 정부의 경제 전망이 빗나간 탓이다. 정부는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7%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예산을 편성했으나 2.0% 성장에 그쳤다. 반도체 불황, 미·중 무역분쟁, 기업 규제 등으로 경제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기업 이익이 대폭 줄어들면서 법인세가 예상보다 약 7조 원이나 덜 걷혔다. 게다가 부동산 거래가 격감하면서 양도소득세 수입이 줄고 유류세 감세 등 경기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이 시행된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세수 감소 폭이 더 커질 전망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 목표를 2.4%로 잡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수출과 내수 등 경제 전반이 충격을 받으면서 지난해 수준(2.0%) 달성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등 국민의 경제활동 전반이 얼어붙어 세수 차질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하지만 경제에 대내외 악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일 것 같지 않다. 사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재정 지출을 늘려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경제의 활성화로 국민의 소득을 늘리는 것이 재정 본연의 역할이다. 우리 경제는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가운데 수출 부진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민간소비도 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이 악화되고 빈부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정부도 재정 확대를 통한 경제 활력 회복에 정책의 최우선을 두고 올해 510조원이 넘는 ‘초 슈퍼 예산’을 편성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추경까지 거론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로 인해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침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에 더 보탬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재정 지출이 생산적 분야에 집중돼 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재정확대가 경제회생의 마중물이 되어 세수를 늘리는 선순환 체제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재정지출 구조는 그렇지 못하다. 생산성과 무관한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인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현금지원 방식의 소모적 지출과 노인들의 단기 일자리 만들기, 공무원 증원 등에 집중되고 있어 재정확대가 재정건전성 악화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쓸 곳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이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결국은 모자라는 돈을 국채로 메우거나 증세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채는 가뜩이나 어려운 청년층 등 미래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짐이다. 증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문 정부는 출범 이후 법인세율과 종합부동산세율을 올린데 이어 최근엔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 인상을 통한 간접적인 보유세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세수 펑크에서 보듯 문 정부의 증세 정책은 한계에 이르렀다. 얼핏 증세나 세무조사 강화가 세수를 늘릴 것 같지만 지금 같은 불경기에는 역효과만 커진다. 아무리 세무조사를 해도 기업이 돈을 못 벌면 세수는 늘지 않는다. 국세청장이 신년사를 통해 올해 첫 번째 업무 목표로 ‘세수 확충’을 꼽아 벌써부터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젠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억제해 예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씀씀이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 생산유발 효과가 낮은 ‘돈 풀기’식 사업이나, 총선용 ‘표퓰리즘(표+포퓰리즘 합성어)’ 지출을 철저히 따져 걸라내고, 보다 생산성이 높고 재정투입의 장기적 효과가 큰 구조조정이나 신성장동력 사업의 지출을 우선하는 것이 절실하다. 세수 확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경기 회복이다. 재정으로 경기를 회복시킬 수가 없다면 민간의 활력으로 이를 돌파해야 한다. 과감한 규제 혁파와 노동 유연성 확보로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 기업 ‘기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 최선의 정책적 조합으로 성장 동력을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키워야만 세수 기반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lt;투데이 코리아 주필&gt;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 [권순직 칼럼] 우한 폐렴이 불댕긴 중국 언론자유
  • 권순직|2020-02-12
  • 지난 1970~80년대를 살아온 우리 국민들은 ‘유비통신(流蜚通信)’과 ‘카더라방송’이라는 용어에 익숙했었다. 독재정권이 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언론을 통제하던 시절, 사실과 사실이 아닌 온갖 정보들이 시중에 나돌았다. 그것의 진위(眞僞)를 쉽게 가리기도 어려웠다. 정보에 목마른 국민들은 유언비어와 같은 시중 루머에 의존해 세상 돌아가는 폼세를 짐작하려 했다. 일컬어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유비통신 카더라방송이라고 했다. 언론기관과 언론 종사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지만 바위에 계란 던지기였던 엄혹한 시기가 있었다. 지금 전 세계를 걱정의 도가니로 만든 우한(武漢)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전혀 뜻하지 않은 방향의 ‘중국 언론자유 그리고 알권리 욕구’가 분출하는 일로 번지고 있다. 앞서 기술한 한국의 70~80년대 언론 상황이 오늘 중국의 언론 상황과 겹쳐 생각이 났다. 1천명 넘는 생명 앗아간 사태, 정보 차단 탓 우한의 안과 의사 리원량(34)은 작년 12월30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소식을 SNS에 처음 외부에 알렸다. 폐렴환자 7명에게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중후군)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며, 의과대학 동창들과 공유하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를 접한 중국 공안당국은 리원량을 잡아들여 사실이 아닌 얘기를 퍼뜨렸다며 반성문을 쓰게하고 풀어준다. 그리고 당국은 전문가인 의사의 경고를 받아들여 신속히 대응하기 보다 정보를 숨기고, 비판여론을 덮는데 급급했다. 그러던 와중에서 이 의사가 사망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여기에다 우한 참상을 외부에 낱낱이 고발한 시민기자 천추스(35)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뉴스까지 전해졌다. 의사 리원량의 죽음과 시민기자 천추스의 실종은 중국 지식인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당국의 정보통제와 늑장 대응은 중국인들의 심한 반발을 불려 일으켜 언론자유 보장과 알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간주되지 않았다면, 모든 시민이 진실을 말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 엄청난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이번 사태의 핵심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라고 중국 학자들은 당국을 성토한다. 리원량이 사망한 날을 ‘언론자유의 날’로 지정하자, 모든 사람이 언론자유를 탄압하는 현 체제에 맞서 ‘아니요(NO)'라고 말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SNS를 뒤덮고 있다고 한다. 우한 페렴 사태는 의학적인 문제를 넘어 중국 체제에 관한 과제로 번지는 양상이다. 언론자유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1천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태는 단순히 중국 내부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정보통제 언론탄압 늑장대응으로 한국은 물론이고 지구촌 곳곳에 피해를 주고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전문 의사가 울린 경고를 듣고 신속히 대처했더라면 이처럼 이웃나라 국민들까지 걱정하는 사태를 막았을 것이다. 비판여론을 덮는데 급급하는 와중에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구촌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 정보의 통제와 언론자유의 억압이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언론자유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관련자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로 한걸음씩 더디게 더디게 진전된다.
  • [김태혁 칼럼] “민심이 수상하다”...경상도,박근혜 구속때와는 전혀 다른양상
  • 김태혁 부사장|2020-02-10
  •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지난 2017년 3월 31일 감옥에 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개인적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사적인 감상은 빼고 “당분간 대한민국에서 여자 대통령이 될 경우는 없겠구나”라고 생각 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보수진영에서 정권을 탈환 하기는 “향후 15년간은 어렵겠다”고 봤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지지율 70%를 기록 했을때 더욱 확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는 4,15 총선을 앞두고 혹자들이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까?”라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됩니다. 자유한국당 독주체제가 무너졌던 전통적으로 보수 색채가 강한 경상도와 부산 지역이 예전과 다른 민심 변화를 뚜렷하게 보이고 있기 때문 입니다. 이처럼 민심 변화를 보이는데 결정적인 단초는 ‘조국 사태’ 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게 과연 법치에 맞느냐...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권력을 이용해 추미애 법무부장관을 앞세워 정의로운 윤석열 검찰총장을 괴롭힌다고 보고 있는 것 입니다. 어디 이것 뿐이겠습니까?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헛발질도 민심을 바꾸게 하는데 일조 했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정봉주 전 의원에 이어 원종건으로 이어지는 '미투'는 민주당에 도덕적 흠집을 내었습니다. 문희상 의장 아들 부분과 이해찬 당대표의 잦은 실언도 말해 뭐하겠습니까? 요즘 가장 불안에 떨고 있는 분들은 아마 경상도와 부산 민주당 현역 의원과 예비의원들일 겁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민심이 달라졌다. 특히 민주당에 대해서는 경상도에 민주당은 예전 DJ 시절하고 다를게 없다. 민주당이 바뀌지 않으면 쉽지 않은 총선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경우 특별한 변수가 없는한 이낙연 전 총리가 내년 대통령선거의 후보로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불문율처럼 돼 있지만 이른바 영남 후보론이 깨질 것 이라는 분석입니다. 영남 후보를 내세우고 호남에서 몰표를 받으면 이길 수 있는 방정식은 이젠 역사속으로 사라질 전망 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상도와 부산과 대구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라는 것 입니다. 왜 그토록 故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과 경상도의 민심을 얻으려 몸부림 쳤는지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 해 볼 때라고 생각 합니다. 분명 민주당은 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답이기 때문 입니다.
  • 조은경 작가의 귀촌주부다이어리
  • [조은경의 귀촌주부 다이어리]2-13
  • 조은경 작가|2020-02-17
  • 1월의 마지막 날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평소라면 동남아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곤 했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해외로 나갈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국내로 1박 2일의 가벼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우리가 한 때 살았던 인연으로 그 후에도 자주 방문하던 전라도 지역의 나주나 영암이나 여수? 아님 천사의 섬이 있는 신안군이나 목포? 맛있는 전라도 음식을 잔뜩 먹고 올까? 하지만 그러기엔 자동차로 운전할 시간이 너무 길다. 영천에서 전라도엘 가려면 2박 3일은 되어야지. 그래서 영천 가까이에 있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도시들을 떠올렸고 울산엘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보니 부산이나 경주나 포항은 여러 번씩 가 보았지만 울산은 한 번도 가보지를 못했다. 울산을 목적지로 삼고 나서 숙박할 곳을 고르다 보니 울산과 경계인 곳에 있는 경주 마우나 오션 리조트가 그럴 듯 해 보였다. 마우나 오션? 마우나는 산이란 뜻일테고 오션이라면 바다인데 도대체 어느 쪽이란 거야? 티맵으로 찾아본 숙소는 바닷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 산 꼭대기에서 동해가 멀리나마 보인다는 뜻의 명명일테지? 숙소 예약이 끝난 후에 울산에 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옛날부터 유명하던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 레플리카는 여타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실물로 보고 싶었다. 가끔씩 물에 잠기기도 한다는데 그럼 훼손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전에 가 볼 좋은 기회였다. 1박 2일의 단촐한 짐을 챙기고 자동차에 올랐다. 결혼기념일 케잌도 자동차 뒷자리에 실었다. 카톡을 통해 지인에게서 받은 케잌 선물이다. 날씨가 따뜻한데다 하늘마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게 펼쳐져 기분이 그만이었다. 서울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 긴장상태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경상도는 청정지역이라 다행이다. 사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많은 여행을 해 보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소풍으로부터 여러 날 숙박하는 국내외의 여행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부터 혼자서 호젓이 하는 여행까지. 그런데 오늘처럼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 뿐으로 길을 나선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목적지가 가까우니 문제가 생기면 돌아올 수도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길이 한적하니 특별히 운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일도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남편과 나는 집을 나와 가까운 호국로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영천의 자랑인 3사관학교와 국립묘지 호국원을 지나는 길이다. 운전대는 남편이 잡았다. 한창 시절, 남편이 술을 좋아해서 운전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가족끼리 어딘가 가려고 하면 설거지를 막 끝낸 젖은 손으로 아이들은 뒷자리에, 술이 덜 깬 남편은 옆 자리에 앉힌 채 운전대를 잡으며 고달프게 길을 떠나야했다. 남편이 운전석에 아내는 조수석에 타고 가는 정상적(?)인 가족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 남편이 스스로 운전을 하겠다고 자원하고 나선 것이다. 영천의 길들에 차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운전을 할 자신이 생겼다나. 이것도 우리가 영천 시골에 귀향했기에 덤으로 챙긴 선물인 것이다. 혼잡한 서울이라면? 남편이 30년 만에 운전을 하겠다고 나설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귀향은 생활 장소의 물리적인 변화 뿐 아니라 심리적인 변화까지 선물해 주는 것 같다. 누구나 나이 들어서는 변화를 두려워하는데 이런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에는 진정 박수를 치고 싶다. 우리는 구룡포까지 거의 직선 도로를 운전해 나갔다. 길은 한가롭고 자동차 도로라 신호등도 거의 없고 두시 방향으로 두 번쯤 움직였을까 벌써 구룡포 바닷가에 이르렀다. 첫 목표는 구룡포의 예쁜 찻집에서 발을 쉬게 하는 것. 조수석의 내가 인터넷을 뒤져 예쁜 카페 리스트를 뽑아냈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안녕 구룡포”가 좋을 듯싶어 그 장소를 입력하고 가는데 왼쪽 편으로 “coffee 311” 이라는 하얀 건물의 카페가 눈에 띈다. 흠, 이곳도 괜찮을 듯 싶군. 혹시 목표로 한 카페를 못 가게 된다면 이곳으로 돌아와야지 생각했는데 역시 그 생각대로 되었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나는 아인슈페너를 선택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위에 특별한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이 집 특유의 비엔나커피 맛이 나를 흐뭇하게 했다. 다음 목적은 암각화를 보러 가는 것.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방향으로만 갔기 때문에 솔직히 이 암각화가 있는 대곡천 계곡이 울산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 잘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깊은 계곡 상류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 장소 앞까지 잘 찾아가서 문화재 지킴이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5000년 전 선사 시대 때 이미 울산은 포경의 중심지였다는 것이고 고래잡이의 갖가지 그림들은 역사적인 중요성으로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그 날은 주중이라 암석 바로 앞에까지 갈 수 없어 비치된 망원경을 통해 탐색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또 하나의 암각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곡천 하류 지점에 있는 천전리 각석의 글자들은 아직도 뚜렷해서 옛 조상들의 암각화와 글씨에 목말랐던 나를 위로해 주는 듯 했다. 다음날 영천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동해 바닷가를 보며 달릴 수 있는 동해안로를 택했다. 가면서 유명하다는 경주의 양남 주상절리에 들렀다. 옛날 활화산의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바닷물 속에 부채꼴 모양의 아름다운 주상절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곳을 떠나 계속 바닷가를 오른 쪽 곁에 두고 북상했다. 그 길이 동해안로이며 31번 번호를 가지고 있는 국도란다. 하늘이 맑으니 바다도 더불어 푸르렀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길이 계속 펼쳐져 있는 곳이 경상도란다. 이제껏 내가 알던 무뚝뚝한 경상도가 아니고, 안동이니 하회니 엄숙한 양반들이 살던 경상도도 아니고 이렇듯 멋진 자연을 가지고 있는 경상도란다. 이 1박 2일의 산뜻한 여행에서 나는 경상도의 매력에 흠뻑 취했다. 경상도의 중심에 내가 사는 영천이 있지 아니한가. 1박2일 차를 몰고 어디든 한가하게 다녀올 수 있는 멋진 장소들이 가득한 경상도에 살고 있는 내가 한껏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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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기자수첩]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혐오' 바이러스
  • 편은지 기자|2020-02-17
  •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데 뒤에서 중국어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뒤를 돌아보자마자 자리를 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자인 나 또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까 고민했다.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인 탓에 괜히 위험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코로나19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던 국내 시민들은 인터넷 상에서 ‘우한폐렴’이라는 낯선 단어를 접하고 중국인을 욕하기 시작했다. “중국인은 도움이 안된다”, “그러게 박쥐를 왜 먹나”, “더러워서 그렇다”, “중국인 보면 피해라” 등의 말이 난무했다. 배달 기사들은 중국 동포 밀집지역인 대림동으로 배달을 갈 경우 위험 수당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까지 확산됐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각국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유럽에서도 코로나19에 대한 경계를 높였다. 이 가운데 유럽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인에게 ‘코로나바이러스’라고 칭하며 비난했고 여기에는 유럽에 살고있는 한국인들도 포함됐다. 그들에게 중국인은 동양인 전체였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9일 코로나19로 인해 유럽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가 충격적으로 짙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월 30일에는 영국의 중부 요크셔주 셰필드에서 한 중국계 대학생이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욕설을 듣는 일이 벌어졌다. 독일에서도 지난 1월 31일 지하철 역에서 한 중국인 여성이 2명의 현지 여성에게 머리채를 잡힌 뒤 발길질을 당했다. 동양인 혐오가 거세지자 유럽에 거주하는 아시아인들은 혐오를 멈춰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프랑스 현지에 사는 아시아인들은 SNS를 통해 '나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벌였고, 이 캠페인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많은 나라에서 현재도 진행 중이다. 또 지난 4일 중국계 이탈리아 청년의 1인 시위 영상도 큰 화제가 됐다. 영상 속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거리에서 한 남성이 자신이 직접 쓴 플랜카드를 옆에 세워놓고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자신의 눈을 검은색 천으로 가리고, 흰 마스크를 쓴 채였다. 플랜카드에는 “나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한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나를 편견에서 해방시켜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혐오로 피해를 입은 동양인들이 속출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낙인찍기와 증오를 멈춰야한다”며 “우리 모두 이번 발병으로 교훈을 얻겠지만 지금은 정치화할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도 “우리가 이겨내야 하는 건 바이러스지 인류가 아니다”며 “무분별한 혐오와 차별을 멈춰야한다”고 말했다. 물론 빠르게 증가하는 확진자와 매일 늘어가는 사망자 수는 유럽인, 아시아인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국내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 유럽에서는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혐오라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이 혐오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섭다. 코로나19는 언젠가 잠잠해지겠지만 이로 인해 생긴 혐오는 없어지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국인을 혐오한다고 해서 코로나19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그저 걸리지 않는 게 최선인 이 감염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만든 감정일 뿐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유럽의 사례를 접하고 나서야 지하철에서 중국인을 피할지 고민했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유럽인의 기사에는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면서, 정작 길거리에서 중국인을 마주하면 불안감을 가지는 일은 동양인을 혐오하는 유럽인들을 정당화한다. 두려움이 혐오가 되지 않도록,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인들의 격려와 의지가 중요하다.
  • [기자수첩] 올해는 ‘진짜 5G’ 꽃 피우자
  • 유한일 기자|2020-02-04
  • 작년 4월 3일 한국이 세계 최초로 일반인 대상 ‘5G(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라는 쾌거를 이뤄낸 이후 작년 한 해 국내 5G 가입자 약 466만명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목표였던 500만명에는 근소한 차이로 미치지 못했지만, 당초 업계의 1차 전망치였던 200만명보다는 두 배 이상 늘어난 성적표를 거뒀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글로벌 5G 가입자 중 약 37%를 한국이 확보하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5G에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로 무장한 5G는 4차 산업혁명의 ‘혈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래 산업을 구현해 나가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이 국가 발전으로 이어지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5G가 통신 속도의 진화를 넘어 혁신적 융합서비스와 첨단 단말·디바이스 등 신산업 창출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산업계에서는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AI(인공지능), VR·AR(가상·증강현실) 등 5G를 활용한 첨단 기술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5G 상용화 이후 정부와 제조사, 이동통신사들은 세계 최초를 넘어 ‘세계 최고’로 도약하기 위한 역량을 집중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5G+ 전략을 발표하고 2022년까지 30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제조사들은 연이은 5G 스마트폰 출시를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줬고, 이통사들은 5G 기지국 구축에 열을 올리며 커버리지 확대에 나서고 있다. 다만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는 5G가 작년 한 해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전국망 구축 지연으로 인한 통신 품질 문제와 고가 요금제 논란, 5G 콘텐츠 부족 등 갖가지 구설수에 올라야 했다. 작년 12월에는 이용자 7명이 모여 분쟁 조정을 신청하고 5G 가입 해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 상용화를 비롯해 굵직한 이슈와 논란을 불러온 5G. 그럼에도 5G가 더욱 기대되는 건 올해다. 이통사들이 올해를 ‘진짜 5G’ 상용화의 원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러면 지금까지 써왔던 5G는 가짜라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목표다. 먼저 올해 5G는 더욱 업그레이드된다. 이통사들은 현재 서비스 중인 5G NSA(비단독규격)를 5G SA(단독규격)으로 바꾸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다. 5G NSA는 LTE망과 5G망을 함께 쓰는 방식이지만, 5G SA는 ‘순수 5G’ 만을 사용한다. 실제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는 가시화된 성과를 발표하며 상용화 계획 이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LTE를 넘나들며 5G 통신 불통을 호소하던 소비자 입장에서도 반길 만하다. 또 ‘5G의 꽃’으로 불리는 주파수 대역도 이르면 올 하반기께 사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5G는 3.5GHz 대역 고주파수와 28GHz 대역 초고주파수를 사용한다. 현재 국내에 서비스 중인 건 3.5GHz 대역이다. 이통사는 통신, 제조사는 단말기를 각각 맡으며 올해 28GHz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28GHz는 이론으로만 알려진 4G(LTE) 대비 20배 빠른 통신 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 초고속 통신 시대와 미래 산업을 구현하고 앞당길 수 있는 열쇠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여러 기술 분야 중 현재 한국이 선도할 수 있는 건 5G 뿐이다. 드론의 경우 중국이 거의 독식하고 있고, 인공지능은 미국과의 기술격차가 2년이나 벌어졌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들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주자를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IT 강국의 면모를 살려 5G 분야에서는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해야 할 시기다. 정부의 정책지원이 뒷받침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역할은 이통사들에게 있다. 인프라 확충, 기술력 고도화와 함께 소비자들의 기대도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갖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선두를 지키려면 피와 땀이 섞인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현재 이통사들을 보면 무작정 채찍질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통사들의 지난날을 되돌이켜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작년 5G 통신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모든 화살은 이통사들에게 돌아갔다. 또 5G 마케팅 비용 증가로 작년 4분기 이통 3사의 실적 전망은 그야말로 잿빛이다. 이런 상황에 정부의 압박으로 5G 관련 투자는 늘려야 하는 고충이 있다. 이러다가 회사의 기본 사업 정책도 자유롭게 설계하지 못 하는 상황까지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이통사들은 그야말로 ‘동네북’이 된다. 표심을 얻기 위해 정치권은 시민사회와 손잡고 이통사들에게 요금 인하 압박을 가한다. 여러 근거를 들며 서민들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여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통사들의 최대 수익원인 통신 요금에 불을 지핀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끝나면 뒷짐을 지고 사태를 방관하기 일쑤다. 통신은 국민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 이통사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5G가 상용화된 이후 국가 간 기술 경쟁에도 참여하며 부담은 배가 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통사들은 올해 다시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진짜 5G’ 상용화를 위한 계획들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우리나라는 한 번 더 기술격차를 벌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물론 소비자들도 더 나은 서비스를 체감할 수 있게 될 게 분명하다. 이통사들은 LTE 속도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데 이어 5G 분야 글로벌 선두 자리까지 탈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건 긍정적이다. 현재로서는 이통사들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올해 목표로 설정한 ‘진짜 5G’를 꽃 피워 소비자 편의와 국가 경쟁력 제고에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작년 4월 3일 세계 최초 5G 상용화 당시 정부와 이통사들이 들었던 ‘축배’를 올해 세계 최고 기술력 달성 도달로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 [기자수첩] 여전한 저성장의 늪…탈출구는 있나
  • 송현섭 기자|2020-01-29
  •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0% 늘어나는데 그쳐 지난 10년이래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심지어 작년 4/4분기엔 1.2% 성장에 머물러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가 우려된다. 일단 미중간 무역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도체 등 주요품목의 수출 부진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전반적 수출 증가세 둔화와 민간소비의 위축, 설비투자 부진이다. 한 중소기업 경영자는 “저성장의 늪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며 “대내외 악재보다 겉도는 정부의 경제정책과 정쟁에만 골몰하는 정치권의 태도가 더 우려된다”고 하소연 했다. 그는 또 “기업의 신사업 도전을 위해 과감하게 규제를 풀고 활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경기전망을 낙관할 수 없기에 고용을 늘릴 수 없고 설비투자도 진행할 수 없다는 의미로 보인다. 리스크가 큰 사업을 벌이기엔 국내외 소비가 너무 침체돼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러다보니 요즘엔 폐업하는 자영업자나 사업장이 많아 사무실 철거관련 업종만 재미를 보고 있다는 씁쓸한 후문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항간엔 또다시 최악의 경제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도 팽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고용과 설비투자가 부진한데 따른 대책 마련보다는 집값 잡기에만 골몰하는 모양새다. 금융권 대출규제와 과세를 강화하고 극단적 처방으로 부동산시장으로 자금유입을 차단하려는 정책이 이미 시행중이다. 거래도 없이 주택가격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자 잇따른 긴급조치가 발동됐다. 시장 수급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 조치 때문에 부동산업황은 사상 최악의 수준이다. 팔겠다는 사람도 사겠다는 사람도 없으니 중개업소들은 몇 년째 빙하기를 지내고 있는 셈이다. 반면 주택 수급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하는 극단적 처방만으로 집값이 잡힐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 견해다. 과거 정부에서 주택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시그널만으로도 집값을 잡은 사례가 있다는 점을 조언하고 싶다. 또한 정부가 집값 잡기에만 집중하는 사이 대기업의 고용과 투자를 독려하고 벤처·스타트업 지원을 통해 성장을 추진하려던 정책은 겉돌고 있다. 불투명한 경제전망으로 창업에 나서는 사람은 감소하고 20대에서 40대까지 주요 경제활동 연령대의 실업규모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위해 국민 조세부담은 크게 늘었지만 경제성장을 위한 명확한 방향성이나 뾰족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이 있다. 정부가 저성장의 장기화로 국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기 전에 전략산업을 선정하고 집중 육성하려는 정책으로 선회하기를 기대한다.
  • [기자수첩] 적극적 재정과 통계의 허수…정책 딜레마의 한계
  • 최한결 기자|2020-01-28
  •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GDP)가 2.0%로 확정되면서 1%대 우려는 피했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사용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른바 정부의 곳간을 풀어 그 돈으로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다. 하지만 나라의 재정은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고 재정이 나빠지면 다시 세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안 좋은 경제는 부양해야하니 딜레마의 연속인 셈이다. 지난 9일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발표한 '2019년 3분기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부문의 순자금운용(자금운용-자금조달) 규모는 16조8000억 원으로 2018년 3분기(27조6000억 원)보다 10조8000억 원 축소됐다. 역대 3분기 중에서는 지난 2011년 3분기(11조2000억 원) 이후 8년 만에 가장 적다. 순자금운용이란 경제 주체가 보유한 예금ㆍ보험ㆍ채권 등 자금운용액에서 대출금과 발행한 채권 등 자금조달액을 제외한 금액으로, 통상 여유자금을 의미한다. 한은은 가계의 여유자금이 확대된 이유로 2018년 대비 부동산 투자 수요가 감소해 대출이 줄어들었고,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위험자산보다는 안전한 예금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세수는 줄어든데 반해 지출은 매우 늘어나 정부는 4년만에 적자가계부를 작성했다. 나라 곳간은 비는데 사용하는 곳은 많으니 이 많은 세금을 다시 국민이 메꿔야한다. 아이러니한 점이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의 재정동향 1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누적 총수입은 435조4000억 원, 총지출은 443조3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7조9000억 원 적자를 냈다. '세수 진도율'은 93.8%로 전년(95.3%)보다 1.5%포인트(p) 하락했다. 1년간 걷어야 할 세금 기준으로 11월까지 이 비율만큼 걷혔다는 의미다. 최근 5년(2014~2018년) 평균 진도율인 94.4%보다는 0.6%p 하락했다. 예산 기준 세수 진도율은 1년 전보다 10.6%p 내려갔다. 지난해의 경우 예산 대비 초과세수(25조4000억 원)가 커서 연중 진도율(연간 진도율 109.5%)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라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세수감소 요인으로는 부동산 거래 감소로 양도거래세수가 감소했고, 소득세 실적이 부진했다.소득세는 77조9000억 원이 걷혀 2018년 대비 1조1000억 원이 줄었다. 또한 기업의 수익률은 줄어들었다. 특히 반도체 업황이 지난 2018년 엄청난 호황을 이룬데 반해 지난해 반도체 단가 하락,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및 회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등 악재들이 넘쳐났다. 문제는 재정의 쓰임새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취업률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경제의 허리부분을 담당하는 40대의 실업율은 올라가는데 반해 취업률은 낮아지고 있다. 청년실업도 지난해 대비 개선이 대부분 되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2월은 15~64세 고용률은 67.1%로 전년동월대비 0.6%p 상승했다. 취업자는 2715만 4000명으로 51만 6000명이 증가했다. 연간으로는 15~64세 고용률은 66.8%로 전년대비 0.2%가 상승했으며 취업자는 2712만 3000명으로 30만 1000명 증가했다. 특히 통계청은 청년층 고용률이 43.5%로 2006년(43.8%) 이후 가장 높았고 실업자는 2만2,000명 감소하며 청년 실업률이 2013년(8.0%)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8.9%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인 부분인 60대 이상의 취업률은 기이하게 올라가고 있다. 물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기준 노인 빈곤율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노인층의 취업은 매우 잘된일수도 있다. 60대 이상 취업자 증가 폭은 역대 최고 수준을 보인 반면 40대 취업자 수는 2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제조업 일자리마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연령대로 보면 60대 이상에서 37만7000명 증가했다. 이는 1963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 수준이다. 60대 이상 취업자 중 65세 이상이 22만7000명으로 비중이 더 높았다. 50대와 20대에서는 각각 취업자 수가 9만8000명, 4만8000명 늘었다. 반면 40대는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6만2000명 쪼그라들었다. 1991년 26만6000명 감소한 이래 28년 만에 가장 많이 줄어든 것이다. 30대 취업자 수도 1년 전보다 5만3000명 감소했다. 즉 정부 재정으로 노인들의 단기적 직장을 구해주는데 돈을 쓰지만 정작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40대는 고전을 면치 못했고, 청년의 일자리는 지켜지지 못했다는 뜻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이제 본격적인 4차산업 시대, 1인 가구 증가와 뉴노멀시대로 들어간만큼 다양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더 이상 정치적인 목적과 포퓰리즘을 자처한 공약이 아닌 정말로 국익과 국민을 위한 정책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숫자와 통계는 속일지라도, 현실을 속일수는 없다.
  • [기자수첩] 인도 시민권법 개정, 특정 종교인 제외로 ‘몸살’
  • 김태문 기자|2020-01-14
  • 홍콩에서 범죄자 송환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인도에서는 인도의 시민권법 개정에 무슬림교도 등 특정인들을 배제하면서 인도헌법과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시민법 개정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항의가 거세지고 있다. 인도정부가 지난해 12월 통과시킨 ‘시민권법 개정안(Citizenship Amendment Act)’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권법 개정안’은 2014년 12월 31일 이전에 인도에 도착한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인데, 적용대상에서 무슬림교도와 유대교도 그리고 무신론자 등은 배제됐기 때문이다. 인도 집권당인 인도 국민당(BJP)은 해당 법안으로 약1500만 명이 시민권 신청 자격을 획득할 것으로 내다 봤다. 이와 함께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는 “오늘은 인도 역사상 획기적이 날로 기록될 것이다”고 밝히고 법안 통과를 환영했다. 그러나 아삼(Assam)주와 트리푸라(Tripura) 주를 비롯한 인도 북동부 지방에서는 정부의 시민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다. 특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국제민주연대 등 20여개 단체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무슬림이 배제된 인도의 시민권법 개정안은 ‘모든 시민에게 기본적인 평등권을 제공한다’는 인도 헌법 제14조와 ‘모든 종교를 공평하게 대우한다’는 인도 헌법의 세속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법이 통과되면 스리랑카에서 이주해온 약 15만 명의 타밀족, 4만 명의 로힝야 난민을 포함하여 상당수의 무슬림 난민들이 차별과 억압을 당하게 될 것”이라면서 “13억 5천만 인구 중 2억 명에 해당되는 무슬림들은 이미 모디 정부가 강화하고 있는 힌두 민족주의로 인해 억압과 차별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마저 통과된다면 무슬림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해당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인도 시민권 취득을 노리고 방글라데시로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의 수가 급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16일 마마타 바네르지 서부 벵골주 수상도 콜카타에서 시민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고, 뭄바이에서도 항의 집회가 개최되는 등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도 정부가 국가주민등록 시행으로 인해 국적이 박탈될 우려가 있는 힌두교도를 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민권법 개정을 추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방글라데시 접경 지역인 아삼주에서 국가주민등록 제도를 시행하고 인도 국적 보유를 입증할 서류를 제시하지 못한 주민을 추방하기로 했으나, 서류가 없는 주민의 상당수가 힌두교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 역시 최근 이슬람 국가에서 가장 박해받는 주민들이 이슬람교 소수 종파와 무신론자인데, 인도의 시민권법 개정안에는 이들이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어 심각한 차별에 노출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국가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종교와 이념, 사상을 떠나 정책 실현에 있어 다방면으로 보호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줄 의무가 있다. 또 특정 종교를 떠나 다양한 의견의 표출이 이루어져야 건강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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