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미래 세대는 공무원과 군인들의 연금을 대신 내주느라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을 것 같다. 공무원과 군인연금을 지급하기 위한 충당부채는 작년 한해 동안 78조 6천억원이 늘어나 전체 국가부채 증가액의 무려 74%를 차지했다. 이에따라 국가부채 총액은 지난해 말 현재 1천700조원에 육박했고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940조원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다.

연금충당부채는 미래에 지급할 연금을 현재 가치로 추산한 것이라 정부가 당장 갚아야 하는 채무는 아니다. 또한 앞으로 들어올 공무원과 군인의 연금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 지출액만을 추정한 금액이다. 그러나 두 연금은 이미 지출액이 수입액보다 많은 적자상태이기 때문에 매년 부족분을 국민의 혈세로 메워 주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공무원·군인연금 적자를 보전해준 액수는 무려 3조 8000억원이나 된다. 오는 2028년에는 그 규모가 8조원 이상으로 늘어나 해가 갈수록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두 연금을 하루빨리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혁해야 하고 공무원 증원을 가급적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1993년 공무원연금이 첫 적자를 내자 정부도 1995년부터 공무원 연금 개혁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차례 개혁이 시도됐지만 사실상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공무원들의 거센 반발과 국가 장래보다는 공무원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태도로 언발에 오줌누기식 미봉책에 그쳤기 때문이다. 두 연금 제도가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는 한, 국가부채 누적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구조로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또한 공무원 증원도 최대한 억제해야 하는데 오히려 임기 말인 2022년까지 17만명 늘리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공약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17만명을 9급 공무원으로 채용할 경우, 30년간 지급해야할 급여가 327조원, 퇴직 후 받는 연금은 9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처럼 공무원 증원은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하지만 아무런 개혁 없이 공무원 증원 기조가 유지되고 있으니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오는 2043년까지 계속해서 적립금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돼 국가채무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해를 기점으로 적립금이 감소세로 돌아서고 이후 감소 속도가 무척 빠르게 진행돼 고갈시점이 예상보다 훨씬 단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보험료를 낼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반해 연금을 탈 사람은 많아지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젊은층을 중심으로 ‘우리가 봉이냐, 타지도 못할 국민연금을 왜 강제로 내게 하느냐, 차라리 낸 돈을 모두 돌려달라’면서 연금 폐지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정이 이러하니 국민연금도 결국은 재정에서 책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과 군인연금에 대해 매년 조 단위의 적자를 국민의 혈세로 보전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가입한 국민연금 파산을 정부가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나라빚이 계속해서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재정부실 국가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오는 2033년이 되면 국채 발행으로 복지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국가재정 파산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 자료를 내놓았다.


국가부채는 젊은 세대와 후손들이 갚아야 하는 빚이다. 또한 국가채무는 한번 높아지면 다시 낮추기가 힘들다. 재정이란 방파제가 없으면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예상치 못한 큰 외부 충격이 닥쳤을 때 이에 대처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의 재정중독 증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올해 예산이 작년보다 9.5%나 늘어난 초팽창 예산으로 편성됐는데도 불과 석 달 만에 또다시 추경예산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현 정부들어 3년간 계속 추경을 편성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추경은 작년에 남은 세수를 지방 교부금 등 다른 용도로 다 써버려 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재정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것이 정도다.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구도 한국에 대규모 추경편성과 금리인하 등 적극적 재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가정이든 국가든 살림살이의 기본은 수입 내 지출이다. 상황이 좋지 않아 불가피하게 빚을 늘린 뒤에는 반드시 빚을 줄여야 재정건정성이 유지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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