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경기, 줄어든 상여금… 하지만 소비심리는 살아나

원유가격 급등,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현재 우리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그리 밝지 못하다. 한국경제인연합회가 1월 20일부터 종업원 100인 이상 2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설 연휴 및 상여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전달에 비해 8.2포인트 하락해 94.8을 기록했다. 매출액 규모에 따르는 기업전망은 이에 엇갈리기도 했지만 100을 기준으로 100이상 긍정, 100미만 부정을 나타내는 기업경기실사 지수에서 기준치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7월 99.3 이후 7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수출업에 종사하는 모기업 과장 조 모씨는 “유가가 이렇게 오르는데 제품을 만드는데 드는 단가가 너무 비싸 남는 것이 없다. 세계의 중심인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기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라고 별 수 있나?”라며 이 같은 결과는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연봉제로 줄어든 상여금

한편, 지난 1월 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종업원 100인 이상인 2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설 연휴 및 상여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 상여금을 지급할 예정인 기업은 67.0%로 전년 66.3%와 비슷하게 조사됐다. 상여금 액수는 월 기본급의 91.3%로 지난해 83.1%에 비해 8.2%p 늘어났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제조업체 684개사를 대상으로 설 자금 수급실태를 조사한 결과 설 상여금을 지급할 계획이 있는 중소기업은 62.2%로 지난해보다 7.4% 줄었다. 지난 2003년 설 상여금을 지급한 업체 비율이 80.6%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04년 73.3%, 2006년 70.5%, 2007년 69.6%로 설 자금사정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전국 31개 국가산업단지 입주 기업 1810개 사를 대상으로 '설연휴 상여금·휴가계획'을 조사해 1월 22일 발표한 자료 역시 이번 연휴에 상여금을 지급하는 업체의 비율은 60%로 지난해보다 3.7%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를 보고 한국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연봉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조사 대상 기업들의 상여금 지급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새 정부 출범기대로 살아난 소비심리

한편,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의 고유 명절인 설을 앞둔 소비자들의 체감경기는 어떨까. 실질적으로 24일 기준 한국 은행의 물가상승률을 보았을 때, 2005년 7월 기준으로 6.5%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소비자는 실질적인 물가보다 4배 이상의 체감경기를 느껴 25%에 이르는 물가상승을 체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과일과격은 공급부족인 감귤을 제외하고 작황이 좋아 10~20% 정도 하락했지만 폭설과 한파가 있었던 호남과 서해안 지역이 주산지인 대파, 시금치, 배추 같은 채소류의 가격이 지난 설에 비교해 30% 이상 급등이 예상된다. 그리고 설날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우도 17%가량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예상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몇몇 유통업계의 설 판매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설에 비해(1월 21일부터 1월 29일까지) 대부분 3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의 불황으로 작년에 이은 최악의 불경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과는 영 딴판이다.
지난해 하반기 발생한 태안반도 원유유출사고 이후 울상을 짓고 있던 수산물 유통가도 오랜만에 활기를 띄고 있다. 도매수산물 유통업 관계자는 “이번 명절을 계기로 다시 소비가 늘어나길 바라며, 이번 설이 경제적으로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설 매출 상태를 살펴보아도 이는 마찬가지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50만원짜리 20매로 구성된 프레스티지 상품권이 2000여개나 팔려나갔으며, 1월 8일부터 판매된 100만원 복상품권도 판매 2주일 만에 매진돼 고가의 상품권이 크게 인기를 얻었다. 특히, 현대백화점의 경우 설을 앞둔 시기에 약 43%의 높은 매출 성장을 보였으며 저가의 선물세트 보다는 값비싼 정육세트나 굴비세트의 판매가 120%이상 오르기도 했다. 대형마트에서 쇠고기를 파는 성 모씨는 “경기가 나빠 이번 설은 장사가 안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 외로 이번 설이 효자 노릇을 해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거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런 매출의 증가는 이는 새 정부가 경제 정책에 대한 희망이 연초 소비 심리에도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으로 해석된다. 통계청이 1월 10일에 발표한 '2007년 12월 소비자전망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기대지수는 전월에 비해 2.0포인트 오른 104.0으로 집계돼 9개월 연속 기준치(100)를 웃돌았다. 소비지출 기대지수도 역시 108.0으로 11월(106.8)에 비해 상승했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마찬가지로 100이상을 긍정으로 평가하는 소비자기대지수와 소비지출 기대지수의 상승은 침체된 경기 상황의 청신호로 보인다. 고유가·고물가·고금리 등으로 현재의 경기 및 생활형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후폭풍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경기가 사람들의 부푼 기대대로 살아날지 지켜볼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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