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의 핵심 키워드는 ‘경제’였다. ‘경제’라는 단어가 총 35차례나 언급될 정도로 신년 회견문의 상당 부분이 시민들의 삶과 관련된 경제 문제에 맞춰졌다. 문 대통령은 “고용지표 부진이 취임 이후 가장 아쉽고 아프다”면서 “어떻게 풀지가 올해의 가장 큰 과제”라고 했다. 일자리 부진에 유감을 표시하고 개선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우리 경제는 ‘양극화 현상’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어느덧 우리는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면서 ‘함께 잘사는 경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신년사 첫머리에서 ‘삶의 질 개선’을 강조했지만 고용사정은 더욱 나빠져 나락으로 떨어졌고 빈곤층과 부유층간의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 정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를 위해 추진한 정책이 오히려 이들을 더 궁핍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는 제아무리 명분이 좋고 이상적인 정책이라도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면 역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지금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2년 남짓 슈퍼호황을 구가해 온 반도체 덕분이었다. 그런데 반도체 경기가 꺾였다.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매출이 전분기 대비 9.9% 줄었고 영업이익은 무려 38.5%나 감소, 시장 전망에 크게 못 미친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국내 양대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도 4분기 영업이익이 시장이 예상한 5조원대에서 약 1조원 감소한 4조원 대에 그쳐 역시 어닝쇼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침체는 지난해 10월부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예견돼 왔다. 반도체 시장은 4분기와 1분기가 실적이 꺾이는 비수기다. 하지만 시장에서 예상했던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이 꺾인데다 앞으로 고객사들이 재고를 미끼로 가격 하락 압력을 가할 가능성마저 높아 업황 둔화가 적어도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지지 않을 까 우려된다.

올해 한국 경제는 도처에서 위기 경보음이 들려올 정도로 잿빛 일색인데 반도체 악재까지 겹쳤으니 예삿 일이 아니다. 모든 대내외 여건이 작년보다 좋지 않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이로 인한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대, 3개월의 시한부 휴전 상태인 미·중 무역전쟁, 초저금리 시대 종막으로 안전 자산으로의 자본 탈출이 빨라지면서 고조되고 있는 신흥시장의 금융 불안 등이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면서 저성장ㆍ저소비가 고착화하고 있다. 성장판이 닫히면서 투자와 소비, 일자리 어느 것도 살아날 기미가 없다. 특히 올해는 반도체 악재로 우리 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 증가세마저 크게 꺾일 것으로 예측된다.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는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1285억 달러어치로 수출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품목 1000억 달러 고지를 넘어섰는데 올해는 1100억 달러 대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조로 현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반도체를 대체할 신 성장동력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보이지 않는다. 소득수준을 향상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데다 국가간 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서둘러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미국의 ‘첨단제조 파트너십(AMP)’, 중국의 '제조 2025' 등 주요 경제 강국들은 벌써부터 4차 혁명을 주도할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각종 규제와 사회적 갈등으로 더디기만 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기술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중국은 108, 일본은 117, 미국은 130이라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신산업 유성을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사회적 갈등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 속에서 경제, 사회 현실이 바뀌고 있는데 옛날 가치가 고집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 보인다”며 “바뀐 시대에 맞게 더 열린 마음으로 상대와 대화하는 유연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표 사례로 ‘카풀’을 꼽았다. 특히 문 대통령은 새해에는 모든 것을 국정운영의 ‘성과’로 말하겠다고 강조하고 "혁신으로 기존 산업을 부흥시키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신산업을 육성할 것"이라 약속했다. 올해는 선거 등 대형 정치 일정도 없다. 정부는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올 한해 국정관리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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