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권규홍 기자]청와대는 지난 7일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수석, 국민소통 수석을 비롯 주요 참모진들의 인사를 단행했다.


대통령의 오른팔인 비서실장 자리엔 임종석 비서실장이 물러나고 노영민 주중대사가 임명됐다. 청와대와 국회의 가교역할을 하는 정무수석자리에는 한병도 수석이 물러나고 강기정 전 의원이 선임됐다. 국민과의 소통을 비롯해 언론들과의 교류를 담당하는 국민소통수석에는 윤영찬 수석이 물러난 뒤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이 선임됐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무려 20개월간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비서실장은 노영민 대사에게 실장 자리를 내주고 청와대를 떠났다.


지난 7일 임 실장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의 초심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기대수준 만큼 충분하진 못할 것이다. 그간 대통령의 초심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며 “당신에게 주어진 소명과 책임을 다 하려 애쓰신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더 큰 시련과 도전이 예상된다. 더 힘을 내셔서 국민과 같이 해쳐나가셨으면 좋겠다. 떠날 때가 되니 부족한 기억만 든다. 그간 노심초사 지켜 봐주신 국민여러분에게 감사인사 드린다. 같이 고생한 동료들과 언론인들에게 감사한다”고 퇴임사를 전했다.


▲ 임종석 비서실장이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노영민 비서실장


사실 애초에 문 대통령은 노영민, 임종석 두 사람 중 누구를 비서실장으로 내세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전해졌다.


그 만큼 두 사람의 능력과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인데, 결국 고민끝에 문 대통령은 임종석 실장을 문재인 정부 1기 비서실장으로 임명하고 노영민을 주중대사로 선임했다. 문 대통령은 임 실장을 임명하며 “젊은 청와대,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선임 당시 임 실장은 역대 비서실장중 가장 나이가 어린편에 속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출범한 뒤 약 석달 뒤인 2017년 8월 30일 노영민을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임명배경으로는 “그간 정치권에서 보여준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협상력, 새 정부의 외교정책, 국제관계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노영민을 주중대사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노영민 실장은 195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경영학과 재학당시 긴급조치 9호 위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 거부투쟁등의 학생운동을 벌인 운동권 출신이며 대학 졸업 후 고향인 청주환경운동연합가입을 시작으로 충북을 기반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 충북 청주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며, 4년 뒤 2004년에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청주시 흥덕구 을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8대, 19대 총선에서도 연거푸 당선되어 3선 의원으로 활약했으며 당에서는 원내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19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위원장등 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노 실장은 문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비서실장, 조직본부장직을 맡아 활약해 문 대통령의 당선의 일등공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간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온 공로도 인정받았다.


또한 문 대통령이 2기 청와대를 구성하며 노 실장을 임명한 것은 노 실장이 국회의원당시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을 맡아 정·재계와 깊은 교류를 가졌던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가 그간 외교력에선 국민들의 신임을 받고 있지만 갈수록 나빠지는 고용과 소비등 경제상황에선 큰 점수를 받지 못했기에 노영민 비서실장의 선임을 통해 경제상황을 타개해보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 첫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한 강기정 정무수석, 노영민 비서실장, 윤도한 소통수석


강기정 정무수석


문재인 정부 정무수석은 초기부터 좀 삐거덕 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초대 정무수석이었던 전병헌 의원은 KESPA 협회장 재직당시의 비리문제가 불거지며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정무수석직에서 사임했다. 초대 정무수석이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청와대는 한병도 정무비서관을 승진시켜 정무수석에 임명했다.


정무수석은 청와대와 국회의 의견충돌이 있을때마다 제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중의 하나로 사실상 대통령의 의중을 국회에 전달하는 중책과 국정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도, 협상력을 갖추어 청와대가 정국을 장악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6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강기정 정무수석은 전남대에서 전기공학 학사과 행정학 석사를 취득하였다. 전남대 재학당시 삼민투위를 비롯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농성사건등에 가담하여 징역형을 살았으며 출소 후 정치계에 입문했다.


강 수석 역시 노영민 비서실장처럼 2000년 16대 총선 광주 북구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04년 같은 지역구에 재 출마하여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9대까지 3선 의원을 지냈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행정안전위 간사, 국토해양위원회 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등을 지내왔다.


강 수석은 여당내에서 최고의원, 정책위 의장등 중책을 줄곳 맡아왔으며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시절 문 대표에 대한 비난여론을 온몸으로 방어하며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임 전 실장은 강 수석 임명에 대해 “지난 2016년 공무원 연금개혁당시 공동위원장을 맡아 헌정사상 최초 국회 주도의 국민대타협으로 사안을 처리한 점”을 높이 산다며 큰 기대를 나타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임 전 실장은 윤도한 수석에 대해 “30여 년동안 언론인으로 살아오며 통일, 외교, 사회, 문화등의 사안을 국민의 시각에서 다뤄왔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국민중심의 소통환경을 만들 것을 기대하며 국정운영의 세세한 부분까지 국민에게 알릴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1961년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85년 MBC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윤 수석은 1987년 전두환 정부당시 MBC 노조 1호 조합원으로 참여해 손석희 앵커와 더불어 언론자유를 수호하는데 앞장섰으며 특유의 탐사보도를 통해 굵직굵직한 특종을 잡아내어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윤 수석은 친일인명사전을 반대한 국회의원들을 실명으로 보도해 화제에 올랐고, 이명박 정부당시 삼성의 불법경영승계를 보도해 역시 MBC의 시청률을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후 시사보도 프로그램 ‘뉴스 후’의 진행을 맡았고 LA 특파원 시절을 3년간 보내기도 했다.


탐사보도의 대가로 알려진 주진우 기자는 윤 수석의 저서에 “윤도한은 탐사기자의 전형이었다. 전설이었다. 기자들은 윤도한을 질투했다. 그리고 따라했다. 나도 그랬다”라고 추천사를 올렸고 손석희 앵커 역시 추천사를 통해 윤도한 수석을 응원했다.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의 2기 소통수석으로 과연 윤 수석이 어떠한 방식으로 청와대의 국정을, 대통령의 진심을 국민들에게 전달할수 있을지 청와대 안팎에서 윤 수석에게 거는 기대가 큰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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