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으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마비, 경찰 수사권 독립 난항

▲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양 기관 <검찰로고(왼쪽), 경찰로고(오른쪽)>

[투데이코리아=유효준 기자] 최근 경찰의 수사 미흡과 치안유지 실패로 인해 제기된 수사권 독립 시기상조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수사권 독립이 되기 위해 가장 핵심적으로 선행되야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정쟁화로 인해 교착상태에 빠졌다.


국내법 상 모든 수사절차와 수사기관의 권한은 '형사소송법'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국회가 최종적으로 개정, 입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정권 초 수사구조개편안이 발표된 직후 정부와 여당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에 박차를 가해 속도가 붙는 듯 했지만 정권 말에 들어 검찰과 야당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여당은 최근 표창원 의원 등 수사기관 출신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공수처 설치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3일 본보와 인터뷰 당시 표 의원은 “현재 아시아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홍콩과 싱가포르는 과거 80년대만 해도 부패로 얼룩진 곳이었다. 하지만 홍콩은 염정공서(ICAC), 싱가포르는 반부패조사국(CPIB)등을 설립한 뒤 아시아 최고의 청렴국가가 되었고 경제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며 “이젠 더 이상 우리도 지체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자유한국당이 조해주 중앙성관위원 임명에 대해 국회 보이콧을 선언한 만큼 사개특위의 형사소송법 개정 추진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형사법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권 독립이 공수처 설치와 형사소송법 개정 상 법적으로 맞물려 있기에 단기간에 입법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 경찰청이 국민 신뢰 제고를 위해 시위현장에 대화경찰을 도입했다.

국민이 생각하는 경찰 신뢰도, 2.7% 타 국기기관에 비해 현저히 낮아


하지만 이러한 입법절차보다 선행되는 국민의 신뢰 또한 경찰이 제대로 얻지 못한 점도 경찰의 수사권 독립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실제 전 세계에 지사를 두고있는 국제적인 여론조사기관 미국 갤럽이 14년도 발표한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경찰에 대해 가지는 신뢰도가 OECD 34개 회원국 중 2번째로 낮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당시 미국 갤럽이 발표한 보고자료에 따르면 '당신의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 중 59%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에서 한국보다 경찰의 국민 신뢰도가 낮게 평가된 나라는 '신뢰한다' 응답 45%인 치안불안국가 멕시코뿐이었다.


리얼미터가 작년 11월 전국 성인 5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결과 대기업 6.9%, 언론 6.8%, 법원 5.9%, 중앙정부 부처 4.4%, 노동조합 4.0%, 종교단체 3.3%, 군대 3.2% 등이었다. 경찰 2.7% 순으로 측정됐다.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 100명 중 단 3명도 경찰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의 경찰 행태는?


작년 10월 경찰청 특별수사단은 "이명박 정부 당시 경찰이 친정부 여론을 조장하기 위해 암조직을 동원해 온라인에 3만7천여 건의 댓글을 올리는 등 '댓글 공작'을 벌였다"고 발표했다.


당시 경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블랙팬(정부 비판 성향 누리꾼)'을 대상으로 심각한 인권유린으로 비판받는 불법 도청을 일삼은 사실도 드러났다.


2010년 본청 보안국 소속 사이버수사대장이던 민모 경정은 특수 통신 장비로 웹 상에서 데이터 자료를 중간에 가로채는 일명 '패킷 감청'방식으로 블랙펜과 일부 시민단체의 이메일과 개인 계정 등을 훔쳐본 사실이특별 수사단에 의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경찰은 수사권 독립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검찰보다 촘촘하고 비대한 수사망을 가지고 있다”며 “경찰은 군대 다음으로 큰 공조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MB 정권 시절 경찰이 전국적인 수사망을 이용해 저지른 댓글 공작 행위를 보면 과연 경찰이 수사권을 독립적으로 도맡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박근혜 정권 경찰은 이명박 정부의 인권침해 행태를 넘어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시위 당시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차벽을 돌파하기 위해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이후 뇌출혈로 오후 7시 30분에 구급차에 실려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4시간에 걸친 중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1년 가까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2016년 9월 25일 오후 2시 15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망했다.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집회 참가 농민이 다친 건 안타깝지만 애초에 폴리스 라인을 훼손하고 불법 집회로 변질시킨 책임은 시위대에 있다"고 밝히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을 내놓아 시민사회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치하에 사망판정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수많은 의료인들이 백남기의 사인이 외인사라고 입을 모으는 가운데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백남기 농민 수술을 집도했던 백선하 교수는 "317일간 백남기의 치료를 맡은 주치의로서 소신껏 사망 원인을 병사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변경할 생각이 없고 물대포로 인한 외인사 여부는 법의학자나 사법당국이 판단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 이후 15개 의과대학 및 전문대학원 학생 809명은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은 외인사임이 분명하다는 내용의 '같이, 우리의 길을 묻습니다.' 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외인사임이 명백한 고 백남기씨의 죽음에 대한 잘못된 진단서로 의사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을 저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며 “의사들조차 해당 사망진단서를 비판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에 근거한 부검영장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등의 용기있는 목소리를 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2017년 6월 15일, 서울대학교 병원이 백남기의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하자, 발표 이틀 뒤인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은 백남기의 사망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경찰청장의 공식사과는 경찰이 자신들의 부당한 공권력으로 국민이 사망한 것에 대해 자인한 것이었다. 이렇게 국민 한 사람을 부당한 직무집행으로 사망케 하고도 유족들과 시민사회를 정권의 비호 아래 철저히 유린했다. 고인이 사망한 것도 분노스러운데 1년 넘는 경찰권력의 시간끌기에 유족들의 마음은 멍들어 갔다.


사법계통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도 경찰은 무책임한 태도와 미온적인 대처로 시민사회를 아프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사권 마저 통째로 위임한다면 얼마나 더 교만하고 국민을 가볍게 볼지 우려된다는 것이 형사법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표창원 의원, "야당도 무조건 반대하지 않아, 경찰은 국민을 먼저 이해시켜야"


현재 형사법계에서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회부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다는 여론이 많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현재 자유한국당은 무조건 반대는 아니라는 입장"이라며 특검법 또는 특별 감찰반 제도를 활성화 시키는 쪽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들이 "당내에서의 논의는 물론이고 야당과의 논의, 국민들과의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수사권 독립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는 논의되지 않고 검찰과 경찰 간 권력 다툼으로만 비춰지는 등 수사권 독립 문제는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형사법계와 경찰은 이처럼 야당의 정치공세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할 것이 아니라 왜 수사권 독립을 해야하는지, 과거 수사구조가 왜 잘못됐는지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공감을 얻어야만 국민을 위한 진정한 수사권 독립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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