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지난해 로또복권 총판매액이 3조 9658억원으로 4조원에 육박,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로또복권 판매가 시작된 2002년 이후 역대 최고치였던 2003년의 3조 8200억원 기록을 15년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이탈리아 말로 '행운'이라는 뜻을 지닌 로또의 지난해 하루 평균 판매액은 108억 7000만원이나 됐다. 또한 통계청 인구추계(5164만명)로 산출한 1인당 로또복권 구입액은 7만6800원가량이었다. 지난해 1등의 행운을 거머쥔 사람은 484명이고 이들의 평균 당첨금액은 19억 6100만 원이었다.

복권 판매소 앞에는 단숨에 팔자를 고쳐보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워 질수록 그 강도는 거세진다. 복권을 ‘불황형 상품’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로또에서 1등에 당첨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지난해 당첨 확률이 819만분의 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벼락을 맞을 확률이 180만분의 1이라고 하니 1등 당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만하다. 그래서 로또 옆에는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모험을 걸지 않으면 대박과는 영영 담을 쌓는 것이 된다면서 서민들이 앞다투어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지난 2016년 말경 광주의 한 단독주택에서 사망한 지 여러 달 지난 50대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방에서 2014년부터 2년 동안 발행된 로또복권 3000여 장이 담긴 여러 개의 봉투가 발견됐다. 봉투 옆에는 당첨번호를 분석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홀몸으로 공공근로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온 이 50대는 2년동안 ‘대박’을 꿈꾸며 매주 열심히 복권을 열심히 사들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박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수년 전에는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이 공금을 빼돌려 매달 600만∼800만 원어치의 복권을 사다 적발됐다. 경찰 조사 결과, 그렇게 산 복권이 1년동안 수천만 원어치나 됐다.


로또 복권 구매층은 대부분 서민들이다. 떵떵거리며 인간답게 살고 싶은데 벌이가 신통치 않으니 비교적 적은 돈을 들여 쉽게 큰 돈을 벌어보려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특히 로또는 경마나 경륜과는 달리 베팅 지식이 없어도 얼마든지 대박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서민들의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사행산업 중에서도 로또나 카지노 같은 단순한 것들이 더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권의 기원은 기원전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파라오의 유물에서 복권 방식의 게임 흔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사용 목적은 아직까지 미지수로 남아있다. 고대의 복권중 그 사용 목적이 밝혀진 것은 중국의 진나라와 로마제국의 것이다. 진나라에서는 만리장성 건립 비용 등을 조달하기 위해 ‘키노’라는 복권이 등장했고,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복구 자금 마련을 위해 복권 이벤트가 시행됐다.

복권은 이처럼 특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안성맞춤이다.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니 복권발행이 세계 각국에서 유행병처럼 번져 나갔다. 또한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기위해 당첨금을 올리다 보니 사행성 강도가 갈수록 높아졌고 이탈리아에서는 ‘도시 전체’가 상금으로 걸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복권은 도박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이를 불법화하는 나라들이 다수 생겨났다. 그러나 복권 발행을 통한 재원 조달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보니 복권을 불법화했다가 다시 합법화 한 나라들도 많았다.

미국에서도 도로와 항만 등 상당량의 인프라가 복권 판매자금으로 건설됐다. 하버드, 예일, 콜롬비아, 프린스턴 등 세계적인 명문 대학들도 복권을 통한 자금으로 설립됐다. 복권이 없었다면 이런 대학들이 생겨나지 못했을 것으로도 생각된다. 사행성이라는 부작용이 있지만 이처럼 복권은 인류 발전에 기여했다. 그래서 그런지 세계 각국이 복권 판매에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판매촉진을 위해 ‘쥐띠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동, 서북 방향의 잡화점 또는 마켓에서 오전 9시∼11시나 오후 5시∼7시에 18, 24, 28, 34, 39, 45, 숫자를 고르면 행운을 잡을 확률이 높다’는 등 띠별로 로또복권을 사는 시간과 방향, 번호까지 ‘콕’ 찍어서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당첨 확률이 높다’고 했을 뿐 ‘당첨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민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복권은 조선 후기 민간협동체인 산통계(算筒契)에서 각 계원의 이름이나 번호를 표시한 알을 통 속에 넣고 흔들어, 알이 나온 사람에게 많은 할증금을 준 데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복권은 런던 올림픽 참가 경비 마련을 위해 대한올림픽위원회가 1947년 발행한 올림픽 후원권이다. 정기복권으로는 주택은행이 1969년 발매하기 시작한 주택복권이 최초다.

파산 문제를 전공한 미국 카렌 그로스 교수의 통계에 따르면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엄청난 돈벼락을 맞지만 당첨자의 3분의 1정도는 결국 파산한다고 한다. 이른바 ‘로또의 저주’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로또가 일확천금을 노리는 서민들의 꿈이 되어 버렸다. 경기 침체와 일자리 부족으로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자, 로또는 물론이고 카지노와 뽑기 등에 탐닉하면서 ‘한탕주의’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사행산업의 성행은 필연적으로 '중독자 양산'이라는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나라 도박 중독자는 250만∼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슬픈 것은 노름꾼 아내의 신세이고 애달픈 것은 노름꾼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시름’이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중독자 증가는 엄청난 후폭풍을 초래한다. 비록 복권의 순기능이 있다고 하나 우연과 불확실성에 운명을 맡기는 도박 중독의 부작용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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