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수출 엔진이 꺼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1% 줄어드는 등 수출 실적이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수출이 3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한 것은 2016년 7월 이후 2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감속 폭이 시간이 흐르면서 갈수록 커지고 있어 성장 저하가 우려된다.

수출부진의 원인은 그동안 수출을 주도해 온 두 축인 중국과 반도체 수출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수출은 중국과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 외부 충격에 악하다. 중국은 지난해 전체 수출의 26.8%를 점유한 최대 수출시장이다. 그런 중국에 대한 수출이 2월에 전년동기 대비 17.4%나 감소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마찰 본격화로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중국의 수입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수출의 20%가 넘는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24.8%나 크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10대 주력 수출 품목 중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등 무려 7개가 두 자릿수 마이너스를 보여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는 한국의 수출이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의미다. 수출 구조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경고 신호라 하겠다.

정부는 수출이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감소폭이 갈수록 확대되자 부랴부랴 ‘수출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놓았다. 올해 무역금융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3조원 늘리는 등 무역금융 지원을 대폭 보강하고,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이후 수출을 주도할 수 있는 바이오·헬스와 전기차, 2차전지 등 새 먹거리를 적극 발굴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 대책은 수출업체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것이 분명해 수출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수출 부진을 타개할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대외적으로 세계 무역 성장세 둔화와 반도체 단가 하락 등 수출 전선의 먹구름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을 포함해 중국, 미국, 독일 등 세계 수출 상위 10개국의 수출 실적은 일제히 감소했다. 보호무역주의 확대와 글로벌 경기 하강 탓이다. 내수 시장이 크지 않은 한국으로서는 위기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중 무역분쟁의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합의 없이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도 부정적인 변수다. 설사 미중 무역협상이 어렵사리 타결된다 하더라도 중국의 미국산 반도체 구매 확대로 우리 주력 산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 게다가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자동차 관세 부과나 쿼터 축소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은 한국산 반도체 반독점 조사를 예고했고 일본은 조선업 정부 지원을 문제삼아 한국을 WTO에 제소한 상태다. 한국이 빠진채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이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도 지난해 발효됐다.

대내적으로도 산업 전반에 경쟁력 약화가 걱정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각종 규제 등으로 비용이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개혁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생산성과 효율성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의 신성장 동력 발굴도 경쟁국에 비해 뒤쳐져 있고 유망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이 등장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산 제품은 중국산보다 가격은 비쌌지만 품질은 좋았다. 또한 일본산보다 품질은 이 낮았지만 가격은 싸 가격 경쟁력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기술 개발로 품질을 높이고 일본이 '엔저'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한국 수출이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경쟁력을 지닌 반도체를 빼고 나면 대다수 업종이 중국과 선진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햄 신세가 된 것이다. 중국 하이얼의 냉장고와 세탁기, 샤오미의 공기청정기 등은 가전시장에서 싸면서도 쓸 만한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면서 한국 경제가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젠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출산업의 구조적 개선책을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기존 수출품목을 경쟁력을 잃고 있는 범용제품에서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으로 더욱 고도화하고 4차 산업 부문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