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기사식당 주차장. 2019.01.16.

[투데이코리아=유한일 기자] 택시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카카오가 결국 ‘카풀’ 시범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기로 하면서 양 측이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15일 시범 카풀 서비스 중단을 발표하고 “택시업계와의 협력과 사회적 합의를 우선으로 해 원만한 소통의 장을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택시업계와의) 대화에는 어떤 전제도 없다. 서비스 출시를 백지화할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택시 종사자들의 후생 증진과 이용자들의 승차난 해소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카카오의 이번 발표가 택시기사들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켰을까. 16일 기자가 찾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기사식당에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인데도 많은 택시기사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택시기사들에게 다가가 “카풀과 관련해 기사님들의 생각을 들으러 왔습니다”라고 하자 기자를 매우 반기는(?) 분위기였다. 할 말이 굉장히 많은 눈치였다.

먼저 택시기사들은 이번 카카오의 카풀 시범 서비스 중단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대화의 장이 열려 양 측이 합의를 본 후 조속히 이런 논란이 잠재워졌으면 한다는 입장과 아직까지는 못 믿겠다는 입장이다.

기자가 처음 대화를 나눈 택시기사 김 씨는 “세상이 변하고 있는 만큼 공유경제가 피해갈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인 것은 인정한다”며 “최근에 극단적 선택을 한 다른 기사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하루 빨리 이번 논란이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택시기사 신 씨는 “카카오의 서비스 중단 소식은 접했지만 아직 믿음이 가지 않는다”며 “카카오는 달리기를 잠시 멈췄을 뿐이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신 씨는 “분신한 택시기사 사건과 함께 얼마 전 국토교통부가 택시를 향한 부정적 여론을 활용한다는 내부문건을 만들어 대응해 왔다는 소식까지 겹쳐지면서 카카오가 한 발 물러선 것 같다”고 의심했다.

카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자가 방문했다는 소식을 접한 다른 택시기사들이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꼭 기사에 실어달라고 했다.

택시기사들은 카풀 반대 이유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각박한 택시기사 환경을 꼽았다. 지금도 힘들게 일하고 있는 상황에 카풀까지 활성화된다면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10년째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고 밝힌 김 씨는 “오전 10시에 나와서 자정까지 하루 14시간 가량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유류비와 식비, 보험료 등을 빼면 들어오는건 200만원 수준”이라며 “시급으로 따져도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는 기사들인데 대기업에서 카풀이라는 서비스를 내놓고 일반인들에게 자가용 영업을 허용해 주니 속이 터질 지경”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우리가 돌아다니는건 맞다. 최근 기사들의 불친절, 승차거부 등으로 여론이 나빠진 것도 알고 있다”면서도 “그래도 어려운 택시기사 환경을 한번만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또 한 택시기사는 “우리는 택시를 수십년 운전하면서 각종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 지금까지 왔다”며 “카풀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기사식당 주차장에서 택시기사들이 기자와 함께 카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2019.01.16.

택시기사들은 아직까지는 카풀에 대해 승차공유가 아닌 ‘영업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자가용을 소유한 일반인들이 몇 가지 절차만 거치면 돈을 받고 영업을 하는 시스템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택시기사 김 씨는 “택시기사들은 수천만원의 ‘넘버값’을 주고 자격증까지 따 영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진입장벽을 낮춰 버리면 택시 시장은 고사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가 말한 이른바 ‘넘버값’은 개인택시 번호판 가격이다. 기사들 사이에서는 개인택시 ‘권리금’이나 ‘퇴직금’이라고 불리는데, 최근 가격과 거래량이 급감하고 있다. 김 씨는 “수익도 줄어드는 상황에 의지하고 있던 넘버값 마저 추락하니 속이 쓰리다”라고 말했다.

기사들에 따르면 약 9000만원에 육박했던 넘버값은 카풀이 시행되고 나서 점점 추락, 현재는 7000만원 대까지 떨어졌다. 한 택시기사는 “얼마 전 친구가 택시를 시작했는데 7300만원 주고 번호판을 샀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굳이 수천만원을 들여 택시를 하지 않아도 카풀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택시의 가치는 점점 떨어질 것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카풀TF, 카카오에 바라는 것을 종합해보면 카풀이라는 신산업 도입에만 집중하지 말고 우선 어려운 택시 환경을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한 택시기사는 “혹사당하고 있는 기사들의 처우 개선에 먼저 신경써준 다음 카풀과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맞는 순서”라며 “모든 기사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에 이토록 (카풀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은 아직 카카오의 시범 서비스 중단에 대한 공식 입장과 대화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투데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카카오가 카풀 시범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것은 잘된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아직 합의점이 많고 앞서 밝혔듯이 부정적 여론을 조작하고 택시업계의 분열을 조장한 것과 관련한 책임은 끝까지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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