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정부가 시행하는 대형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豫妥) 면제’와 ‘4대강 보(湺) 해체’라는 두 개의 대형 뉴스가 같은 시기에 터져 나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예타란 무엇이고 보 해체는 왜 하자는 것인지 살펴보고 옳고 그름은 국민들이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예비타당성조사란 천문학적 규모의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대형신규사업은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하며, 재정투자의 효율성을 철저히 따져 시행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국책사업의 절차적 정당성과 사회적 합리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이러한 취지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성 싶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아 시끄럽다.

정부는 최근 24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사업비가 들어가는 지역 대형사업 23건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경북 김천과 경남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 대전 도시철도, 새만금국제공항 등 그동안 경제성이 낮다고 판단되어 보류되어 왔던 전국 23개 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시행하겠다는 내용이다.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 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도 늘리겠다는 것이 명분이다. 이에 야당은 즉각 총선용 선심정책이며 포퓰리즘적 재정확장정책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뒤이어 4대강 보 해체 뉴스가 국민들을 혼란속으로 몰아 넣었다. 환경부 4대강 조사 평가 기획위원회가 수개월의 검토 끝에 내놓은 금강과 영산강 5개 보의 처리방안 핵심은 다음과 같다. 보 5개중 3개는 해체하고 2개는 상시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다.

보를 해체할 때의 비용과 편익을 분석한 결과 세종보와 공주보 죽산보 등 3개는 해체하며, 금강 백제보와 영산강 승촌보는 보를 그대로 유지하되 상시 개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08년 이명박정부때 첫 삽을 뜬 4대강사업이 10여년 만에 해체의 운명을 맞았다.

4대강 사업을 놓고 시작할 때부터 말도 많았다. 당시에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타당성도 검토해 내놓았고, 찬반논란도 많았지만 엄청난 국고를 들여 추진되었다.

정권이 바뀌어 다시 전문가들이 참여한 위원회가 만들어져 이번 일부 보 해체 권고안이 나오게 된 것이다. 국민들은 어느 위원회가 옳은지 판단할 수가 없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의 타당성 여부나 부작용, 국민 편익이나 비용을 일반 사람은 가늠할 수 없다.

같은 대한민국 학자들이고 전문가들인데 이 정권 전문가 다르고 저 정권 전문가 판단이 다르니 어찌할 일인가. 위원회의 판단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아니 그럴 능력이 없다. 다만 엄청난 국민 세금 사용과 관련된 사안을 놓고 왜 이런 일이 빚어지는지는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보 해체가 더 경제적인지, 보완이 더 나은지에서부터, 검토기간이나 내용은 충분하고 철저했는지, 일부 보에서 나오는 주민들의 반발 문제는 어떻게 해소할지 등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철저한 타당성조사와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하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되었다고 한다면, 이번 보 해체 등의 결정 과정 또한 철저했는지에 대해서도 향후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예타 제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보 처리문제를 검토한 평가위원회 위원장이 정부의 예타 면제 방침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 전(前)정권 사업(4대강)은 경제성 타당성 편익들을 따져 잘잘못을 가리면서, 향후 대형 국책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동안 예타는 예산낭비와 환경파괴 사업을 막는데 최소한의 검증장치 역할을 해왔음은 명확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공공투자관리센터에 의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평가되는 ‘예타통과 실적’은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2016년말까지 총 782건중 509건(65%)만 예타를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등이 추진하려던 사업 가운데 35%는 타당성이 없어 추진되지 못한 것이다.

예타 면제 시도는 위험하다. 오히려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국민의 세금을 한푼이라도 허투루 써서는 안되는데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은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명분만으로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다.

이명박정부가 시행한 4대강 사업이 타당성이 부족하고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뒤엎는 사례처럼, 이 정부가 예타 없이 시행하는 사업은 물론이고 원전 관련 조치나 태양광사업 등등의 사업들이 정권 바뀌면 어찌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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