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시민들이 의지할 곳 없는 현 시대, 언론이 두 팔 벌려 그들을 안아줘야...

▲유효준 기자
▲유효준 기자

기자로 일을 시작 한지 어느덧 석 달이 다 됐다.

미술관 같은 깔끔한 청사 그리고 깔끔하다 못해 아름다운 유명 대기업의 기자실 그곳에서 땀 맺힌 노동을 논하고 한미한 골목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위치가 사람을 바꾼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자로 입직하기 전 그래도 나름 개인적인 신념이 굳은 사람이라고 자부했고 페이스북 ‘노동법률공익상담회’라는 개인 페이지를 운영하며 무료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법률봉사를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후 좋은 책상, 안락한 업무환경, 그리고 비싼 식사라는 까만 친구들이 손을 내밀어 왔다. 망설임에 빠졌다.

당연히 이런 것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나라고 생각해오며 살아온 나로서는 하나의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였다.

과거 수능 2달을 앞두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교내 급식비리를 고발하며 끝까지 불의와 싸워본 경험이 있는 나 스스로가 고작 이런 작은 것에 흔들릴 것이라고는 상상 조차 못한 것이었다.

기자가 좋은 기사, 정의로운 기사를 쓰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려운 이들을 대변하는 기사를 쓰려면 고생할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한다.

발로 뛰어 다니다보면 밥도 거르고 기껏 좋은 기사를 써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때가 많다.

이처럼 현장에 기반한 기사가 쓰기 힘들고 어렵기에 뜨거웠던 기자들도 결국 편한 기사, 보도자료 베껴 쓰기에 젖어가는 것이다.

그 누구도 막지 않았지만 자기 스스로 점점 쉬운 기사, 어려운 이들을 외면한 채 기자가 아닌 기사 찍는 인쇄기로 전락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 없이 한 달을 보낸 나는 퇴근길 먼지 가득한 공사장을 지나다가 녹슨 드럼통에 부러진 각목들을 태워 불을 쬐는 건설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목도했다.

앉아 있는 사람도 여럿 있었고 시끌시끌 떠드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업무시간은 아니고 휴식시간인 것을 눈치챘다.

“아저씨 날이 이렇게 추운데 들어가서 쉬시지 왜 밖에서 쉬세요?”하는 질문에 다들 비웃듯 깔깔 거리며 한 마디씩 한다.

“야, 어딜 들어갈때가 있어야지.”

“저번에 하도 추워서 쉬는 시간에 포크레인에 시동걸고 들어가 앉아 있다가 기름 값 먹는다고 소장한테 작살났어.”

“일어서면 일터고 앉으면 쉼터가 되는지 이 바닥에 휴식장소 그런게 따로 어디있어.”

안락한 기자실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먼지 자욱한 공사장도 지저분한 골목도 거리낌없이 뒹굴줄 알아야 한다.

‘일어서면 쉼터, 앉으면 쉼터’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노동존중 국가의 슬픈 현주소이다.

힘겹게 일하고도 먼지 자욱한 공사장에서 휴식시간까지 고역을 치르는 이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기자는 하루 빨리 기자실 쇼파를 박차고 일어나 현장으로 뛰어나가야 할 것이다.

안일한 언론은 힘 없는 시민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정의의 가면을 쓴 또 하나의 삐뚤어진 권력일 뿐이다.

힘 없는 시민들이 의지할 곳 없는 현 시대, 언론이 두 팔 벌려 그들을 안아줘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