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우리 50, 60대는 조기퇴직 했다고 해서 할 일 없다고 산에나 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셔야 해요” 가공할 정도의 실업난과 자영업 붕궤위기의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다 못해 정부 정책에 불만을 갖는다 해서 이들 장년세대의 심장에 비수를 꽂은 이가 김현철 대통령경제보좌관이다.

“국립대에서 국어국문학과 졸업하면 요즘 취직이 안 되지 않나. 저는 그런 학생들을 왕창 뽑아서 인도네시아 한글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 여기 앉아서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 이러지 말고 아세안(ASEAN) 가보면 해피조선이다”

김보좌관은 자신의 부모 형제 50,60대 장년에게, 그리고 자신의 아들 딸 조카 20,30대 청년들에게도 이렇게 말 할 건가. 산에 갈 수밖에 없는 장년들의 고통과 애환을 그는 알고 있을까.

대학을 나와 취업을 못하고 알바로 용돈을 벌어 쓰며 부모 눈치 봐가며 애처럽게 지내야 하는 청년들의 아픔을 청와대 경제비서관은 진솔하게 들어봤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차마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같은 어른으로써 젊은이들에게 낯을 들 수가 없다.

# 인도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중장년 어른들은 그동안의 경륜을 살려 자영업이나 무역업종을 비롯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정부에서 현지조사도 하고 지원방안을 강구해 볼 테니 생각이 있는 50,60대 어른들은 희망을 갖고 기다려 보십시오 #

#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 못해 고민하는 청년들아, 너희들 일자리 마련해주지 못하는 어른들이, 정부가 미안하다. 그러나 실망만 하지는 말자. 요즘 세계 각국에선 한국어를 배우려고 야단이다.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받아 해외에 진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볼께 기다려보렴 #

어른이라면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아픔을 함께하고 어루만져 주는 어른이라면 이렇게 말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한다 해서 비아냥조로, 아픈 가슴에 비수 찌르는 그런 분이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경제정책을 좌지우지 했다고 생각하면 슬프다. 화난다.

대통령경제보좌관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이셨던 김현철씨를 문재인대통령이 즉각 경질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그 경질로 많은 국민들이 입은 상처가 쉽게 아물 것인가. 오래 갈 것이다.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최고위 인사의 인식이 그렇다는데 문제는 심각하다. 파장이 크니까 적당히 사과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책에 그 같은 철학과 인식이 깊게 깔려있을 것 같은 우려 때문이다.

강남 집값 문제로 떠들썩할 때 장하성전정책실장은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는 없다”며 염장을 질렀다. 이해찬 집권여당 대표는 장애인들 앞에서 “정치권에 정신장애인이 많다”는 망언으로 장애인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런 지도층, 아니 집권세력의 고위층 인사들의 발언을 들으며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런 사고방식과 인식으로 나라를 이끄는구나...

김보좌관의 경질과 관련, 한마디 덧붙인다면 사과에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내가 틀린 말 했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게 아닌가 느껴진다.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대통령은 그를 경질하면서 “발언 취지를 보면 맡고 있는 신남방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나온 말”이라며 “ 우리 정부 초기 경제정책의 큰 틀을 잡는데 큰 기여를 했고 경제보좌관으로 역할을 충실이 해왔는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를 야단치기보다 격려하는 듯한 발언 같아 씁쓸하다. 직접 사과하지는 않더라도 김보좌관의 가벼운, 아니 수많은 국민 가슴에 못 박은 발언에는 질책이 있어야 했다고 본다.


이 칼럼을 읽고 “말 꼬투리 잡기”라며 비난할 수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고 철학이다. 불쑥 나오는 게 아니다. 평소 안고 있는 인식과 이념 사상의 표출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의 말에는 천금 같은 무게가 실려야 한다.


국민의 아픔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비록 자신들의 정책에 기를 쓰고 반대한다 해도 귀 기울여 듣고 설득해야 한다. 애정 아량 포용이 절실하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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